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작가이자 신뢰할 만한 작가(p.426)인 ‘구스타프 폰 아셴바하’에게 아름다움이란 도덕과 정신에 있다. 이는 빈둥대거나 방종하게 세월을 보내지 않고 예술에 열정을 바치도록 했고 그 결과 견고하게 작가의 세계를 다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길에서 한 남자를 보게 되는데 익숙하지 않은 외모를 가진 이방인과 마주친 후 여행을 떠나고 싶은 낯선 충동에 이끌린다. 당시 그는 지쳐있었고 지친 상태를 들키면 안 되었기 때문에 일상에서 도피하고 싶은 욕구는 낯선 감정이라 치부하기엔 상황이 절묘했다. 즉, 베니스로의 여행은 우연이 아니다. 게다가 그는 베니스에서 탄 곤돌라를 마치 관(p.444)처럼 느끼는데, 이는 여행의 위험성을 알리는 불길한 징조로 보였다.

‘아셴바하’가 완벽하게 아름다운 미소년을 보게 된 건 호텔에 도착한 날 저녁이다. 그는 다음 날 아침 식당에서 미소년을 다시 보는데 그 아이가 지닌 신적인 아름다움에 경탄(p.457)한다. 그리고 네가 머물러 있는 동안 나도 여기에 머물러 있겠다(p.457)고 결심한다. 그는 그 순간부터 여행자가 아니라 관찰자가 된다.

관찰자는 미소년의 이름이 ‘타치오’라는 걸 알게 된다. 그는 타치오의 활기찬 생명력, 신적인 아름다움에 홀린 후 자신의 늙은 외모를 인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타치오의 치아가 건강하지 않은 상태란 걸 알게 된 후 안도하는데, 소년이 허약할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 즉 젊지 않은 상태가 주는 상실감을 상쇄시키는 듯 보였다. 그런데 관찰자는 산책길에서 역겨운 무더위와 마주치면서 갑작스럽게 베니스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과거 베니스의 무더위가 자신의 건강에 해를 끼쳤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니스를 떠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원인 모를 불안함과 슬픔에 휩싸인다. 그는 호텔 직원의 실수로 베니스를 떠나지 못하게 된 후에야 감정이 동요했던 원인을 알아차린다.

그는 피가 끓는 듯한 감동, 기쁨, 자기 영혼의 고통을 느꼈다. 그러고는, 그에게 그 이별이 이다지도 어려웠던 것이 바로 타치오 때문임을 알았다.(p.474)

‘아셴바하’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작가가 되기까지 스스로를 규율에 옭매어 굽힘없이 도덕적인 길을 걸었다. 예술 이외의 분야로 눈 돌리지 않고 예술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불태웠다. 그러나 ‘타치오’를 통해 육체의 아름다움을 인지하게 되면서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한다. 급기야 아름다움의 상징물을 보고도 경외심을 느낄 수 없어서 아름다움을 상상할 수 없는(p.482) 것은 불경하고 못된 인간의 탐욕(p.482)이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아셴바하’는 소년에게 말을 걸어 소년의 대답과 눈길을 즐기고(p.484) 싶기도 하고 소년의 머리 위에,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고(p.489) 싶기도 했지만 그가 한 행동이라고는 소년을 두 눈으로 얼싸안은(p.480) 게 전부다.

안타까운 건 진정한 아름다움을 가슴에 품을수록 자신의 늙어가는 육체를 역겹게 생각(p.520)하는 것이다. 늙수그레하고 추한 외모로부터 오는 수치심과 절망감을 말끔히 씻어내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육체로 변화하기 위해 호텔 이발소에서 머리 색깔을 바꾸고 화장을 하는 모습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토마스 만’의 단편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1998, 민음사)』이 가져오는 갈등은 ‘아셴바하’를 망령 난 노인네로 볼 것인가, 보지 않을 것인가에 있다. 가깝게 지내는 이는 영화 속에서 외모를 치장하는 ‘아셴바하’의 충격적인 모습을 본 뒤 ‘퇴폐’라는 단어가 각인되었다고 말했지만, ‘아셴바하’가 그토록 추구하고자 했던 아름다움은 ‘타치오’를 향한 사랑을 통해 완성되었기에 망령은 아니라는 쪽으로 손을 들고 싶다.

아름다움은 느낄 수 있는 자의 길이란다. 예술가가 정신에 이르는 길이란다.(p.524)

우리 시인들은 에로스가 옆에 와서 안내자로 나서주지 않고는 아름다움의 길을 갈 수 없다.(p.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