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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유리
  1. 혼자놀기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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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이라는 말은 거울, 또는 체경을 뜻하는 라틴 어인 speculatus에서 온 말인데, 길 건너편에서 블랙을 염탐하는 일이 블루에게는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 같고, 그래서 자기가 그저 남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223


 


최근에 읽은 책들 중에서 <뉴욕3부작><나는 유령작가입니다>가 무척 닮아있었다. 책의 내용이나 주제가 닮았다는 게 아니고(어느정도는 비슷할까?^^;) 단편적인 문장(단어)이나 느낌들이. 좀더 확장한다면 '나'의 정체성과 글쓰기에 대한 것들, 우연과 필연, 진실과 거짓에 대한 것들. 혼자놀기 연구소의 왕심심 박사의 눈에 걸린 마르코 폴로와 월트 휘트먼의 언급도.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를 집어 들고 첫 페이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14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 이렇게 썼다. 109


 


월트 휘트먼은 그곳에서 1855년에 <풀잎>의 초판본을 손수 조판했고, 헨리 워드 비처가 자신의 빨간 벽돌 교회 연단에서 노예 제도를 공격한 곳도 바로 거기였다. 212


월트 휘트먼의 시구처럼 연신 포말을 일으키며 서로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해변과 투쟁을 벌이는 바다를 보며 저는 '두려움 없이 운명을 다하는' 일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81


 


그리고 김연수의 대필작가를 의미하는 '유령작가'와 오스터가 유령작가에 대해 말하는 부분. 작가는 각양각색의 삶들을 창조해내지만 정작 자기의 삶은 없는, 자신이 쓸 수밖에 없다는 의무와 희생을 짊어진 유령인 것을.


 


소설을 썼지요.


그게 답니까? 그저 쓰기만 했단 말이오?


글을 쓰는 건 혼자 하는 일이니까요. 그게 삶을 다 차지하죠. 어떻게 본다면 작가에게는 자기의 삶이 없다고도 할 수 있어요. 설령 있다고 해도 실제로는 없는 거죠.


또다는 유령이로군. 270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이름(삶, 역사)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어쩌면 그것이 진짜 자기 이름이 아닐지도 모른다. 진정한 '나'는 누구인지도 모른 채, 우연이 남발되는 삶과 죽음 속에서 진실과 거짓은 농담처럼 섞여 어느 것이 참인지 몰라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는(뿌넝숴) 운명. 


 


의미심장하지 않은 것까지도 그렇게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서 결국은 의미심장한 것이 된다. 16 


하찮은 사실들은 어쩔 수 없이 엄숙하고도 중요한 양상을 띠게 된다. 어쩔 수 없이. 52


 


삶이란 우발적인 사실들의 총계, 즉 우연한 마주침이나 요행, 또는 목적이 없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무작위적인 사건들의 연대기에 지나지 않는 거니까. 333


더이상 세상의 일들을 짐작하지 않게 되면서부터 인생이란 그저 사소한 우연의 연속처럼 보였다.  199


 


왕사족.


두 소설엔 내 이름과 변형이 수없이 등장한다. 유리의 도시, 휘트먼의 풀잎, 블루, 나무, 박지원의 처남, 성재와 성수... 그래서 '나'는 내가 살아있는 것이 입증이나 되었다는 듯이 기뻤고, 잃어버린 '나' 때문에 슬펐다. 그게 내 진짜 이름은 아니지만.


 


어둠이 점점 길어지는 시기는 빨간 공책에서 페이지가 점점 줄어드는 것과 일치했다. 조금씩 조금씩 퀸은 막바지로 다가가고 있었다. 어느 시점에서 그는 자기가 글을 더 많이 쓰면 쓸수록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될 시간이 그만큼 더 빨리 다가오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빨간 공책에 적힌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빨간 공책에 더 이상 쓸자리가 없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201-202


릴케의 이 문장은 그가 왜 밤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들려 곱은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공책에다가 글을 쓰느지 잘 말해줬다. 더이상 쓸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써나갈 때 그는 가닿을 수 있는 마지막 지점에 이르렀다. 그 지점에서 그의 문장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꿈은, 문장이 끊어진 자리에서 시작했다.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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