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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 번쯤 봐야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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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위기
글쓴이
한병철 저
다산초당
평균
별점7.6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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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는 사고로 머리에 충격을 받은 후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된 푸네스라는 소년이 나온다. 그 기억력은 가히 천재적이어서 82년 4월 30일 동틀 무렵의 남쪽 하늘 구름 모양, 특정한 날 네그로 강에서 노가 일으키는 물보라의 모양까지 기억할 정도이다. 문제는 그 엄청난 기억력 덕분에 사물을 범주화 시키지 못하는 데에 있다. 3시 14분에 측면에서 본 개의 모습과 15분에 정면에서 본 모습이 너무 다르다고 인식되기 때문에 이 둘이 하나의 존재라고 인식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수 백만개의 정보는 모두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각각의 사실일 뿐이다. 모든 순간에 새로 시작되는 사물과 사람을 대한다는 것은 어쩌면 저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병철 교수의 '서사의 위기'를 읽으면서 그 책이 떠오르는 건 너무 당연했다. 책의 중간에 데이터와 기억의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데이터는 모든 것을 죄다 기록하기만 하지만, 기억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어떤 것을 의도적으로 선택하기 때문에 큰 차이가 있다.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이 파편화 되어서 어떤 서사도 이루지 못하는 정보의 과잉 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서사의 위기는 그 쓰레기 더미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어떤 책에서 핵심을 끄집어 내는 작업은 녹록치 않다. 잘 읽히지 않는 부분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음미하고 나서야 희미한 윤곽이나마 잡히기도 한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에 가면 어떤가. '이 작가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반드시 이 작가의 이 말을 기억하세요.' 하면서 나에게 필요한 답만 적어서 건네준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는 정보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서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원격성은 우리가 그 이야기에 스스로 빠져들도록 유도했지만, 이제는 손에 직접 쥐어지는 정보 덕분에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저 우리는 객관식 문제지의 답안지를 훔쳐보면서 답이 뭔지만 알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야기에서 느끼던 서사적 긴장은 사라지고 무간격성의 정보가 연이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무의미한 행위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제 무엇을 보든 우리는 '그래서 답이 뭐라고 하셨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라고?' 되묻는 수준까지 오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서사의 위기이다. 

 

저자는 벤야민이 예찬한 헤로도토스의 예시를 든다. 이집트의 사메니투스 왕이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에게 붙잡혔을 때 이야기다. 사메니투스 왕은 페르시아의 개선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굴욕적으로 지켜봐야 했다.  자기 딸이 하녀가 되고 아들이 사형장으로 끌려가도 미동도 않던 그는, 자기 수하에 있던 늙고 허약한 하인을 알아보고 깊은 슬픔을 표출한다. 헤로도토스는 그 이야기에 대한 어떤 설명도 덧붙이지 않는다. 그 서사의 본질을 파헤치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이야기가 몰락하기 시작한 것을 벤야민은 근대 초기 소설의 등장으로 본다. 심리분석을 통한 해석을 시도하는 것만으로 근대는 화자와 독자 사이의 간격을 무너뜨린다. 그러나 결국 이야기를 무너뜨리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 등장한 정보이다. 끊임없이 제공되는 정보는 이전의 정보를 순간 순간에 바로 대체하고 있다. 거리가 유지 되지 못한체 무간격적으로 제공되는 정보 덕분에 우리는 서사를 파악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다. 

 

이야기와 정보를 가장 잘 비유하는 말은 바로 '씨앗'이다. 벤야민의 말을 빌려 서사는 바로 '피라미드 안에 밀폐된 채 수천 년 보관된 발아력이 보전된 씨앗'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반해 정보는 '발아력이 결여된 티끌이나 다름없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야기와 정보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표현된 문장이다. 이야기는 적당한 간격과 생각의 여지를 주면서 어떤 형태의 식물이 태어날 지 모르는 씨앗이지만, 정보는 주어지고 나면 그 의미를 더 곱씹어 볼 일 없는 티끌일 뿐이다. 서사는 계속 우리 주변에 머무르면서 상황과 생각에 따라 달라지지만, 정보는 그저 그 자체로 끝나고 아무런 결과물도 주지 못한다. 결국 이런 사회는 과거의 시스템을 전복시키려는 발전적인 생각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혁명적 파토스도 없다. 그저 '계속 그렇게 하기'만 있을 뿐이다. 우리의 시간은 과거에서 이어져서 현재로, 현재부터 미래로 이어지지 않고 그저 현재, 현재, 그리고 다음 현재만 존재한다.

 

나에 대한 글을 쓴다면 그 책에 내 키가 몇 센티 였는지, 학교 성적은 몇 등급이었는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 지에 대해 쓰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가 대학에 떨어졌을 때 어떤 좌절감을 느꼈는지, 첫 사랑에 실패했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 지에 대해서 쓸 수는 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 삶은 특정한 수치와 알고리즘으로 설명될 수 없다. 유튜브에서 뜨는 추천 영상이 내 취향을 말해줄 수 있지만 내가 왜 그런 영상을 많이 보게 됐는지에 대한 서사는 설명해 줄 수없다. 저자가 '서사의 위기'라고 하는 것은, 무한대로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고유한 이야기를 잃어가기 때문이다. 더 명료한 답을 찾고, 더 정확한 수치를 제공받는 중에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 표면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숨겨진 의미를 되살리고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실존의 장력을 확보하는 것이 위축되고 단편화 되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하다. 서사의 긴장도 사라지고, 생각할 수 있는 사고의 여백조차 존재하지 않는 스마트한 세상에서 우리가 정작 되찾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책을 읽고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 다만, 이 책의 띠지와 머리말에서 역자 서문에 좀 의문이 있다. 띠지에는 '스토리 중독 사회는 어떻게 도래했는가'이다. 역자 서문에는 '스토리는 서사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를 도식으로 하자면 [서사, 이야기] : [정보, 스토리]가 된다. 이야기와 스토리가 반대편에 있다고? 그러면 애초 원문은 스토리라는 단어를 어떻게 썼지? 책을 다 읽고 내가 추정하기로는 역자가 스토리라는 단어를 오용했다고 본다. 책 내에서 스토리라는 단어는 스토리텔링, 스토리셀링 그리고 인스타그램 '스토리' 이 세가지만 등장한다. 다시 말하자면 스토리가 이야기의 반대가 아니라, 일시적인 감상만 나열하는 인스타의 '스토리' 카테고리만이 이야기의 반대인 것이다. 책의 어디에도 스토리가 서사와 반대의 개념이라는 말은 없는데 역자가 처음에 이런 말을 써 놓아서 독자를 헤깔리게 한다. 역자 서문의 스토리는 그 범주를 축소시켜서 글 전체에서 말하는 이야기와 다른 개념으로 헤깔리지 않게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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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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