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사진
하루
  1. 에세이

이미지

도서명 표기
[eBook] 행복의 충격
글쓴이
김화영 저
문학동네
평균
별점8.4 (62)
하루

한 권의 책이 마지막 페이지를 남기고 있다. 더 이상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 그 마지막 순간에 통제불가능한 심장의 떨림소리를 듣는다. 빠담. 빠담. 한때 극적이었던 누구나의 젊음을 기억하고 그로 인해 나는 여전히 행복함을 그로 인해 나는 여전히 청춘임을,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소리에도 흔들림없이 인정하고 싶다.


 


해질녁, 초록색의 황혼 녁, 바닷가에 서면, 눈을 감아야 참으로 보이는 나의 별, 잘 익은 과일, 하루에 한 번 익은 지구가 비로소 내 가슴에 깊이깊이 들어앉는다. 내가 그 별 속에 살고 , 그 별이 나의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전을 시작한다.


 


당신은 혹시 보았는가? 사람들의 가슴속에 자라나는 그 잘 익은 별을, 혹은 그 넘실거리는 바다를. 그 때 나지막히 발음해보라. "청춘" 그 말 속에 부는 바람 소리가 당신의 영혼에 폭풍을 몰고 올 때까지.


 


문득 사진첩을 펼쳐보곤 잃어버린 것만 같은 내 최초의 청춘을 꺼내든다. 그 속에, 그 사진속에 영원히 안장된 야윈 청춘이 왜 그다지 낯설게 다가오는 지 모르겠다. 시공의 차이를 감내하며 사그라드는 불꽃의 열기도 감지하지 못하는 나이가 되버려서일까. "행복"의 말 속에는 청춘이 벗어놓고 외출한 옷이 걸려 있을 뿐. "행복"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것을 이미 이해하지 못할 때는 너무 늦었다. 가장 극적인 시절에는 그게 뭐였는지 잘 모른다. 그 순간에 그저 좋았다고, 그리고 행복했다고, 그런데 지금은 별로라고, 항상 그랬다. 가슴속의 진동이 내 살속의 핏줄을 두드릴 때 그 때가 바로 떠날 때임을 알았다면 나는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거다. 이처럼 삶이란 반추와 회한의 연속인가보다. 지나고 나면 제대로 보이는 그런 것! 불확실함이 지배한 청춘의 시기에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을 등으로 밀어내며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지중해, 그 곳으로 떠난 저자의 지금도 살아 숨쉬는 젊음의 이야기가 언젠가 한번은 거쳐갔어야 했던 내 지난 날의 도달하지 못한 외로운 섬 하나 그곳에 있었다.


알베르 카뮈와 그의 스승 쟝 그르니에와 알퐁스 도데와 마르셀 파뇰이 사랑한 남프랑스, 프로방스의 뜨거운 햇빛은 젊은 영혼에 문학적 감성과 성취를 심어주었을 것이다. 황홀한 아픔이 느껴지는 그 햇빛, 그 때문에 인생이 바뀌고 삶과 죽음이 오락가락해진다. 북아프리카 뜨거운 대지를 열받게 만든 오랑의 햇빛에 메르소는 처절한 삶의 부조리를 드러냈고 생레미드프로방스의 정신병원에서 생애 최대 작품을 출산해냈던 빈센트 반 고흐도 프로방스의 전형적인 햇빛과 세찬 미스트랄과 보랏빛 라벤더향에 영향을 받았다.


7월의 밤별은 유난히 밝다. 프로방스의 아가씨 스테파네트 곁에서 보는 별은 더욱 밝다. 밤하늘에 가장 멀리 있는 별의 이름이 '영혼의 수레'라는 걸, 별들도 결혼을 한다는 걸 설명하는데 무언가 부드럽고 연한 것이 어깨위에 가볍게 얹히는 그 느낌을 겪어내려 가슴속 별을 찾아 방황하던 우리들의 모습이 알퐁스 도데의 감수성안에 겹쳐드는 곳, 프로방스다.


한때 세계의 수도였던 파리는 지금도 여전히 그 정서를 잊지 못한다. 프랑스 땅 남쪽지방에 엄연히 프로방스라는 네이밍이 붙어 있지만 파리지엥은 파리를 제외한 프랑스의 모든 동네를 일괄적으로 프로방스라고 부른다. 글자로 쓰면 대문자와 소문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쟝 드 쁠로레뜨]를 쓴 마르셀 파뇰은 프로방스의 언어인 프로방살로 글을 썼다. 지금은 흩어진 언어라고 하지만 우리에게도 틈틈이 활용되는 사투리가 토속적인 미학을 드러낼 때가 있지 않은가.


 


남프랑스 여행을 계획했던 적이 있었다. 저자의 젊음 시절에 여행한 여정과 거꾸로 여행을 한 셈인데 글을 읽는 동안 비슷한 느낌, 비슷한 공감이 있어서 나의 여행담을 담아본다. 지난 해 여름 북독일의 우리집에서 남쪽의 뮌헨을 거쳐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경계인 티롤을 넘었다. 북이탈리아의 산세는 기막히게 아름다웠다. 비첸차의 밤하늘의 별과 한 방의 여운을 남기는 번개와 급작스러운 소나기에도 대지에 몸을 누이고 들었던 찬란한 빗소리는 잊을 수가 없다. 밀라노와 베로나, 베네치아의 거침없는 관광객의 인파속에서도 내내 여행자이고 싶었다. 리도섬에서 만난 폴란드 가족의 한 소년, 타지오의 찰나적 젊음을 숭배하며 에센바흐의 임박한 죽음을 탄식한 토마스 만을 잊을 수가 없다. 관과 같은 곤돌라의 음엄한 검은 색채와 그 안의 화려하게 장식된 비단쿠션들이 마지막 가는 그 길을 안내하는 죽음의 사자처럼 그려지는 토마스 만의 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어찌 ...아! 어찌 기억하지 못하겠는가.


로마의 포로 로마나와 콜로세움사이에서 두어시간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는 거대한 야외극장을 보려고 아픈 다리와 밀려나오는 땀을 닦으며 짜증반 설레임반 섞인 관광객으로 돌변한 나의 모습도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지금 생각해도 나는 로마가 지겹다. 바티칸의 돔과 박물관의 안치된 종교도 기억한다. 이따금 생각하면 그도 잊지 못할 한 번의 추억이 아니겠는가.


얼른 떠나고 싶은 로마를 떠나게 되자 자연이 만들어낸 위대한 사건 하나와 만났다. 저자가 그리고 있는 토스카나의 전경을, 그 찬란한 햇살을 , 푸르른 하늘을, 눈앞에 들이닥친 엄청난 바위산들을 뒤로 하면서 피사와 중세의 도시 시에나를 거쳐 남프랑스로 향했다. 진한 상업주의에 물들었다는 니스도 나에게는 천국처럼 다가왔다. 햇빛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북유럽의 4월은 노란 수선화와 자프란의 노랗고 파란 꽃들의 향연으로 부활의 기쁨을 드러내지만 그 뿐이다. 엄청난 추위의 연속선상에서 부활절은 찾아오고 햇빛 한 자락 잡으려 애쓰는 부단한 노력들이 일상에서 보인다. 그러니 남프랑스 니스에서 북유럽인들이 전라의 육신을 태양의 제물로 바친다해도, 지중해의 푸른 물결에 부서진다해도 나는 그저 모조리 이해가 된다. 딱 여기까지였다. 엑상 프로방스로,  아를르로,  루르마랭으로, 오베르쉬르누아즈로 가고 싶었다. 까르까손느의 성벽에 기대보고 싶었다. 가서 빈센트와 테오의 무덤앞에 해바라기 한 송이 두고 오고 싶었고 카뮈의 무덤곁에 몇 시간이고 머물고 싶었다. 햇빛에 익숙하지 못한 지치고 어리숙한 청춘 둘만 아니었으면 가능했을텐데...아쉽지만 여행의 후반부를 이루지 못하고 스위스를 거쳐 북독일로 돌아와야 했던 여행이 끝끝내 카뮈와 쟝그르니에를 그리워하게 한다. 지중해를 닮은 김 화영선생님의 에세이를 당신께 추천하고 싶다. 오늘의 내가 어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각인시켜주는 글이기 때문이다.


 


 


 


 


 


 


 


 


 




좋아요
댓글
12
작성일
2023.04.26

댓글 12

  1. 대표사진

    하루

    작성일
    2012. 12. 15.

    @쟈파

  2. 대표사진

    마리에띠

    작성일
    2012. 12. 10.

  3. 대표사진

    하루

    작성일
    2012. 12. 15.

    @마리에띠

  4. 대표사진

    깽Ol

    작성일
    2012. 12. 10.

  5. 대표사진

    하루

    작성일
    2012. 12. 15.

    @깽Ol

하루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23.1.11

    좋아요
    댓글
    2
    작성일
    2023.1.11
  2. 작성일
    2022.10.13

    좋아요
    댓글
    4
    작성일
    2022.10.13
  3. 작성일
    2022.10.13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2.10.13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7.1
    좋아요
    댓글
    128
    작성일
    2025.7.1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7.1
    좋아요
    댓글
    114
    작성일
    2025.7.1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7.1
    좋아요
    댓글
    206
    작성일
    2025.7.1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