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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lan
- 작성일
- 2021.10.27
믿는 인간에 대하여
- 글쓴이
- 한동일 저
흐름출판
“땅에 단단히 뿌리를 잘 내리고 나면 가지가 있는 것은 언제든 성장하기 마련입니다.” (105쪽)
임자 제대로 만났다. 한동일의 <믿는 인간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한번쯤 알고 싶던 이야기들을 잔뜩 접했다. 가톨릭계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나오던 날. 병원 출구에 있는 현수막에서 성인이라는 분의 한마디가 날 배웅했다. ‘치료는 하느님이 하십니다.’ 지난 주에는 무척 추웠는데 며칠전부터 확연히 날이 풀려서 따뜻한 햇살 쐬기 좋은 날.세 정거장 거리를 걸어서 서점에 들렀고 이 책을 샀다. 그리고 집에 와 다 읽었다.
‘라틴어 수업’이 벌써 4년전 작품이었나. 저자 한동일은 일맥상통한 맥락에서 후속작으로 이번 신작을 집필했다. 지난 몇 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코로나 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있었다.한동일은 코로나 직전까지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었고 그 때의 체험과 성찰, 묵상은 고스란히 문장으로 전이되었다. 작가의 글이 ‘종교적’이고 인문학, 역사를 깊이있게 다루는데 필체는 편안하고 안정적이다. 그래서 가독성이 높았고 예루살렘을 통해 살펴보는 가톨릭, 그리스도교, 이슬람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책이 탁월한 점이 기행문으로 읽히면서 역사서이고, 종교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이다.한동일의 말처럼 ‘그리스도교’를 빼놓고서는 서양 유럽의 문화와 역사를 알 수는 없다는 단언에 나도 동감했다. 챕터의 말미마다 라틴어로 된 문구를 인용하는데, 라틴어를 전부 해석하지 않아도 무언가가 느껴져서 신기했다.
작가는 20여년전 젊을 때 배낭여행으로 예루살렘을 간 이후 50살 즈음에 다시 갔다고 한다. 예전에는 모든 것이 마냥 신기하고 고생스러워도 다 행복했다면 지금은 역사와 문화가 보이기에 또 다른 느낌이었다고 술회한다. 그게 무슨 감상일지 일면은 알 수 있었고, 또 직접 겪어보고 싶은 설레임을 주었다.당장 우리나라 땅에서 10년 전 홀로 갔던 곳을 나도 다시 가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에 대해서 웬만큼은 안다고 생각했던 나인데 한동일이 알려주는 사실들은 깜놀의 연속이다. 우선은 새해 라는 개념. 유대교에서는 9월말 10월초가 새해라고 한다. 그러니 지금이 새해가 갓 지난 날 되겠다. 무슬림이 하루에 5번 기도하는 건 아는데 그 ‘독실함’에 대해 다시금 깨닫는다. 심지어 이런 말도 있다고 한다. ‘잠보다 기도가 낫다.’
한동일은 전직 사제로서 벼린 시선으로 현대 사회와 우리나라를 바라본다. 그 대목들이 날카로우면서도 뼈 때리고 와 닿았다.내년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요즘 우리 사회가 한층 혼란스럽다고 나도 느꼈었다. 정치적이라는 건 매우 폭넓은 의미일 수 있다. 국회에서의 정당 정치,투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 ‘공동체’를 어떻게 꾸릴 것인가를 두고 서로 첨예하게 다른 의견을 조율해야 할 책임이 있다.
성찰에 기반한 글쓰기. 저자가 사제 공부를 하고 성직 훈련을 거친 이여서인지, 생각을 풀어내는 절제미가 단연 돋보인다. 톡톡 튀고 자극적이며 최신 이슈를 다루는 글에만 익숙하다가, 발효되고 숙성된 글을 읽는 건 또 다른 매력임에 분명했다. 지금 시국에 꼭 필요한 장르의 책이다.
때로 시적이고 문학적으로 정돈된 문장들도 책에 향기를 부여한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그리스도교를 배경으로 한 회화, 예술작품도 많이 다루고 있다. 이번 기회에 단테의 「신곡」, 아우구스티누스 읽기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도 좋았다.
요즘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읽고 있었다. 여기에 나오는 뮈리에 신부님의 모습, 신실한 신앙, 믿음과 일치하는 행위들을 읽으며 참된 성직자란 이런 것이구나 깨닫던 중.
이천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온 이들의 발자취를 발견하는 기쁨을 선사한 책 <믿는 인간에 대하여> 였다.
“모든 문제 해결은 마주하기 싫은 것을 마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그렇게 보기 싫은 것을 마주해나가는 것이 삶의 여정이며 일상의 진보가 아닐까 합니다.”
"인간은 아파하고 신음하고, 때로는 자신의 실패와 마주함으로써 성장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미래 세대에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 안락한 삶을 사는 법만 강요할 뿐,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고 다시 일어설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삶도 가만히 생각하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사막 위에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럴수록 사람들이 세워놓은,시시각각 변하는 이정표만 보고 따라 걷는 건 아닌지 생각해야 합니다. 사막에서 변치 않는 별자리를 보며 걷는 것처럼 우리도 변치 않는 진리, 변치 않는 빛을 보며 걸어가야 합니다."
“인간의 삶은 계속 이어질 테고 오늘은 내일의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혼란이 일단락된 결과물뿐만 아니라 그 과정 모두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남겨놓은 그 기록들이 분명히 새로운 미래를 위한 좋은 근간이 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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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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