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가 왔네

Aslan
- 작성일
- 2013.1.3
타워 (디지털)
- 감독
- 김지훈
- 제작 / 장르
- 한국
- 개봉일
- 2012년 12월 25일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사람들에게 있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돈 버는 일, 공부하는 일이 아닌 취미랄까 관심영역을 말하고 있다. 가끔 아파서 병원을 다녀오고 극장을 다녀올 때, 급한 일이 있으면 영화를 중간까지라도 보고 나올 때, 부산까지 가서 바다는 안보고 영화시사회를 보고 왔을 때 내겐 가끔 영화가 그런 의미라고 생각했다.
연초에 남들은 산을 가거나 가족과 외식을 할 때 나는 앓아 누워 있었다. 걱정시킬까봐 별로 남들에게 얘기는 안하고 절친에게만 얘기하는, 1년, 2년에 한두번 겪는 총체적인 탈이 일어났다. 그리고 수요일에 영화를 예매한 것이 <타워>였고 죽집에 들러 죽을 먹고 가려는데 또 배탈 기운이 있어서 포장을 해와 급하게 들고 나왔다가, 거의 링거 투혼처럼 극장 옆 마트 한구석에서 죽을 허겁지겁 먹고는 극장을 간다. 아 이렇게까지.. 언젠가 본인 글에서 아버지 소천하신 후에 한달도 안되어 황정민 주연 <그림자 살인>보러 간 사연(?)을 쓴 적이 있는데.
하여튼 내게는 그렇게나, 가끔은 나 자신이 2박 3일간 거하게 아픈 후에도 꼭 챙겨야할 것이 영화보기인 것 같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 (좀 집착 ㅎㅎ)
2012년 크리스마스.. 가장 행복한 순간 벌어진 최악의 화재참사!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반드시 살아야한다! (copy)
영화와 직접관련없는 사적 얘기를 길게 써 죄송함드리며^^; 리뷰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본다. 영화는 헐리웃에서 많이 보았고 보암직한 화재 영화, 재난 영화의 공식을 무난히 따라간다. <괴물>이후 진일보한 대한민국 컴퓨터 그래픽(CG)에 힘입어 작가와 감독의 상상력과 이야기는 일사분란하게 펼쳐진다. 필자는 어떤 면에서는 실망했고, 한편으로는 만족스러웠다.
#실망했다면?
예상보다 그렇게 큰 감동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마지막 인물의 결과/선택이 앞부분에서 다소 예측가능하게 나와서 김이 새는 면이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이 영화를 ‘까는’사람들처럼 정확한 근거없이 실망한 것은 아니다. 이런 영화가 이미 나와 있었기 때문에 전혀 새로울 수는 없는게 <타워>가 취한 장르의 한계이므로, 싸잡아 뭘 베겼다느니 하려면 보지 않는게 낫겠다. (다른 영화도 많은데 왜 굳이 욕하며 보는가) 그것보다는 화려한 배우들을 포진시켰으나 이야기 자체와 상황이 정신없다보니 뭔가 그 캐릭터를 통해 드러내려는 것을 하다 만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특히 대호(김상경)와 윤희(손예진)의 러브 라인이 너무 허술하고 별로였다. 선남선녀 알콩달콩한 밀당에 설레이기에는 영화 주제가 많이 무거웠다. 아이도 너무 순진무구하고 피해의식적인 1차원적으로 나오고. 음악 또한 장르 영화에 충실했지만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 그럼에도 기대 이상이었다 함은.
원래 본인이 아픈 몸 이끌고 보러 간 이유는 김인권 때문이었다. 10년 된 팬으로서 그가 나온 영화는 무조건 극장에 가서 본다. :D 그런데 솔직히 그의 비중에 대해 기대는 안했는데, 생각보다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에 끝까지 중요한 역할을 하나 해서 무척 뿌듯했다. ^^ 김상경, 설경구라는 굵직한 배우들이 그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캐릭터의 전형적인 면과 영화의 무게감에 좀 눌려 있다 싶을 때, 김인권은 병만이라는 캐릭터 자체를 눈부시게 소화하며 영화 전체에 윤활유를 주는 조연을 확실히 했다.(고 생각한다.)
하나 불만인 것은, 차인표, 이한위, 안성기, 박철민 님 등이 나오는데 왜 영화 마케팅은 거의 그런 배우들을 노출하지 않은 것인지 싶다. 예상 관객을 단순하게 잡은 것인지, 요즘 관객들은 조연들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지식도 있는데 말이다. 앞으로 마케팅에서는 이런 점들도 감안 해 주었음 한다..!
-이 단락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분노의 역류>의 감동을 기억한다. 특히 “네가 가면 우리도 간다.(If you go, we go)”란 대사는 명대사로 길이 남아있다. 그런데 미국 소방관 영화와는 달리, 우리 나라를 배경으로 우리 연기자들이 소방관으로 나온 <타워>엔 분명 또 다른 감동이 존재했다. 화재의 현장에서 ‘오 소방관님!“ ’박 소방관님” 이렇게 서로를 호칭하는 것은 또 처음 알았다. 정확한 호칭이 맞나 모르겠다. 화재 현장의 최종 지휘자를 대장이라고 부르고, “대장님이 대장님보다 세 발자국 이상 떨어지지 말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대사는 뭔가 찡한 구석이 있었다. 설경구를 비롯 배우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위험한 현장의 연기를 했을 게 느껴졌고, 자식을 구하려, 사람을 구하려 김상경과 소방관들이 희생하고 헌신하고 애쓰는 모습들은 모두 되새겨봄직한 것들이다. 그 와중에도 서울 소방재청 고위관리가 국회위원과 최우선 구조자 리스트를 알리고, 건물이 붕괴되어 가는 중에 영기(설경기)가 그들을 구하고 무전으로 “일가족, 강아지 포함 3명 다 구했다, 개새꺄”라는 대사는 그 와중에 왠지 모를 통렬함도 주었다. 설경구 연기의 최대 강점은 뭔가 저항적이고 영웅적인 면에 이상하게 잘 어울린다는 것이고 동시에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유약한 인간이자 남편으로 흐느끼는 모습도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소방관 취재도 한 듯, ‘진화-구조-대피’의 3단계를 말하는 것이나, 특히 소방대원들의 묘사와 그들의 커뮤니케이션은 매우 흥미롭고 또 존경심을 주는 부분들이었다. 특히, 급박한 불길 앞에서 군인들처럼 ‘엄호해’라는 말을 쓰는 부분에서 뭔가 찌릿했다.
나는 사람들이 집중하는 <타워>의 단점들이나 볼거리의 성찬보다는, 타워에 분명 존재하는 감동의 근원을 파헤쳐보고 싶다. 그것은 놀랍게도 남자들의 세계라는 것이었고, 전쟁이 아니면서도 분명 전쟁인 초고층 빌딩속에서의 사투속에서의 감정이었다. 소방관 모자에도 ‘Fire Fight’라고 써 있더라~. 그리고 결말은 신기하게도 <웰컴 투 동막골>의 오묘한 감동의 결말과 겹쳐지어 내게는 다가왔다. <웰컴 투 동막골>을 보고 몇 년간 다시 계속 보면서 그 감동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더랬다. 혹시 이 감동이 오버는 아닌지, 실체가 있었던 건지 말이다. <웰컴 투 동막골>도 <타워>도 모두 어떤 전쟁같은 상황과 사건들에서 누군가(남성들)가 희생하며 사람들을 살려내고 그들의 인생을 구원해낸다. 그런데 <타워>에도 그냥 연말연시 블록버스터로 시간때우는 영화로 넘기기에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실제로 최근까지 소방관님들이 희생되는 일이 계속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타워>에 애정을 갖고 있는 평자들이 다 다음에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좀 더 잘 만들면 되지 않냐고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100억 규모로 이게 최선이지 않았나 싶다. 오히려 문제는 헐리웃에서는 예산이 커서가 아니라, 드라마가 참 충실하다는 게 아닐까. 120분 내내 거의 휘몰아치는 영화 서스펜스는 관객을 쉴 틈을 주지 않고 녹초로 만들고, 그걸 알기 때문에 쉬어가는 대화와 코미디를 넣지만 (한 두명 배우의 호연 빼곤)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무슨 호러 영화를 보러 간 게 아니라, 긴장과 이완을 잘 오가야 하는데 그 점만이 유일하게 아쉬웠다.
http://blog.yes24.com/bohemian75
<타워>
2013년 1월 첫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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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