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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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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게임 '철권'에 보면 특이한 캐릭터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요시미츠라는 캐릭터인데 철권을 할 줄 몰라서 구경만 하던 저에게 얘의 공격 중 특이한 방법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캐릭터는 칼을 쓰는 캐릭터인데 상대를 뒤에 두고 자신의 배를 찔러서 상대까지 동시에 공격하는 방법입니다. 에너지는 똑같이 닳지만 상대가 자신보다 에너지가 적을 때는 상대만 죽고 나는 살아나는 캐릭터입니다. 그야말로 죽을 힘을 다해 이기겠다는 캐릭터죠.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한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김수영의 시에 '죄와벌'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의 도입부 역시 조금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데 첫 연은 이렇습니다.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 살인을 한다



김수영 -죄와 벌 中-




 



김수영 시인이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돌아와 아내에게 가보니 아내가 자기 친구와 살고 있었습니다. 다시 아내를 데려오려 했지만 그녀는 따라오지 않았고 1년 후에야 돌아옵니다. 아내 김현경과의 관계는 다시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남편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김현경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 아님에도 김수영은 그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자신에 대한 질타는 항상 시의 소재가 되곤 했습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에 보면, 큰 것에 분노하지 못하고 50원짜리 갈비에 기름덩어리가 나왔다고 욕하는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을 적은 바 있습니다. 



 





김수영 전집 1,2 세트



김수영 저

민음사 | 2018년 02월



 



그의 수치심과 아내와의 관계는 위의 시에서 잘 나타납니다. 길거리에서 아내를 때리고 돌아와서 남이 보았을까, 우산을 놓고 왔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그들의 사랑은 끝이 났다는 방증입니다. 그가 첫 문장에 저런 글을 저렇게 씁니다. 그의 행동은 비난받을 일이었지만 사실 자신은 그런 비난을 견뎌낼 용기조차 없었습니다. '희생을 당할 각오'를 한 사람이면 아내를 때리면서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겠죠. 아무것도 잃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고 있는 스스로가 한없이 한심하기만 합니다.



 




집에 돌아와서 /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 아까운 것이 /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김수영 -죄와 벌 中-




 



나쁜 것은 그보다 나쁜일을 각오한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고, 좋은 일 역시 큰 희생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진리입니다. 고등학교 때 싸움을 잘하던 한 선배가 저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기고 싶냐. 그럼 안 맞을 생각을 하지마. 대신 니가 맞는 것보다 상대를 더 많이 때린다고 생각해. 안 맞겠다고 생각하면 맞는 순간 흔들릴 수밖에 없어.' 얼핏 생각하기에 싸움을 이기는 일은 내가 맞지 않고 남을 때려 눕히는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런 싸움은 없는 법입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도 내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원하는 것만 얻는 태도는 잠깐의 이익을 줄 수는 있어도 길게 보면 결국 패배로 이어지고 맙니다. 



 



박웅현이 언급한 바 있는 '보왕삼매론'에는 그런 진리를 담은 말이 담겨 있습니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우리는 그저 평탄하게 살고 싶은데 세상은 자꾸 시련을 줍니다. 나뭇가지가 가만 있고 싶어도 바람이 불어 흔들리게 만드는 것처럼 우리는 세상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되어서 자꾸만 사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이겠죠. 어떤 것이든 잃지 않고 얻으려는 욕심, 손해보지 않고 남의 것을 뺏으려는 탐욕이 항상 일을 그르치고 인간관계를 막다른 곳으로 이끈다는 생각을 다시 해봅니다.       











   



 












여덟 단어



박웅현 저

북하우스 | 2013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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