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리뷰

blackstain
- 작성일
- 2022.7.8
류
- 글쓴이
- 히가시야마 아키라 저
해피북스투유
우리는 마음 어딘가 퀴퀴한 냄새와 탁한 색의 꺼림칙한 담요 같은 앙금을 외면하며 살고 있다. 애써 직면하기 싫은, 가슴을 아리게 하는 기억을 방치하며 잊히길 아니 삭제되길 바란다. 망실을 원하는 검은 외면이 쌓이고 쌓여 방치된 앙금이 피워내는 악취에 마음과 몸은 오염되어 병에 걸린다.
마음속 쓰레기장을 때때로 정리해야만 한다. 태울 것을 한곳에 모아 활활 불살라 버리고, 묻을 것을 아주 깊이 파묻어야 한다. 하지만 간혹 누군가 내 마음을 더럽히곤 한다. 무단투기. 내 것이 아니기에, 그리고 처음이기에 때론 어떻게 해야 할지 애처로운 애송이처럼 안절부절 한다.
누군가 버리고 간 사랑, 이별, 분노 그리고 상실. 날카롭게 날이 서 자칫하면 손을 베일 듯한 사나운 경멸.
붉은 몽우리를 피워내는 호르몬의 도핑으로 사방으로 쏘아지는 길 잃은 활력에 어지러운 도로와 골목, 황톳길을 질주한다. 부모와 친구, 연인, 타인들을 뾰족이 날 선 뿔로 들이받고 질주하다 곧 벽에 부딪혀 골목 어딘가로 튕겨나간다. 상처 입은 애끓는 짐승이 내 짖는 풋내 나는 울부짐은 좁고 낮은 허름한 벽마저 넘지 못하고 구정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48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다. 총 14장과 에필로그.
한 청소년(중학생) 이 할아버지의 죽음이란 덫에 걸린 이후의 이야기다. 설익은 감정과 이성을 지닌 청년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사랑, 우정, 이별, 분노, 상실에 관한 성장 이야기다. 창고 안 깊숙한 곳에 묵혀둔 눅눅한 종이 상자 속에서 발견한 아버지나 삼촌의 일기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고 흥미진진하다.
새까만 먼지와 끈적한 기름이 잔뜩 낀 희멀건한 백열전등이 뿜어내는 따가운 불빛이 가득한 창고 안. 갑자기 방문한 불청객에 놀란 먼지가 호들갑을 치며 밝은 불빛 아래에서 나풀거릴 때, 허연 먼지가 잔뜩 낀 상자를 툭툭 털어내고 슬며시 엉덩이를 걸친다. 그리고 손에 든 검은 인조가죽 노트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펼쳐본다. 눅눅한 먼지와 습기 그리고 쿰쿰한 곰팡이 내.
전체적인 줄거리는 글쎄... 책 뒤에 있는 옮긴이의 말보다 더 잘 쓸 자신이 없다. 그 속엔 내가 읽으면서 느꼈던 생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책의 첫 부분을 읽다 보면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우리나라 7,80년대. 반공을 혐오하고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그런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대강의 실루엣조차 보지 못한 민주주의를 목놓아 외치지만 실상은 국가가 국민을 반공으로 세뇌하던 그런 모순된 사회. 중국이란 막강한 적에게 대항하기 위해 반공을 세뇌하던 대만 정부. 그리고 장제스를 따른 중국 피난민과 대만 원주민과의 갈등.
정제되지 못한 야만과 폭력이 사회 곳곳에서 당연시 대던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장편소설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삼촌, 친구, 소꿉친구, 연인, 양아치, 조폭.... 여러 등장인물이 주인공을 잡아당기고, 회초리로 할키고, 발길질을 한다. 다만 주인공 치우성은 어딘가로 흘러가는 시냇물을 둥둥 떠가는 낙엽처럼 휘몰아치는 격랑에 휩쓸리지만 그때마다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 도깨비불을 되새긴다.
"류"의 작가는 히가시야마 아키라다. 그는 대만 태생으로 1968년에 태어나 아홉 살에 일본으로 갔다. 내게는 생소한 대만 작가의 글이다(아니 아홉 살부터 일본에서 살았으니까 일본 문학인가?). 히가시야마 아키라는 '터드 온 더 런', '도망 작법', '길가', '블랙 라이더'로 일본에서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류"는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옮긴이는 민경욱 씨다.
명쾌하고 통렬한 미스터리 소설은 아니다. 글을 읽는 독자 입장에선 놓아버려도 되는 미련과 몰라도 되는 진실을 향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는 문체로 전하고 있다. 색다르지만 손에서 놓을 수 없는 흡입력을 지닌 소설을 찾는 분에게 추천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제 주관대로 적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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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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