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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bers1001
- 작성일
- 2010.4.17
1984
- 글쓴이
- 조지 오웰 저
민음사
<1984> by 조지 오웰
현재 2010년. 책 제목은 1984. 그리고 조지 오웰이 이 소설을 탈고 했을 때는 1948년. 이듬 해 출간.
당시에는 미래를 예견하는 센세이셔널 한 소설이었을 것이고, 지금은 이런 예상을 하고 있었고, 그 사실에 공감을 할 수 있다는 사고가 우리들 머릿 속에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운 소설이고, 실제로 이렇게 되지 않았다는 (적어도 내가 사는 사회는) 사실에 안도하게 만들어 주는 소설이다.
소설은 오늘과 같은 4월로 시작된다. 첫 문장은 이렇다.
4월, 맑고 쌀쌀한 날이었다. 괘종시계가 13시를 알렸다. (p.9)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고 커다랗게 적힌 포스터가 여기 저기 붙어있는 런던에 살고 있다. 그것도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으로. 하지만 윈스턴은 이런 전체주의가 다 잘못된 사실임을 알고 있어서, 비밀스럽게 자신의 일기장(이건 정말 허용이 되지 않는 것이다!)에 자신의 생각들을 문서도 남기기 시작한다.
윈스턴의 이런 성향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쪽지를 흘린 줄리아와 통하게 되고, 둘은 지금의 언어로 말하자면 ‘밀회’혹은 ‘사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곧 둘의 관계는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신들과 같은 동무라 생각했던 채링턴 씨에게 발각되고, 더욱이 그들을 후원해 주었다고 믿었던 오브라이언에게 고문을 받게 된다.
쥐에게 뜯겨 먹히기 전 “줄리아한테 하세요!”라고 외치던 윈스턴은 다시 평범(?)한 일상 생활로 돌아오고, 하지만 결국은 자신이 항상 마음속에서 그리고 있던 하얀 복도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던 총알이 머리에 박히면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솔직히 책을 읽으면서 끝까지 읽는데 너무 힘들었다. 흥미로운 1장을 지나고, 꿈결같던 줄리아와의 밀회를 엿보는 듯한 두근거림으로 2장을 넘겼고, 체포와 함께 어떻게 될까 궁금해하며 3장을 읽어나갔다. 내용에 확실한 클라이막스는 존재했지만, 너무나 어두운 결말로 인해 나의 두근거리는 마음이 어디로 향해야 할 지 길을 잃어버린 듯 했다. 너무 참혹한 현실이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 소설속의 세상이 아닌가 이따금씩 의심해 볼 정도로 1984의 세상에 며칠간 빠져들었었다. 특히 소설 마지막의 부록 ‘신어의 원리’를 읽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내용도 나를 난해하게 만들었고 나에게 ‘이중사고’를 하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대 생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잔인함이나 불안전함이 아니라 그 자체의 적나라함, 추악함, 무관심이란 사실에 그는 놀랐다. (p.104)
혼돈 속의 이 사회에서는 시간 체제가 또한 24시간 체제이다. 마치 군대식처럼. 전체주의이기에 가능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사는 마을에 갔을 때 그는 구시대적 유물이 되어버린 12시간 체제의 벽시계를 발견하게 된다. 그 후로 1984에서 작가는 시간을 12시간 체제와 24시간 체제 두 가지를 병용해서 표기하기 시작했다. 특히 둘 만의 공간이 되어버린 채링턴 씨의 방에선 시간은 대부분 12시간 체제로 흘러갔다. 12시간 체제만을 사용했다가 다시 12시간과 24시간 체제를 병용표기 하게 되었다는 것은 결국 이 공간도 절대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것이리라. 이 곳도 결국은 빅 브라더스의 감시하에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란 말이다.
또한 포르노에 대한 설명이 재미있었다.
그는 포르노 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그 우두머리를 제외하고 모두 여자들이라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 이유가 여자는 남자에 비해 성적 본능을 억제하는 힘이 강하므로 그들이 취급하는 음탕한 것들에 의해 타락할 위험성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p.185)
성교란 적대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성교는 아이를 생산하는 데에만 써야 한다는 취지가 저변에 깔려있었다. 그런데 포르노까지 정부기관에서 생산을 해 낸다는 것은 뭔가 역설적이지 않은가. 마치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의 국민성을 해치기 위해 화투를 가르치는 것과 같은 분위기를 느꼈다. 어리석은 노동자를 자극시켜 깊은 사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편 같은 느낌.
줄리아는 이런 사회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오히려 더욱 열심히 일하고 더욱 반발심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게 한 뒤, 후에 자신만의 자유로움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 사고방식이 매우 영리했다. (정신이) 죽은 좀비들만이 사는 곳 같았는데, 줄리아는 여기에서 유일하게 생명력있고 생기있는 당원으로 나온다. (또 한명의 생기를 주는 사람으론 매일같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빨래를 널고 있는 아낙네를 꼽고 싶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당신은 지금 당장 누구와 함께 자고 싶으세요? 저예요, 아니면 해골이에요? 살아 있는 게 즐겁지 않나 보죠? 이건 나다, 이건 내 손이다, 이건 내 다리다 하는 식으로 느끼는 게 좋지 않으세요? 저는 현실 속에 있어요. 확실하고 단단하게 살아 있다고요. 당신은 살아 있다는 게 좋지 않으세요?” (p.193)
이렇게 생기있고 활기에 찬 대사를 말 할 수 있는 줄리아. 그리고 그런 그녀를 사랑하게(육체적으로도) 된 윈스턴은 서로의 보금자리에서 그동안 접해보기 힘들었던 온갖 설탕, 빵, 커피, 홍차 등등을 먹었고, 줄리아는 자신이 여자가 되고 싶어서 화장한 모습까지 보여준다.
그런데 이 곳에서 나중에 결정적 단서가 될 만한 대사가 나오게 된다.
“그만!”
(중략)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쥐야!” (p.205)
이 ‘쥐’가 나중에는 윈스턴의 모든 인내심을 다 풀어헤쳐 버리고 줄리아를 대신 죽여달라는 애원을 하게 만드는 모멘텀이 된다. 모든 고난과 고문을 다 견디어 냈지만 끝내 이 쥐만큼은 이겨낼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 모든 최고 공포가 실행되는 곳이 모든 이들이 그토록 두려움에 벌벌 떨게 했던 101호였던 것이다.
오렌지와 레몬이여, 성 클레멘트의 종이 말하네.
그대는 내게 서 푼의 빚을 졌지.
성 마틴의 종이 말하네.
그대는 언제 빚을 갚으려나?
올드 베일리의 종이 말하네.
부자가 되면 갚아주지.
쇼어디치의 종이 말하네. (p.252)
소설 속에서 완전한 구절이 다 등장하는 장면은 바로 오브라이언의 자택에서 와인을 마시며 셋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30분 동안에 나온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 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정확히 모르겠다. 계속적으로 나오는 누군가의 종. 그리고 돈과 관련된 사항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오, 잔인하고 불필요한 오해여! 오, 저 사랑이 가득한 품안을 떠나 스스로 고집을 부리며 택한 유형이여! 그의 코 옆으로 진 냄새가 나는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잘 되었다. 싸움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p.417)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결국 그의 이중사고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는 결론으로 끝나게 된다. 이 것을 아는 데에만 사십년이 걸렸다고 하면서. 소설에 처음 등장했을 때의 윈스턴이 서른 아홉이었으니 딱 일년 후인 것이다.
결국은 모든 저항이 불행으로 끝나버린 것이 되는데, 이는 우리에겐 하나의 역설적인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굳이 현대 사회에선 저항할 일은 없지만, 몇 십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상적으로 저항을 하는 학생들, 그에 맞서는 정치인들과의 싸움에서 필요했던 교과서적인 존재였을 지도 모른다.
사상에 맞서려고 골머리 썩히지 않아도 좋을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해 하며, 이 서평을 마치려한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었을 때도 세상이 편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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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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