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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린이
  1. 2012년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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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시장만이 조화와 발전을 보장하는 길이라는 믿음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넘쳐납니다. 1841년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주장이 ‘자유 무역’을 부르짖었다면 오늘날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 뿐입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그의 주장이 현실화될 것처럼 일이 진행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21세기에 이른 지금에까지 경제학 이론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경제 발전 이론도 그러하고요. 에릭 라이너트는 [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를 통해 그 옛날 ‘자유 무역’과 오늘날 ‘세계화’를 고찰하며 그 모습이 데칼코마니처럼 닮은 꼴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 일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


자유 무역과 세계화, 어쩌면 데칼코마니처럼


 



  『대중의 미망과 광기(Extraordinary Popular Delusions and the Madness of Crowds)』는 찰스 매케이(Charles Mackay)가 1841년에 출간한 주식 시장 붕괴에 관해 쓴 책이다. 같은 해에 리스트(왼쪽 사진)는 빈국을 더 가난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서서히 체계적으로 자유 무역을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을 출간했다. 생산성이 폭발하는 시기에 대중의 의식은 어떤 산업의 주식이든 주가가 천정부지로 솟구치기를 기대한다. 동시에 시장이 자유롭기만 하다면 누구나 더 부유해질 것 같은 착각도 함께 고개를 든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는 이를 ‘시장 토테미즘(market totemism)’이라 불렀다.


 


1840년대와 1990년대는 오로지 시장만이 조화와 발전을 보장하는 길이라는 믿음이 가장 강렬했던 시기였다. 차이가 있다면 1840년대에는 이 현상을 ‘자유 무역’이라 했고, 오늘날에는 같은 현상을 ‘세계화’라 부르는 것뿐이다.


 


오랜 기간 동안 주식 시장은 유에스스틸이나 마이크로소프트사와 같은 기술 경제 패러다임을 따르면서 생산성이 엄청나게 성장하고 시장 지배적인 지위로 올라선 기업과, 가죽을 만들어 내거나 그 밖에 다른 고급 기술이 필요치 않은 제품을 생산하는 성숙 기업들 사이의 차이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다. 지금도 전 세계 정치가들은 실리콘 밸리를 부유하게 만든 것이 기술적 돌파구가 마련되었


기 때문이 아니라 개방 경제와 자유 무역 덕분이었다고 믿는 것 같다. 이런 착각은 평생 저축한 것을 IT 버블에다 투자한 소규모 투자자들에게 참혹한 결과를 안겨 주었다.


 


자유 무역이라는 이와 유사한 착각은 페루나 몽골 같은 나라의 국민에게 똑같이 치명상을 입혔다. 이들은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자국 산업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리스트는 1846년에 영국이 자국의 농산물에 붙이던 관세를 철폐하고, 유럽 각국에게 산업 제품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할 것처럼 일이 진행되자, 몇 달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자유 무역이 실현되려면 모든 나라가 산업화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리스트의 이론은 그가 죽은 뒤 유럽 전역과 미국의 현실 정책에서 속속 채택되었다. 유럽연합이 1980년대에 스페인을 서서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통합한 것을 보면 리스트의 이론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이론이라는 주장이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역사의 패러독스는 1840년대의 증기 기관과 1990년대의 정보 기술 같은 예에서 보듯이 유독 신기술이 경제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는 그런 기간에, 경제학자들은 하필이면 신지식과 기술이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무역 및 교환에 근거한 이론 쪽으로 눈을 돌린다는 데에 있다.


 


리스트의 정신에 입각하여 우리는 경제학자들이 진보와 무역이 가능하도록 이끈 것을 그 원인인 기술과 혼동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애덤 스미스의 경제 발전 이론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스미스는 산업 혁명을 공식화했으면서도 자기 주위에서 진행되고 있던 산업 혁명에 대해서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첫 번째 세계화 기간 동안, 즉 1840년대 이후부터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질 때까지 부국들은 점점 더 산업화되었고, 제3세계는 기술적으로 저개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의 관행에 따라 식민 국가에 산업화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빈국과 부국 사이의 격차를 크게 만든 것이 바로 이 첫 번째 세계화 물결이었다.


 


최근의 세계화 물결이 첫 번째 세계화와 동일한 원리 위에 구축되는 한, 달리 표현하면 빈국들이 계속해서 원자재 생산에만 특화하는 한 오늘날의 세계화 물결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은 첫 번째 시기에서 이루었던 것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새로운 나라가 부국에 편입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부국과 빈국 사이의 격차는 더 벌어지는 식으로 말이다.


 


[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 본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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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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