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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다’의 동의어는 ‘놀다’






상상해보자. 당신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다. 당신이 면도기로 머리를 빡빡 밀고 내일 아침 회사에 출근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가? 당신의 놀라운 변신에 사람들의 반응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뒤늦게 입대하느냐고 묻는 사람, 출가를 결심했냐며 합장하는 사람, 사회에 불만 있냐며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 머리를 만지며 생각보다 촉감이 좋다고 씩 웃는 사람, 디지털카메라를 들이대며 셔터부터 누르는 사람, 조용히 다가와서 모자를 씌워버리는 사람...




이외에도 얼마든지 많은 재미있는 반응을 상상해볼 수 있다. 평소에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이런 상상에선 기발한 상상력이 발휘된다. 왜 그럴까?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왜 재미가 있을까?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어느 정도 이상의 기발한 상상을 꼭 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상상력의 적은 쪼그라든 뇌가 아니라 부담이다. 뇌가 ‘상상력 완전정복’이나 ‘상상력의 정석’ 같은 책을 읽지 못해서도 아니고, 상상력 훈련을 시켜주는 학원이나 과외를 다니지 않아서도 아니다. 뇌를 쪼그라들게 만드는 주범은 부담이다.




9회말 투아웃 만루. 안타 하나 맞으면 역전당하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홀로 선 투수를 생각해보자. 만약 그가 포수에게 공을 던지는 데 부담을 갖는다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갈 것이다. 그의 투구동작은 그만큼 부자연스러워질 것이고, 그의 투구는 평소보다 스피드가 크게 줄거나 폭투가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투수코치는 늘 어깨에서 힘 빼라고 팔을 잡아 쭉쭉 늘려주는 것이다. 상상도 마찬가지다. 머리에서 힘을 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즉 뇌가 부담 때문에 경직되지 않는 그런 쉽고 재미있는 상상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머리에서 폭투가 안 나오는 것이다.




부담은 조급함으로 이어진다. 뇌에 기름칠도 하지 않은 사람이 처음부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서 매출을 두 배로 올릴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아내겠다고 달려든다면 과연 쉽게 아이디어를 건질 수 있을까? 아이디어를 손에 쥐기는커녕 두통약만 한 움큼 손에 쥐게 될 것이다. 이는 이제 막 격투기 훈련을 시작한 선수가 세계 최강 효도르에게 도전하다가 나가떨어지는 꼴과 다름없다. 그 후유증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상상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효도르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건 내가 할 짓이 아니라는 표정으로 뒤꽁무니를 빼게 될 테니까. 조급함은 한 번의 실패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신감을 잃게 해 상상력과 담을 쌓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상상하는 것은 노는 것이다. 아주 작은, 아주 쉬운, 아주 재미있는 생각을 하면서 머리를 슬슬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다 그 상상이 재미없으면 그냥 포기해도 좋다. 더 재미있는 상상을 찾아서 하면 되니까. 그렇게 뇌를 가지고 부담 없이 재미있게 놀다보면, 내가 생각해도 어, 이거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불쑥 떠오르게 된다. 그것이 시작이다. 그 순간이 바로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되는 첫 관문을 싱겁게 통과해버리는 순간이다. 아, 이렇게 뇌와 생각을 가지고 놀면 되는 거구나! 하는 자신감. 당신은 그 자신감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가면 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지구를 구하는 상상을 재미있게 하고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상상을 가지고 놀다가 어느 정도 상상에 재미와 자신이 붙으면 그때부터 한 가지 더 더해야 할 것이 있다. 조금 더 질 좋은 상상을 하기 위해 재미에 더해져야 할 그것은 약간의 끈기다. 물론 끈기를 재미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억지로 하는 끈기일 때만 그렇다. 이미 상상하는 일이 재미있어진 사람은 거기에 약간의 끈기를 투자하는 일이 오히려 즐거울 것이다.




최근 필자가 쓴 책 <불법사전>에는 ‘하이힐에서 근사한 아이디어를 끄집어내는 방법’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은 약간의 끈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가르쳐주고 있다. 아이디어는 하이힐에 대해 엄청난 공부를 한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하이힐과 나 사이의 간극을 좁혀 친해질 때 나오는 것이다.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이힐을 만져보고, 신어보고, 맡아보고, 들어보고, 던져보고, 입에 물어보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하이힐과 웬만큼 친해졌다 싶으면 이제부터 하이힐을 손 위에 올려놓고 뚫어지게 바라봐야 한다. 언제까지 뚫어지게 바라봐야 하냐면, 뚫어질 때까지. 이 방법을 사용하고도 하이힐에서 아무런 아이디어를 끄집어내지 못했다면, 그건 상상력이 가난해서가 아니다. 하이힐이 뚫어지기 바로 직전에 바라보는 일을 멈췄기 때문이다. 뚫어지게 바라보면 뚫어진다. 뚫어지는 그 순간의 쾌감에 비하면 약간의 끈기는 아무 것도 아니다.




자, 이제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상상을 해보자. 당신은 이번 주말 로또 일등에 당첨된다. 그 당첨금의 10%를 남들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곳에 쓴다면 어디에 쓰겠는가? 당신은 오늘 중으로 아주 멋진 상상을 해낼 것이다. 그리고 내일 아침부터는 상상하는 일에 자신이 생길 것이다. 누가 뭔가를 상상해보라고 하면, 그래 좀 놀아보지 뭐! 하면서 머리에 시동을 걸게 될 것이다. 


 


LIG Nex1 사보 <근두운>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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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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