- 역사

하루
- 작성일
- 2011.11.21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 글쓴이
- 이덕일 저
김영사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아파트에 입주하게 된 것은 1990년대초였다. 지금은 땅과 친화적인 주거형태로 눈을 돌리는 추세이지만 당시만해도 고층 아파트에서의 삶이 로망으로 다가왔던 시기였다. 그나마 엄마의 성실함으로 마련한 아파트이기에 우리 자매들은 아주 기대가 되었다. 대학 졸업후에야 내 방의 개념을 가질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막상 이사를 하고 아파트 거실에 첫발을 들여놓은 순간 거실밖 남모르는 무덤의 진상을 알고는 어찌나 놀랐는지 모른다. 거실 바로 보이는 곳에 산이 있고 그 앞에 떠억 잘 꾸며진 묘와 호화로운 비석이 거실밖 조망이었다. 이를 어째하며 이 사실을 알고도 방치하신 아버지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하며 그러저럭 살기로 했다. 음산한 분위기도 아니고 꽤 있는 집안 묘같았다. 알고보니 조선후기 노론 송씨가문의 후손되는 누구의 묘란다.
지금은 이장을 해서 그 이전의 묘자리는 찾아볼 수 없는 울창한 나무숲이 되었지만 송씨라는 말에 우암 송시열이 생각나는 것은 당연했다. 역사학습이 수업시간표에만 국한되어 다양한 레퍼런스북이나 역사서에 눈돌릴 여력이 없던 경직된 학습기간을 떠나보내고 요즘에는 잘 구성된 역사서들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어서 철들어 과거사에 눈뜨는 것 같아 다급하지만 차분하게 읽어본 책이 저자 이 덕일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였다.
16세기말에서 17세기말 격변의 시기, 중세를 물리치고 근대로 발길을 돌려야 할 그 시점에 조선의 중심에는 송시열과 그가 부르짖었던 한물간 사상인 주자학이 버티고 있었다. 주자가 주자학을 만든 것은 남송에서 수전농업의 발달로 성장한 사대부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였다. 사대부 세력유지와 이익 추구를 위한 명분이 충분했던 한 시대 사상이 송시열 활동시기에는 그 기능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송시열은 세력 유지를 위한 마땅한 컨텐츠를 주자에만 국한하는 편력을 보여주었다. 이미 망해버린 명나라를 받드는 시대착오적인 발상과 신분제 철폐를 외치는 민심의 방향을 돌리는 수법으로 예학을 받드는 수구세력의 원조로써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국가의 에너지를 예송논쟁에만 몰입시키는 위력을 보여준다. 왕가는 제1의 사대부에 지나지 않으며 사대부와 동격이라는 정신세계로 신분해방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양반중심의 중세 유학에서 양인과 일반 백성중심의 근세 유학으로 넘어가는 터닝포인트가 절실했던 그 시기에 맹목적인 아집과 추잡한 당쟁의 소용돌이는 계속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중용강의를 시청했던터라 유학의 본모습과 송시열이 대접받던 시기의 주자학이란 얼마나 편협되고 왜곡되었는지 골치아파하며 양쪽을 오가기도 했다. 서인, 노론세력의 이익을 위한 본관이 다른 동성간 혼인을 금지한 예는 송시열이 주창한 철저한 노론의 예론이며 이에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은 억압당해야 했다. 효종의 북벌론을 입으로만 찬양한 우암의 모습은 졸렬하기 그지없다. 탁상공론이란 말이 이처럼 적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왕이 수신해야만 치국평천하할 수 있다는 명분도 어찌보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해석으로 나라가 어지럽고 신하가 따르지 않는 것을 왕 자신의 근본적 원인으로 돌리며 대의를 버리고 계급의 사사로운 이익만 따지는 당론정치의 극악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왕은 죽으면 그만이지만 당이 누릴 권세는 영원무구한 미래가 아닌가.
숙종때 남인세력이 득세하고 희빈 장씨 소생 세자 책봉건으로 죽음을 맞이한 우암이 사사된 지 5년후 숙종 20년(1694) 갑술환국을 맞이하며 집권했던 남인세력은 무너지고 노론이 재집권을 시작하는데 이는 조선이 망할 때까지 일당체제로 지속된다. 무덤에 갇힌 송시열이 화려하게 부활하고 영조 31년(1755)에는 유학자 최대의 영예인 문묘에 종사되기까지 조선에는 진정한 그 무엇도 없었음을, 구태의연한 정신체계가 조선이란 사회를 갉아먹고 있었음을 가슴아파하며 읽어야 했다. 외세에 굴욕적으로 고개숙이고 다시는 그런 전적을 밟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관습을 버리지 못하고 사대주의에 목매는 버릇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변함이 없어보여서 정말 걱정되는 시대이다. 봉림대군이 아니라 청이라는 나라의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컨텐츠를 배우려했던 소현세자가 자리를 이었더라면 세상은 또 어떠했을까. 발전할 수 없는 상상도 금물이다. 누가 그 자리에 앉더라도 권력의 흐름이 알량한 한 세력의 중심에 있는 한, 집중되는 정신의 에너지가 흐름을 방해하고 억압되는 한 그 시대는 진정으로 후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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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댓글 18
- 작성일
- 2011. 11. 22.
@유정맘
- 작성일
- 2011. 11. 23.
- 작성일
- 2011. 11. 23.
@금비
- 작성일
- 2011. 11. 23.
- 작성일
- 2011. 11. 24.
@hephzib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