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하루
- 작성일
- 2014.9.4
여름의 묘약
- 글쓴이
- 김화영 저
문학동네
가을이 오려나보다. 바람결이 한결 부드럽다. 가는 여름이 아쉬운지 나는 자꾸 햇살을 찾고만 싶다. 올 여름 북유럽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계절상 여름이어도 이 지역의 기온은 30도를 넘나드는 날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번 여름만은 예외였다. 어딜 가도 더웠으니 추적추적 내리는 빗길 풍경이나 거센 여름 바람에 두들겨맞은 듯 두 뺨이 불그레지는 일은 거의 없을 정도로 뜨거운 날이었다. 그런 여름이 가고 있다. 고맙게도 올해 마지막 여름길을 뜨거운 햇살이 배웅해주고 있다. 가는 여름이 아쉬워서 그럴까, 그렇게 더운 날을 선사하고도 어디에 그렇게 눈부신 햇살이 남아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남김없이 던져주고 있다.
나는 새삼스럽게 햇살을 만끽하며 한 권의 책을 읽는다. 여름의 끝자락에 읽으면 좋을 책이다. [여름의 묘약] 김 화영 선생님의 에세이로 20대 남프랑스에서의 유학시절을 그린 책 [행복의 충격]에 이어 40년이 흐른 최근에 또다시 찾아간 프로방스에서 그가 거쳐간 사람들, 지금은 사라진 사람들과 풍경과 음식과 여름빛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20대를 보낸 기억과 현재의 변화된 모습이 물처럼 그려지는 글을 읽고 있자면 지나온 시간에 대한 상념에 젖지 않을 수 없다. 흐르기를 멈추지 않는 강물처럼 우리의 삶은 흘러가고 있다. 물꼬가 트인 곳이 언제였을까, 어디였을까, 나는 명망있는 불문학자의 인생 물꼬가 바로 프로방스에서 트였으리라 추측해본다. 자신이 가장 아름다웠던 때를 함께 한 공간이란 잊을 수 없는 법이다. 그 곳에 청춘이, 열정이, 사랑이, 치열했던 문학공부가 함께 했음을 글 여기저기에서 묻어난다.
루르마랭 카뮈의 무덤앞에서 그가 말하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 죽음을 논하다보면 햇빛으로, 삶의 기쁨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문장앞에서 잠시 글읽기를 멈추기도 했다. 나는 언젠가 불의의 사고로 그리 길지 않은 생을 마감했던 알베르 카뮈가 글쓰기를 멈추고 잠시 시선을 던진 풍경과 그 발자취가 남아 있을 그 곳으로 바람처럼 흘러가지 않을까 꿈꿔본다. 고갱과 결별하고 그 광기를 참지 못해 자신의 귀를 자른 반 고흐를 감금했던 정신병원에, 사람들은 그를 미쳤으니 길거리에 그대로 놔둬서는 안된다고 했고 그가 죽자 그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보러 문화라는 단서를 붙여 그를 세상에 내놓았다. 아이러니한 상황은 사람의 생애동안 끊임없이 진행되는가보다.
40년전 갓 결혼한 신부와 함께 왔으나 이제는 그의 아이들이 장성하고 결혼을 해서 대가족이 프로방스에서 뜨거운 여름을 보낸다. 사위, 손주를 비롯해 사돈내외까지 초대를 하여 시프레 나무 두그루가 양쪽을 받치는 시골 농가에서 프로방스의 여름을 맞는다. 한낮의 빛나는 여름빛이 저녁무렵 은은한 불빛에 사그러들고 캉탈루멜론과 파르마장봉의 뜻밖의 콤비네이션을 맛보며 로즈와인으로 무르익어가는 밤분위기를 상상해본다. 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어렴풋하게 비슷한 분위기를 기억해본다. 남유럽 지중해를 가까이 한 도시에서 드러내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문학자이기에 불문학서에 등장하는, 특히나 한국어 번역에 이름을 올린 저자이기에 불문학도가 읽으면 더 좋을 책이다. 이해와 공감하는 부분이 꽤 많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젊음을 보냈던 공간에 다시 찾아와 그 때 자신을 돌보며 그 곳의 사람들과의 인연을 둔 적이 없다면 기억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을 지 모른다. 김 화영 선생님의 학구적인 청춘을 그린 [행복의 충격]이 그래서 더 현학적이었다면 [여름의 묘약]은 초로에 젖게 하는 쓸쓸함, 옆에 있는 파트너의 소중함, 연륜이 쌓일수록 빛이 나는 감성, 문학적 성취감이란 가만히 앉아 책을 안고 있으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공간을 끌어안아야 비로소 만져지는 고감도의 터치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 아름다운 날들, 여름의 끝, 나는 이 여름을 이렇게 보낸다.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과 함께, 여름의 햇살과 함께 마지막 뜨거움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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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