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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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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예술의 거장 중의 거장인 마르크 샤갈에 대해서 예술계에서는 그의 후기 작품에 대해 그리 긍정적인 평을 내리지 않는다.  만년에 제작된 많은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혁신성도 창조성도 빈약한데다가 그가 첫 파리 시절(1910-1914)과 러시아 혁명기(1914-1922)에 쏟아낸 작품들이 그의 대표작으로 우리 머리 속에 자리를 잡은 탓이다. 전시장 여러 부스 중 나와 마을, 유대인 예술 극장 섹션은 사람들이 샤갈에게서 보고자 하는 그림들이 그대로 보인다.  


 


전쟁이 끝나고 러시아로 돌아가기 전에 그렸던 자신의 작품들 중 소송을 통해서 찾은 세 작품 중의 하나인 <나와 마을>의 다른 버전이 와 있다. 1911년에 그린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뉴욕현대미술관 소장품은 아니지만 이듬해의 동명 작품으로 벨기에왕립미술관 소장품이다. 유화도 아니고 종이에 수채, 과슈로 그려진 것이긴 하지만  특유의 환상성은 변함이 없다.


  


나와 마을, 1911, 벨기에왕립미술관       나와 마을, 1912, 뉴욕현대미술관



 


파리 시절이나 러시아 시절이나 그는 환상적인 요소를 배제하지 않은 러시아를 그렸다. 잠깐 머물고 벨라와 함께 서유럽으로 돌아가려고 돌아온 러시아에서 1차 세계대전을 맞이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눈에 보이는 것을 닥치는대로 그리는 것밖에 없었다. 다만 상황이 힘들다 보니 이 시기의 그림들은 상당히 어두웠고 파리 시절의 그림들보다는 세속적이고 현실적이었다.  


 


이런 작업 방식의 대표적인 그림이 <비테프스크의 하늘에서>다. 공중을 떠돌며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뜻의 루프트멘슈가  도시 상공을 걷는 것은 집집마다 다니며 구걸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그 당시 도처에서 볼 수 있었던 동유럽 유대인들의 빈곤상을 나타낸 것이다. 한 때 강남역 사거리 모퉁이에 존재했던 김춘수 시인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에서 와전된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란 카페의 모티브가 된 그림인데 자주 다녔던 그곳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비테프스크의 하늘에서, 1914년 이후 


 

 


1920년대 모스크바에 정착한 샤갈 가족은 정말 비참한 삶을 살아갔다.  소비에트 정부는 대중 선동을 위해 사실적인 그림만을 요구했고 유대적인 색채가 강한 그의 그림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고는 유대연극 기관이 유일했다. 한 때 배우로서 무대 경력을 쌓고 싶어했던 아내 벨라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그의  초기작 중 가장 크고 복잡한 작품인 이디시 극단을 소개한 <유대인 예술극장 소개>가 탄생했다.


  


구성이 복잡하고 화려한데다가 각 인물마다 담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다 미술사가마다 숱한 해석을 불러 일으켜 어느 것이 맞는 지 여러 책을 봐도 잘 모르겠다. 전시실엔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그림에서 찾을 수 있도록 번호도 친절하게 붙여 놨으니 아는 만큼 공부하고 돌아오는 것이 좋다. 나도 이 작품 앞에서만큼은 30분 이상 서 있었던 듯 하다.  굳이 그런 속사정을 알아내지 않아도 전반적인 미학적 구성만으로도 이 그림을 볼 가치는 충분하다.


 


유대인 예술극장 소개, 1920



 


1923년 우여 곡절 끝에 늘 그리던 도시 파리에 다시 돌아가게 된 샤갈은 자신이 9년이나 떠나 있는 동안 없어진 그림들에 대한 모사를 시작했다.  이번 전시회 대표작 중의 하나인 <농부의 삶>은 1911년<나와 마을> 자유롭게 개작한 것이다. 제1 파리 시기의 작품들에 비해 과감한 입체주의 양식도 사라지고 상상력도 소극적이라 <농부의 삶>을 제외하고는 모작이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고 한다.


 


농부의 삶, 1925



 


1926년 뉴욕의 라인하트 미술관에서 그의 첫 개인전이 열렸고 국제적 지위가 확고해지면서 샤갈은 지금까지의 초기작들만으로도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  생활이 안정된 이후의 작품들은 덜 샤갈스러운 것이 많다. 나이도 들어가고 회화를 이용한 다른 부분의 의뢰가 많아지기 시작한 탓도 있을 것이다.  


 


만년의 작품들이 상당수 왔지만 이것들은 그림 자체 보다는 샤갈이 처해있던 그 당시 상황과 시대의 변화를 읽는 재미가 컸다.  


 


1920년대 샤갈 예술의 지속적인 모티브였던 서커스는 한동안 사라졌다가 1956년 이후 어느 영화 촬영을 본 이후 등장한다.  서커스 섹션의 그림들이 갑자기 시대를 건너뛰게 되는 이유다.


  


1960년대 내내 오페라단, 발레단, 건축물들을 작업하느라 바빴던 샤갈은 비교적 상투적인 판화와 페이퍼워크들을 많이 했는데 이는 대부분 초기에 그렸던 성서 삽화를 개작한 것이다. 다프니스와 클로에 삽화 역시 낯익은 공상적 흔적들은 보이나 부드러운 전원 그림으로 변모했다.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그의 인격만큼이나 작품 세계의 스펙트럼도 넓디 넓다.  


 


오래 살고 다작을 한만큼 자신을 지나치게 소모한 것일까? 그의 후기 작품들은 마음에 와 닿는 것이 확실히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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