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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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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글쓴이
한강 저
창비
평균
별점9.4 (3429)
하루

작가 한강의 작품은 처음이다. 글친구의 책선물로 읽게 된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가히 2014년을 대표할 만하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했던 광주민중항쟁의 10일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사연을 재구성한 스토리로 문장 하나하나에 눈물과 진한 땀이 배어 힘겹고 무서운 그 때의 상황을 거침없이, 매몰차게 그리고 있다. 읽는내내 군화발에 짓이겨진 흩어진 꽃잎들의 모습이 떠올라 몇번을 질금 눈감았는지 모른다. 그 때의 기억에 내 몸은 소스라치게 놀라 움츠러들곤 했다. 그 일이 일어난 지 35년의 세월을 맞고 있다고 생각하니 무심한 시간이 새삼 두려워졌다. 그 지난한 시간동안 그 일을 옆에서 지켜본 세대들은 이제 나이들어간다. 그들이 겪었던 80년대초, 80년대 중반, 그리고 80년대 후반은 불의에 항거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온몸을 불사른 동지들과 투사들이 존재했던 시절이었다. 80년 광주를 유린하고 정권을 탈취한 세력들의 장기집권에 항거하며 87년 6월 항쟁이 발발했다. 대통령 직선제 쟁취! 대한민국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리더를 선택한 시기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음을 후배세대들은 알아야 한다. 그 사이사이 항쟁으로 이어지기까지 도화선이 되었던 사건들도 낱낱이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을 읽은 당신은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이제는 기록과 문헌들을 통해서만 보게 되는 역사적 사실들을 기억을 더듬어 한발짝 내민 작가 한강의 발걸음에서 선명한 발자욱으로 되살아았음을....


광주 망월동 구묘지에 갔었다. 검은 흙을 어설프게 덮고 있던 짚포대들, 그 검은 흙더미들속에 묻힌 이들, 무수히 꽂힌 만장들, 무명천에 써붙여진 검은 함성들, 회색빛 하늘은 그 곳을 떠날 때까지 우중충했었다. 누가 누구인지도 모를 무덤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 그 죽음의 장소를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그 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말끔히 정돈되었다. 망월동 신묘지에 가면 당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시신도 없는 이들의 방이 있다. 높고 둥근 천정이 동굴안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곳이다.  빽빽히 걸린 그들의 흑백사진들이 그 방에 있다. 들어서면 가슴에서 뜨거운 무엇이 울컥 넘어오다가 미처 달래지못한 채 신음소리로 뱉어내는 곳이다. 나는 그 곳을 그렇게 기억한다. 

작가가 글로 묘사한 시신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을 때 망연자실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80년대의 캠퍼스는 그들이 저질렀던 학살과 쿠데타의 면면을 숨김없이 폭로했다. 은폐와 고문을 일삼던 무리들이 대학가 대자보에 등장했고 우리는 분노했다. 5월 18일이 다가오면 광장에서 이어지는 토론과 강연들에 참석하지 않고 강의실에 앉아 평소와 다름없는 수업을 기다리는 학우들을 교수들은 정신없는 녀석들이라 내쳤다. 나가서 몸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시대를 배우라고 내쳤다. 그런 시절을 기억한다.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게 생각나는 지 모르겠다. 간접적으로 겪은 시대의 곪은 살을 떼어내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에 문득 되살아난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정신적 외상은 아닐까. 나만 그럴까. 

그날 새벽 문득 눈이 떠졌다. 새벽 4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신새벽에 눈뜨자마자 갑작스럽고도 직관적으로 내 뇌를 스치며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학살" 그건 바로 학살이었다. 인간이 인간의 삶을 살고 있다면 그 안에 들어있던 아이들이 그 시간동안 살아있을 수 없다는 건 당연히 알 것이다. 그런데도 가만히 두고 보고 시간만 떼웠다. 우리의 변명은 누가 들어도 상식적이고 이해할 수 있으니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하는 지레짐작으로 구조를 안했다. 이게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국가다. 구조를 안하고 버틴 그 자체, 그걸 논해야 한다. 학살과 다름없는 사고아닌 사건을  우리는 빠뜨리지 말고 논해야 한다. 작년 봄, 많은 아이들이 사라졌다.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 그 사고가 일어난 지 벌써 일년이 가까워오고 있다. 나는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지금 우리의 시점이 소름끼치게 공포스러웠다. 꼭 이런 소설을 읽어야만 비로소 잔인한 현실을 인식하는 건 아니다. 새해가 밝았으니 지난 일은 모두 잊고 희망찬 날을 시작하자는 너무도 스스럼없이 뱉어내는 환희에 넘치는 음악회 아나운서의 멘트가 역겨웠다. 사실 우리는 희망차게 살고 있다. 매일매일 타인의 사고나 사건소식을 접하며 매일매일 잘 먹고 잘 잔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안도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매일 감사하며 주어진 시간을 천금같이 여기며 산다. 대부분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잔혹한 현실은 당장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 거꾸로 흘러흘러 돌아가보면 당연히 마주치게 되는 사건속에 그 원인이 있다. 원인을 밝히고 사실과 진실을 공개할 때 잔혹한 현실은 비로소 정상을 찾아간다. 그 잔혹함의 중심에서 그 범죄행각을 벌이는 인간들은 그걸 안다. 세상이 정상적으롣 돌아가면 안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들이 지배적인 힘을 지속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원동력은 순진함을 버리고 부단한 성실함으로 막장을 현실화하는데 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국가다. 고결한 정신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이슈화가 안되면 어떤 논쟁도 버려지는 세상이니 이를 어쩐다. 


그럼에도 한국소설은 참 아름답다. 아니 한국어가 아름답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시적인 언어, 소설에도 시적언어가 몽실몽실 피어난다. 잔혹한 역사를 아름다운 언어로 탄생시켜 그 때를 잘 모르는 후배들에게 읽히고 싶은 소설이다. 너무 쉽게 접근하고 쉽게 질리는 후배들에게 힘들고 불편하게 읽히고 싶은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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