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시/에세이

소룡매냑
- 작성일
- 2019.10.29
나의 가해자들에게
- 글쓴이
- 씨리얼 저
알에이치코리아(RHK)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임에 틀림없다. 누구나 평등할 권리를 갖고 있으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 불평등한 사회일 뿐이다. 이 사회는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서열이 존재하는 계급 사회다. 청소년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를 가리켜 우리는 작은 사회라 부른다. 다시 말해, 학교 안에서도 서열이 존재한다. 선생님들 사이에도 존재하고 학생들 사이에도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서열이 결국은 불평등을 낳고 사회 문제를 양산한다. 그러나 실제 그런 문제는 그렇게 여기는 우리의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구에게나 학창 시절 추억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그 추억이 어떤 이에게는 달콤하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과거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은 즐거웠던 시간보다 끔찍했던 그 시간을 더 잘 기억해버리고 만다. 학교 폭력. 이 사회에서 가장 없애버리고 싶은 것 중 하나임과 동시에 절대 없어질 수 없는 것 중 하나다. 그래서일까.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 형태와 방법만 조금씩 달리할 뿐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받는 피해자도 계속 늘어간다. 한번 피해자는 영원한 피해자로 살아간다. 이보다 끔찍한 일은 없다.
올해 4월 유튜브에 조금은 위험하면서도 특별한 2편의 영상이 올라왔다. 그 영상의 제목은 <왕따였던 어른들>이었다. 흔히 왕따를 10대 청소년 시절에 겪을 수 있는 일로 생각한다. 하지만 왕따를 당했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때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간다. 아니,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왕따였던 어른들>은 그들의 경험담을 그들의 목소리로 담아낸 영상이다. 그리고 이 책은 유튜브의 짧은 영상에서 미처 다하지 못했던 이야기다.
사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의 존재를 알지 못했었다. 책을 다 본 후에야 뒤늦게 영상을 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꼭 한번 읽고 싶었던 이유는 미래의 내 아이를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학교 친구들에게 소외를 받았던 이들이 그 후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도 궁금했고 어떻게 그 아픈 시간을 극복해 냈는지도 궁금했다. 그것이 조금이나마 장차 학부형이 될 내가 어떻게 준비해야 될지 도움을 얻을 수 있겠다 하는 생각마저 했다.
책을 읽으면서 그런 식으로 생각했던 내가 한없이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솔직히 '학창 시절 왕따를 당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라는 생각을 안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나는 지금 또다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왕따의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니었지만 수많은 방관자 중 한 명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읽는 동안 너무나 안타까웠던 사실 하나는 피해자를 진짜 피해자로 만든 사람이 바로 나와 같은 방관자였다는 사실이다. '나만 왕따 당하지 않으면 된다', '괜히 엮여서 피해보지 말자', '다른 애들도 다 하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이렇게 한 번이라도 생각한 적 있다면 우리는 모두 방관자에 속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때 그 시절 어린 나이에 힘센 아이들이 무서웠고 지금처럼 깊게 생각할 수도 없었다고 애써 자신을 옹호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이런 사소함이 피해자들을 더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한편으로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용기를 내준 이들이 있기에 학교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지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또한,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받은 고통이 그때 한순간으로 끝나지 않고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게 해주는 기회가 되었으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상을 보고 용기와 격려의 말을 남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경험을 갖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용기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영상과 영상에서 못다 했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로써 우리 사회가 알면서도 무시하거나 모른 채 넘기는 방관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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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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