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나난
- 작성일
- 2021.1.26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글쓴이
- 박완서 저
웅진지식하우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통해서 박완서라는 작가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었다면 이 책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3부작으로 구성된 자전소설의 2부작인 셈이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났더니 마지막 편이 궁금해졌다. 청년시절을 그린 이 이야기의 끝에 결혼을 했다. 그녀는. 그 다음에는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장면들이 그려지겠지. 전쟁을 겪고 취직을 해서 일을 하던 그녀가 어떤 육아법으로 아이를 키웠을까. 늦은 나이에 시작한 글쓰기는 무엇이 방아쇠가 되어 주었을까.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마냥 재미났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어려웠을 때이지만 그래도 작가는 깨인 엄마 덕분에 전통적인 할머니 밑에서 탈출해 서울로 갔으며 그곳에서 엄마의 억척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들어간 서울대학이었다. 전쟁이 터지고 채 일년도 공부 해 보지 못하고 그녀는 서울대생이라는 타이틀만 남았다. 전쟁통에 사람들이 살고 죽는 마당에 대학생이 무에 그리 큰 대수일까.
이야기는 시작하자마나 이념의 이분법 앞에 놓인 그녀의 가족이 등장을 한다. 다들 피난을 가고 텅 비다시피 한 마을. 그곳에서 그녀는 올케와 함게 남의 집을 뒤져가며 그렇게 도둑질을 해가며 연명을 했다. 결국엔 둘만 북으로 피난을 가야헸지만 말이다. 인민군도 국군도 크게 부가되지 않으며 총알이 난무하는 촉박함도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 전쟁통인데도 그러하다. 아마 그때 당시의 일을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한 부분이아닐까. 최전방이 아닌 민간인들이 사는 그런 부분에서 말이다. 아무리 조용하다 하더라도 그들의 자유는 없었다. 군인들이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 가서도 안되었다. 부상당한 오빠와 아이들 엄마가 있는 곳으로 다시 내려와야 했으니 말이다. 그때의 힘듦과 곤함과 어려움은 작가의 글속에서도 고스란히 내비치고 있다.
세상에 그런 별미가 없었다. 얼마 만에 먹어 보는 싱싱한 고기 맛인지 몰랐다. 온 몸에 남아 있는 사투의 흔적이 그 맛을 더욱 돋우었다. 우리는 아귀처럼 사정없이 그 거칠고 험한 딱지를 정복하고 속살을 배가 터지게 탐했다. (118p)
가족은 다시 재회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가야했고 먹어야 했고 아이들은 커야했다. 그러니 누군가는 나가서 일을 해야 했다. 숙부의 가족들까지 대가족이 한데 모였으니 오죽 필요한 것들이 많았으랴. 그녀는 방위대에 취직을 했고 돈을 벌었고 장사를 했고 돈을 날렸고 피엑스에 취직을 했다. 서울대라는 타이틀이 필요한 곳이었다. 국어국문과라서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영문과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그렇게 말해주었다.
내 생각에 작가는 약간은 고지식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내가 직접 그녀를 본 적도 없고 단지 책을 통해서 글을 통해서 그리고 책에 남겨진 사진을 통해서 느낀 인상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그곳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일을 하면서 더욱 드러났다.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부서에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일을 하는 곳이 바뀌면서 자신이 나서서 직접 일감을 따야했다. 가만히 있다가는 자신이 맡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빈 손으로 가게 될 수도 있었다. 나의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그녀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자신의 영어발음을 신경쓰면서 말이다.
그럴 때 가장 자주 쓰는 말이 '워스마리 유?'였다.(247p)
어떻게 조금도 읽고 쓸 줄 모르면서 그렇게 영어를 잘할 수 있는지 신기해하면, 그녀는 이 세상에 있는 말치고 글씨 먼저 생겨난 말은 없을 거라고, 글씨 먼저 아는 나를 이상해했다. 그녀의 생각이 아마 맞을 것이다. 내가 입이 안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글씨가, 철자법이 가로막기 때문이었으니까. (269p)
배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민이다. 그곳에는 자신보다 속칭 가방끈은 짧았지만 영어는 더 잘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말과 글 모두 중요하겠지만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우선시되어야 하는지를 아주 잘 드러내주는 그런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작가가 한 고민은 수십년을 넘은 지금까지도 한국인들의 영어 고민이 아닐까. 그냥 말을 하면 되는데 문법을 먼저 따지고 단어를 신경쓰고 그러다보면 정작 말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 것. 이건 한국인의 유전자 같은 것이려나.
나은 점이라보다는 명확하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그이하고 있을 때는 내가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전혀 부담이 안 된다는 거였다. (340p)
방위대에 있을때도 약간의 섬씽이 있을뻔한 남자가 한번 등장을 하고 후반에도 친구처럼 지내는 남자가 한명 등장한다. 그들 중에서 누군가와 연애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상대는 오히려 엉둥한 데서 나타난다. 말을 하지 않아도 편안한 사람. 그 사람이 진정한 사람이다. 작가의 말에 너무나도 공감을 한 문구였다. 나 또한 그러하다.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때면 말을 잘 하지 않는다. 낯선 사람과 만나면 그 불안한 갭이 싫어서 내가 먼저 아무말이라도 주워 섬긴다. 내가 그러하니 그녀의 입장이 너무나도 잘 이해되는 것이다. 비록 그녀의 집안에서는 반대하긴 했지만 말이다.
전혀 모르고 읽다가 책장을 넘겼는데 무언가 뚝 떨어진다. 엽서인가 하고 봤더니 작가의 사진이다. 너무나도 해맑음이 가득한 얼굴이다. 귀여움이 얼굴에 가득하다. 1955년 결혼한 직후 찍은 사진 설명이 그 당시의 상황을 말해준다. 아마도 가장 행복하던 그런 시절이 아니었을까. 그야말로 딱 새댁같은 그런 모습이지만 어떻게 보면 새댁이라고 보기에는 또 앳되어 보이기도 한다. 한복저고리를 입지 않았다면 그냥 이 시대의 대학생과도 같은 발랄함이 가득한 그런 모습. 타계10주년 기념작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내가 읽지 못했던 작가의 작품이 아직도 여전히 많다. 1월말. 겨울의 중반부답지 않게 봄날의 따스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그녀의 글이 주는 따스함일수도 있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장편소설 # 그산이정말거기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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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