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3월의 캠퍼스 교정은 매화향과 산수유 향내가 번지고 순서를 기다리며 연이어 피어나는 순백의 벚꽃 향연에 눈부셔하며 가느다랗게 불어오는 봄바람에 몸을 맡긴 채 걷곤 했다. 아! 언제였던가. 내게도 그렇게 아름다웠던 봄날이 있었던가. 이런 이야기 할 시기가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이렇게 대책없이 뿌리고 말았다. 정은궐의 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은 인생의 봄날을 살아가는 네 청춘들의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 조선후기 사회적 분위기와 미래를 걱정하는 청춘들의 고민과 노력의 흔적들을 아리땁게 그리고 있다. 야릇한 스토리 전개를 무기로 청춘들의 달근한 대화가 약간 미숙해보여도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은 젊음의 장점이라 생각되어 읽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중간정도에서 멈췄다. 그러다 버려둔 책을 이제서야 겨우 첫권 읽었다. 드라마가 다 끝나고 나서야 다운받아 몇 번 본 기억때문이지 원작의 감흥은 솔직히 그저 그랬다. 로맨스니 하이틴분위기니 하는 말때문이 아니라 드라마를 재미있게 봐서 책을 시리즈로 주문했고 이러저러한 경로로 느즈막히 받아보고 놔두다가 읽기 시작했을 뿐이다. 원작을 읽으면서 느낀 바 드라마와는 많이 다르구나, 원작속의 캐릭터와 드라마의 캐릭터가 많이 다르구나, 책은 고요히 읽지만 드라마는 장면마다 음악과 영상이 주는 상쾌함때문에 혹해서 내가 이 시리즈를 주문했구나 하는 생각들을 했다. 그렇다고 마냥 실망한 것은 아니다. 책의 장점과 드라마로 인해 한동안 즐거웠던 시간들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남장여자 이야기는 중학시절에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주인공 오스칼때문에 가슴앓이를 많이 했다.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이 애매한 상황을 당시에는 만화나 영화에서 즐겨 찾아 상상력을 동원하여 난리법석을 벌이던 그룹과 그룹들이 존재했고 어느 쪽에도 끼고 싶지 않은 홀로 독특하고픈 나의 어설픈 연기도 생각해보니 웃겼다. 소설속 남장여자인 김윤희를 향한 세 청춘남의 성격 드러나는 에워싸기가 감질나게 묘사되는데 심증은 있지만 결정적 증거가 없어 한편으론 아리송해하면서도 그런대로 싫지 않고 같이 있으면 좋고 뭐 그래서 성균관 생활은 나쁘지가 않다. 다만 윤희의 마음이 오직 한 남자, 선준만을 향해 있다는 사실! 세 남자에게 둘러싸여 온갖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사랑과 질투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캔디 스타일 주인공은 여전히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잘 버무려 놓으면 깨알같은 재미를 주는 트렌디한 스토리를 우리네 과거로 돌아가 역사상 있었던 이야기와 머릿속 상상력을 동원하여 알콩달콩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재미난 발상이 인기비결이지 않을까. 그 점에 매료되어 책을 읽게 되었으니 나도 트렌디하게 가는 셈이다. 이런 로맨틱한 스토리말고도 글 속에는 조선후기 정쟁의 중심이 되었던 노론, 소론, 남인 그리고 노론안에 시파와 벽파의 대립을 은근히 드러내어 앞으로 진행될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 결코 학인으로만 남지 않을 것이고 시대의 불합리성을 대변하는 홍벽서 관련 소문은 주인공 네 청춘들과 연관될 것이 분명하다.  대학과 경국대전 강의를 한두달안에 학습해야 하는 조선시대 최고의 학문기관이었던 성균관의 밤은 언제나 등잔불이 꺼지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밤새워 공부하는 젊음이라니, 목표를 향해 한발한발 가고프지만 신분제가 앞을 가리고 가난은 평생 짊어져야 할 그런 것이지만 윤희의 마음속 사랑과 행복을 함께 할 백마 탄 왕자님, 운명의 파트너, 욕심나는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이 어렴풋이 그려질 다음 권이 기대된다.

 

성균관이라는 시설을 최고학부로만 알고 있었지 그 안의 제도적인 장치들이나 치뤄야 할 시험들의 명칭, 지금처럼 식당이나 도서관시설이 있었고 성균관내에서 따로 출간되는 유생용 책자등 인문서에서 만나보면 좀더 이론적이고 학문적으로 서술될 사실들이 소설속 상황에 나오니 실로 사실적으로 읽힌다. 픽션역사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역사책이 아니고 즐기는 로맨틱 소설이라는 점에서 그저 조선후기로의 환상여행을 생각하면 편하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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