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하루
- 작성일
- 2013.2.27
히말라야의 선물
- 글쓴이
- 히말라야 커피로드 제작진 저
김영사
커피를 즐겨 마신다. 나의 커피 이력은 유년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찬장 맨 위에 올려진 길고 묵직한 유리병에 담긴 밤색가루가 눈에 들어왔는데 그게 도대체 뭔지 몰랐다. 언젠가 엄마가 안계신 날을 틈타 찬장위 물건의 정체를 내 눈으로 확인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날은 금방 찾아왔다. 탁상의자를 딛고 올라가 찬장문을 열고 유리병의 플라스틱 뚜껑을 열었다. 밤색가루에서 야릇한 향이 느껴졌는데, 어쩐지 익숙했다. 언젠가 엄마가 홀로 계실 때 드시던 그 액체에서 흘러나오던 향이었다. '이렇게 맛난 것을 혼자 드셨네.'하면서 나도 마셔야지하는 심사로 물을 끓였다. 어디에다? 국자에다!
곤로에 불을 켰다. (나는 10살 때 이미 밥을 하고 된장국을 끓일 줄 알았다. 당연 불사용법도 터득한 상태였다.) 거기에 국자를 올리고 넘치지 않게 물을 부었다. 물이 끓자 커피 한 숟가락을 넣어서 휘휘 저었다. 살짝 내 코끝을 자극하던 그 향에 감탄하며 숟가락으로 훌훌 불어 입안에 흘러보냈다. 그런데 윽! 너무도 썼다. 향은 좋은데 쓴맛때문에 설탕생각이 나서 설탕을 한숟가락 넣었더니, 캬아!!! 너무도 훌륭한 맛에 감복하며 국자바닥까지 쪽쪽 빨아서 다 마셨다. 그 이후 나만의 숨겨진 행복은 한 국자의 커피를 마시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행복감이 늘어갈수록 찬장위 유리병에 담긴 밤색가루는 줄어갔다. 나중에 엄마가 아시고 국자는 위험하니까 냄비에 끓여마시라고 알려주셨다. 국자바닥이 누렇게 탄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고 하시면서...
유독 낯을 가리던 나의 연약한 정신세계를 한방에 날려버렸던 일생일대의 대발견이 있었으니 바로 중학생이 되고 첫 수업이 있던 날, 우연히 학교 복도에 설치된 커피자동판매기를 발견하고부터였다. 세상에 이렇게 편리하고 대담한 기계가 다 있다니, 하면서 동전 50원 넣으면 바로 마실 수 있는 크림설탕커피가 나름 바쁘고 피곤했던 중딩의 일상에 여유와 위안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쉬는 시간에 뽑아 책상 오른쪽 언저리에 놓고 선생님이 안보는 틈에 홀짝 마시고 다시 내려놓고, 이러면서 맘에 드는 선생님 교탁에도 한잔씩 올려놓고 나도 한잔하면서 수업을 받곤 했던 기억이 커피향처럼 스멀스멀 올라온다.
지금 읽은 [히말라야의 선물]은 히말라야 커피로드 다큐멘터리용 영상 프로그램을 글로 옮겨 놓은 에세이이다. 향기로운 커피향에 얽힌 낭만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가난과 굶주림을 당연시하며 살아가는 네팔의 말레마을 원주민들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글이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글이다. 그들에게 밥벌이의 희망은 바로 한 그루의 커피나무를 심고 기르는 일로 시작된다.
히말라야를 끼고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멀리 떨어진 말레 마을, 이 곳은 우리가 일상으로 생각하는 문명의 이기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안스럽게 그려진다. 어렵게 채워진 밥그릇을 아침마다 내미는 어미와 아랑곳 없이 먹어치우며 더 달라고 그릇을 내미는 아이들, 가난과 굶주림에 지쳐 돈을 벌러 인도와 두바이로 떠난 집안의 가장과 큰아들, 남은 여인들의 참아내야만 할 슬픔과 천진한 아이들, 그들에게 히말라야의 자연이 준 선물은 한 그루의 커피 묘목이었다. 가뭄에 단비와 같은 커피나무 기르기가 가족들의 일상 일거리가 되고 로띠를 만드는 옥수수가루를 살 수 있는 밥벌이가 되는 일이라고 한다. 편리하게 사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를 여유라고 말할 때 말레마을 원주민들에게 커피는 처절한 밥벌이였던 것이다. 우기에 많은 비로 인해 대부분의 나무가 쓸려가고 한 그루 남은 커피나무에 정성을 다하며 커피열매를 두번 재배하면 일나간 아버지가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이야기하며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순수한 사람들의 모습이 참 눈물겨웠다.
경제가 힘이 되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그럼에도 만약 자본의 거대한 힘이 이런 순수한 곳까지 덥친다면 성실과 희망이라는 단어보다는 알력과 욕망이 앞서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생겼다. 말레마을 사람들이 재배한 커피체리가 그린빈에서 블랙빈이 되어 소비자에게 진정한 커피의 모습을 드러낼 때 그들이 흘린 땀의 노고와 관계없이 유통과정에서 발생되는 자본주의 논리를 벗어버린 깨끗한 거래의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바로 공정무역이라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고 그런 네팔의 커피가 국내에도 수입되어 한 잔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커피로 이름이 나게 되었다.
한때 아동착취의 대명사가 된 커피재배 관련 르포형식의 글들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이참에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졌다. 역사와 노동 과정과 소비의 형태까지, 유년시절에 멋모르고 내가 즐긴 커피향을 네팔의 아이들은 밥벌이를 위해 길러야 하는 노동이자 눈물이었다니...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아울러 내 식탁의 반찬수와 분량조절도 더욱 신경쓰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없이 바닥에 버리는 먹거리가 좀 많은가.
영상으로 보면 더 나을 뻔했다. 아무래도 글로 옮기는 작업은 또다른 형식이 필요했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서체의 다양성을 보여주었지만 그런 일이 도리어 읽는 감을 떨어뜨리고 혼잡스러웠다. 욕심있게 많이 올린 사진들, 일관성없는 편집구성도 읽는데 어지러움을 준다. 단순함과 간결함이 있었다면 좋았겠다. 오탈자에 더욱 신경을 쓰길 바란다.
- 좋아요
- 6
- 댓글
- 18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