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이기에 꼭 읽어야 할 소설이다.

한국문학

하루

작성일: 2014.6.11

도서명 표기 — [eBook] 나목
글쓴이
박완서 저
세계사
평균
9.2 (46)
하루

누구나 마음속에 꽃씨 하나쯤 품고 살아간다. 어떤 모양의 꽃으로 피어날 지 알 수 없지만 저마다 벌과 나비가 날아드는 향기 있는 꽃봉오리로 피어나고 싶을 것이다. 때가 되면 순풍을 타고 더 많은 꽃씨를 흩뿌리며 새로운 정착지에 안착하고 싶어할 것이다. 꽃씨가 품은 뜻이 바로 자유는 아닐까. 자유로우면 꽃을 피워낼 수 있고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20세기를 거쳐 21세기를 살아가는 일은 축복이다. 아니 살아가는 일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 여전히 세상은 힘 있는 자들의 것이지만 일상과 삶 전체를 그들에게 점령당하고 억압받으며 굴욕적으로 살아야 했던 전쟁통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되기 때문이다. 점령된 땅은 폭격의 참상을 떠안는다. 그 곳을 피해 달아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참혹한 일상은 반복되고 그 곳에 돌아가지 않기 위해 점령된 땅, 도심을 떠돌며 방황하는 젊은 영혼이 우리의 주인공이다. 그 곳에는 폭격으로 두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정신줄을 놓고 귀가할 딸에게 줄 김치국이 전부인 밥상이 차려진 곳이다. 회색빛으로 바랜 머리털과 잿빛을 걸친 어머니의 모습은 폭격을 맞은 그 고가와 닮았고 가부장적인 제도속에서 젊은 영혼이 겪어야 했던 내면의 울분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하늘도 무심하게 두 아들을 데리고 가고 계집애만 남겨두다니...

이 소리를 들었을 때 계집은 집에서도 사람 대접을 못받는가 싶을 정도로 분노했을 것이고 폭격에 대비해 두 오빠들을 숨긴다는 장소가 마침내 그들의 관속이 되어버렸으니 죄스러움이 혼돈스럽게 겹쳐졌을 것이다. 주인공 경아는 6.25를 거쳐 서울 수복이후 PX 에서 미군과 양공주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환쟁이들의 작업을 돌보며 일상을 이어가는 20살의 젊은 아가씨이다. 앞에서 마음에 품은 꽃씨라는게 그 아픈 시대에도 존재했을 것 같다. 내면의 아픔이 정신적 스트레스라고 간단히 말 할 수 없는 시대가 아닌가. 점령된 땅은 학살이 자행되었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자는 억압에 익숙해져간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 점령된 땅의 딸들은 쾌락의 노예로 살아가며 꿈의 나라 미국에서의 삶을 꿈꾼다. 금방 그 꿈들은 물거품이 되지만.... 고통과 아픔의 내면을 품은 경아의 발자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큼 발랄하다. 마흔에 첫글을 쓴 작가 박 완서의 타고난 활력이 아닐까.

나는 박 완서님의 소설을 몇 권 읽었지만 그의 첫 작품인 [나목]은 이제서야 읽었다. 제목만 들었던, 고 박 수근 화백과의 인연으로 회자되는 소설이 바로 [나목]이다. 전성기때의 단편소설과 에세이류,그리고 유작으로 남은 몇 권의 에세이는 작가의 진면목보다는 애잔하고 따사로운 나이듦의 조각들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자연스럽고 따뜻하고 안락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아프다. 많이 아프다. 아픔의 체험없이 그려지기 힘든 구성이 아닐까.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짓임을 개인의 아픔을 통해서 [나목]은 하염없이 전달하고 싶어한다. 그 안에는 자유에 대한 갈망과 과거의 묵은 때를 벗어내고픈 열망이, 지금의 자신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를 만들고 싶어서 연일 방황하는 젊음이 그려진다. 아픈 시절이었기에 애증의 목마름이 한결 더 했을 것이다. 사랑을 하는 젊은이들이 있다면 [나목]의 경아처럼 진부하고도 거침없는 가치의 포효를 읽어내었으면 좋겠다. 시절이 다르기에 경험되지 않은 것에 대한 공감력은 부족할 것이다. 그러니 더더욱 읽어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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