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잠깐 보고 '이게 무슨 내용이지?'라는 궁금증만 유발한 애니. 도대체 알 수 없는 정체를 궁금해 하던 차에 블루레이로 나왔다길래 직접 사서 보기로 했다. 일단 밝은 색체와 자연스러운 인물 묘사가 맘애 들어서.
일단, 앞서 말했듯이 내용을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세계인의 다수가 이용하는 사이버 공간에 어떤 연유로 일종의 바이러스가 등장하고 그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문제 해결을 위해 등장인물들이 뭉친다는 정도? 하지만, 그 바이러스의 활동에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고 자신의 아바타를 빼앗긴 주인공 소년(고등학생)을 비롯해, 많은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사연으로 한 데 얽혀서 상당히 다채로운 이야기를 한꺼번에 보여주기 때문에 온갖 장르가 다 튀어나온다. 사이버틱, 만화스러운 가상세계는 물론이고, 학원물, 가족물, 액션, 멜로 등등. 다소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서로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되는 스토리라인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가족이 모여 생일축하곡을 부르는 것은 가히 압권이다.) 여러 번 보면 기존에 보지 못했던 단면(많은 등장인물들 각각의 심리에 최소 한 번의 변화가 일어난다)이 드러나 반복해 보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배경과 인물묘사가 왠지 눈에 익어 뒤져보니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맡았던 감독의 작품이다. 자연스러운 등장인물등의 표현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 꽤 많은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표정이 살아있다. 더군다나 실제 등장인물들을 잘 표현하는 아바타들과 개개인의 사연들까지 포함하면 인물(?) 설정에 꽤나 많은 노력이 들었을 것 같다. 원작이 따로 있기에 가능했던 일 같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현실은 맑고 투명한 수채화 느낌이고, 가상세계는 컴퓨터 작업한 티를 확실히 내 주는 애니 느낌이다. 자칫하면 이질적일 수 있었겠지만 일본 애니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가지는 저력과 감독의 역량으로 멋진 조화를 만들낸 것이 아닐까.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달리 많은 등장인물과 가상세계의 묘사 때문이라도 고화질의 블루레이가 잘 어울린다. 하지만 CG만으로 만들어 낸 애니만큼 그 효과가 크지는 않다는 한계는 있다. 그저 아날로그적인 색체와 한 없이 자연스러운 인물 묘사 때문에라도 영상 점수는 높게 주고 싶다.
전체적으로 만족했던 영상에 비해 사운드 효과는 다소 아쉬운 부분. 블루레이에 이제 익숙해져서일까? 기대보다 음원의 분리도가 너무 약하다. 어쩌면 영상과 내용에 신경을 쓰느라 음성 부분은 그저 흘려보냈을 수도 있지만. 사실, 사운드 효과를 화려하게 입히고자 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장면들이 있음에도 상당 부분 자체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정말 아쉬웠던 부분은, 챕터 5인가 6에서 소리가 잠시 끊어지고, 부가영상의 인터뷰 부분의 음성이 자꾸 끊어져 앰프가 자꾸 디코딩 포맷을 전환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감상이 어려웠다는 점이다. 이게 실제 디스크 문제인지, 아니면 플레이어의 문제인지, 아니면 어디 물리적인 연결에 이상이 있는건지 확인해 봐야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원본 디스크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교환해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