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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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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데츠키 행진곡
글쓴이
요제프 로트 저/황종민 역
창비
평균
별점8.5 (19)
하루

거울을 들여다 본 아침 유난히 하얗게 솟아오른 정수리의 흰머리가 눈에 거슬린다. 머리카락 새어지는 게 새삼스러운 일도, 대수로운 일도 아니라는 걸 아주 오래전부터 인정하고 살아왔는데도 서글퍼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안에 톡톡 튀어오르던 그 어느 것도 이제는 닳아 없어져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시간이 갈수록 선명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잔인한 물증으로 남는다. 이미 쇠잔해진 제국의 운명도 역사라는 거울앞에 서면 확연히 그 본모습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 한 권의 책을 읽는 중에 나는 나에게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들을 묵묵히 바라보며 쓸쓸한 독서를 마저 끝냈다. 제국의 흥망성쇠와 한 집안의 멸문이 나와 뭔 상관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엄밀한 역사적 팩트가 가상인물들의 코믹한 엄숙함과 찌질한 미숙함으로 한 곳에 섞일 때 텍스트는 반짝반짝 빛을 내며 내 안에 들어왔다. 감정이입의 순간이었던 것 같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가면 새하얀 어부의 성곽옆에 장엄한 분위기의 성당이 있다. 리스트가 이 곳에서 연주를 했다고도 하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보물들이 꽤 많이 보관된 곳이라고도 한다. 나는 이곳저곳을 보다가 아름다운 왕비의 두상을 보았다. 이름하야 엘리자베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통치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녀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부인이다. 당시 유럽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며 치장하는데만 한나절을 썼다는 일화와 독일의 여배우 로미 슈나이더가 주연한 영화 [씨씨]의 실제 인물이다. 이런 얘길 쓰는 이유는 왜 헝가리 여자가 오스트리아로 대표되는 합스부르크의 왕비가 되었는지 의문을 가져서이다. 나는 그 때로부터 이 소설을 읽기전까지 합스부르크 이름만 알았지 대체 그 땅덩어리가 어느 정도였는지, 왕가의 계보는 어떠했는지, 근친이 상식이었던 그들의 결혼방식을 풍문으로만 듣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였던 사라예보에서 발생한 황태자 피격사건이라는 건 세계사 시간에 얼핏 들은 것 같다. 그 황태자가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조카 프란츠 페르디난트라는 사실, 그리고 보스니아주변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지만 가까운 세르비아가 틈만 나면 차지하고픈 야심에 가득찬 영토였다는 걸 알았다. 권력분쟁이 한창이었을 당시 사건이 일어났고 독일제국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러시아가 세르비아 왕국을 지원하면서 20세기초 비극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이익과 타산을 셈하며 세계열강들은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대전 중 프란트 요제프 1세가 죽자 합스부르크 왕가는 험난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며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복종하며 삼대를 이어 온 폰 트로타 가문의 연대기는 제국의 몰락과 죽음이라는 소멸의 단어를 통해 한 시대를 공감하고 해석하려는 작가의 명료함이 돋보인다. 바로 이 부분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거 전승을 거두지도 못한 쏠페리노 전투에서 황제를 구한 무용담을 명예롭게 여기며 살았던 할아버지 요제프 폰 트로타 지폴리에 남작을 기리며 자신도 그렇게 명예롭게 죽을 것이라 다짐하지만 매사 꾸려가는 일상은 찌질한 손주가 바로 카를 요제프 폰 트로타이다. 그의 아버지 프란츠 폰 트로타는 군수로써 복종과 명예만이 가치있는 일이라 여기지만 그의 청지기 쟈크가 죽음에 이르자 그의 시대에 종말이 다가왔음을 직감하며 무기력감에 무너져간다. 카를 요제프는 집안 분위기에 어울리게 아버지에 대한 복종과 형식에 얽매인 소소한 일상의 습관들때문에 본질에 다가가는 일에 서툴다. 첫사랑이었던 슬라마 부인이 죽었을 때 두려움과 수치심에 되레 겁을 내며 도망가는 태도나 새로 부임한 지역의 나이 많은 귀부인과의 연애도 수습 불가능하다. 아마 시절이 요구하는 지나친 명예규범의 관습이 그즈음의 청춘들을 그리 내몬 것은 아닐런지. 사사로은 말다툼이나 행동거지에도 죽음을 부르는 결투를 하려하고 그로 인한 명예를 최상의 미덕으로 여긴다. 명에규범을 지키려다 죽은 친구, 의사인 막스 데반트의 죽음이 카를 요제프의 삶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삶에 대한 열정이나 인간의 가치추구에 대한 세기말적인 반응이었을까. 합스부르크 왕가를 위해 바쳤던 가문의 영광이 발코니 앞에서 연주하던 라데츠키 행진곡과 오버랩되는 시점이 문장속에 자주 등장한다. 과거 영화로운 시절에 대한 짙은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군인답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죽어야 할 부분에서 물동이 들고 오다 적군의 총에 맞아 죽게 되는 카를의 죽음은 우스꽝스럽기까지했다. 


연초가 되면 오스트리아 비인에서는 신년음악회가 열린다. 성장을 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박수로써 지휘하는 곡이 바로 라데츠키 행진곡이다.  비바! 오스트리아  비바! 합스부르크의 영광을 추억하고 싶은 그들의 풍속이 이제는 전 세계인이 보는 연주회처럼 되었다. 그러나 역사소설속 제국의 마지막은 비바를 외칠 수 없는 쓸쓸함 자체였다. 한 왕조와 한 가문과 한 인간이 소멸되어가는 과정이 레하르와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처럼 극적으로 연주되는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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