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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20주년 기념판
글쓴이
황선미 글/김환영 그림
사계절
평균
별점9.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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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과 신문 수업을 하는데, 한 친구가 신문과 책은 같은 거라고 말하자, 서로가 맞다 아니다로 논쟁이 일면서 나에게 결론을 내달라는 요청을 해 온다. 나는 "신문은 날마다 쏟아져나오는 새로운 소식을 전하기 위한 매체로 생명력이 하루이지만, 책은 독자가 있는 한 100년 그 이상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로 결론을 대신 했다. 아이들은 그 동안 내가 읽어주는 그림책이 신간에서 15년을 훌쩍 넘긴 책들도 만나보았기에 수긍의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들에게 책이 가진 생명력에 대해 말을 한 이후로 그 말이 오히려 나의 가슴에 남아 며칠을 되뇌이며 나의 책들을 둘러보게 되었다.

 

내가 읽고, 나의 두 소녀가 읽은, 서가에 꽂혀 먼지도 살며시 내려앉고, 20년이란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이야기 한 권이 20년의 시간을 흘러 다시 세상에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치 내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는 듯한 착각으로 설레었다. 황선미 작가와 김환영 그림작가의 손끝에서 이루어진 『마당을 나온 암탉』이 20년이란 생명력을 안고 세상으로의 나들이를 시작한다. 기적과 같이, 놀라운 시간과 함께 2020년 우리를 찾아온다.

잎싹은 '잎사귀'라는 뜻을 가진 이름보다 더 좋은 이름은 세상에 또 없을 거라고 믿있어. 바람과 햇빛을 한껏 받아들이고, 떨어진 뒤에는 썩어서 거름이 되는 잎사귀. 그래서 결국 향기로운 꽃을 피워 내는 잎사귀니까. 잎싹도 아카시아의 그 잎사귀처럼 뭔가를 하고 싶었다.

잎싹은 아카시아 잎사귀가 부러워서 '잎싹'이라는 이름을 저 혼자 지어 가졌다. 아무도 불러 주지 않고, 잎사귀처럼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기분이 묘했다. 비밀을 간직한 느낌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 15 ~18쪽

아카시아의 사계절을 바라보며 간절한 소망을 품은 잎싹은, 양계장에 갇힌 채 알을 생산해내는 난종용 암탉이다. 알을 품어 병아리의 탄생을 보고 싶은 소망과 함께 양계장 철망에서 벗어나 마당에서 살고 싶다는 간절함을 가슴에 품고 살지만, 잎싹은 '폐계'로 분리되어 죽은 닭들과 함께 구덩이에 버려지고 만다. 마당에서 이루어지는 자유와 질서, 암탉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엄마닭의 삶이 잎싹에게는 애초부터 사치였던 것일까.

잎싹은, 배고픈 족제비로부터 간신히 벗어나 마당에서의 삶을 살아보고자 하지만 영역을 지키려고만 하는 마당 가족들에게 내쳐져 세상을 향해 두려운 첫발을 내딛는다. 양계장 철망 속에 갇힌 잎싹의 눈에 마당은 자유와 안식 그리고 암탉으로의 행복한 삶이 보장된 곳이었다. 철망만 벗어나면, 마당에서 살게만 된다면 그녀의 간절한 소망은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마당은 철망만 없는 폐쇄적이고 갇혀진 공간이었다.

 

"다른 암탉처럼 살았다면,

그랬다면 사는 게 쓸쓸하고 지겹지 않았을걸.

이제는 모르겠어.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마당을 나온 암탉. 63쪽

잎싹은 마당에서 나와 풀숲을 향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막막하다. '닭장만 나오면, 마당에서 살게 된다면'이란 소망은 잎싹에게 어떤 의미도 되어주지 못한다. 애초부터 마당의 암탉이었다면, 곁에 누구도 없는 쓸쓸함이 휘몰아칠 때 그녀의 앞에 푸른 빛을 띈 알을 하나 발견한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어미, 잎싹은 마음을 다해 앞을 품는다. 비록 직접 알아 낳고 품어 병아리의 탄생을 볼 수 없을지는 몰라도 알을 품어내는 그 떨림과 알이 주는 따뜻함만으로도 잎싹은 충분히 행복했다. 구덩이에 버려진 잎싹을 구해진 청둥오리 나그네는 잎싹이 알을 품는 동안 먹이를 챙겨주고 호시탐탐 노리는 족제비의 침입을 막기 위해 날개짓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알이 깨어나기 하루 전, 기꺼이 족제비의 먹이가 되어주는 나그네, 함께 하지 못하는 아빠의 미안함을 탄생의 순간을 위한 책임감으로 맞바꾼 나그네의 희생이 가슴을 뜨겁게 한다. 잎싹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나그네의 죽음은 곧 초록머리의 탄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잎싹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음을 예고한다.

 

암탉과 청둥오리 초록머리의 삶이 시작된다. 족제비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매일 새로운 곳을 찾아다녀야 하는 생활보다는 안정된 공간에서의 생활을 위해 잎싹은 초록머리를 데리고 당당하게 마당으로 향한다. 양계장 주인의 눈에 초록머리는 꽤나 좋은 상품이 제 발로 들어온 것이다. 주인 부부는 초록머리의 다리에 끈을 묶는다. 잎싹은 뒤늦게 깨달았다. 알을 품을 새끼의 탄생을 맞이했다해서 마당의 수탉이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과 나그네처럼 날개가 잘린 채 청둥오리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 오리 가족 사이에서도 외톨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나그네의 "마당으로 가지 말고 저수지로 가"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되었다.

암탉이 오리의 알을 품었다는 수치스러움에 마당의 한 켠도 내어줄 수 없는 수탉 가족,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가족의 수를 늘이기 위해 필요하다는 오리 가족, 자신의 욕심을 위해 타인의 희생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양계장 부부의 모습은 우리 사회 안에서 행해지는 배척과 따돌림, 시기와 이기심, 집단이기주의와 무리한 희생 요구의 모습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어 씁쓸함을 안긴다.

"세상에! 네 날개가 어떻게 된 거니?"

"정말 굉장하지!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몸이 떠오르잖아. 내가 날 수 있어!"

초록머리가 기쁨에 들떠서 외쳤다. 잎싹은 가슴이 벅차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미소만 지었다.

'기적이야!'

이건 세번째 기적이었다. 철망을 나와서 아카시아 아래에 살았던 것이 첫 번째 기적이고, 알을 품은 것이 두 번째 기적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랍고 행복한데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났다. 족제비가 사냥에 실패했고, 초록머리가 날기까지 했다.

"엄마, 어디 좀 봐. 많이 아파?"

초록머리가 날개를 펴서 다친 잎싹을 감싸 안았다. 그것이 또 고마워서 잎싹은 목이 메었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부리를 꽉 다물었지만 오늘만큼은 소용없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 142쪽

잎싹은 족제비의 먹이일 수 밖에 없는 약자의 대상이지만, 결코 쉽게 그의 먹이감이 되어 주지 않는다. 또한 자기와 다른 초록머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초록머리가 당당하게 무리에 끼어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봐 줄 줄 아는 엄마로 성장해간다. 언젠가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 나그네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기에 잎싹은 오래도록 함께 하고픈 욕심을 내려놓고 초록머리의 결정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그의 삶을 축복한다.

 

20년 전, 나에게 『마당을 나온 암탉』 은 참 좋은 동화였다. 잎싹이 가진 허황된 소망이 이루어내는 과정이 기적과 같았고, 무리의 파수꾼이 되어 날아가는 초록머리의 힘찬 날개짓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에 흐뭇했고, 족제비 새끼를 위해 자신을 내려놓는 잎싹의 마지막 모습에서 뭉클했다. 이런 이야기를 '동화'라는 옷을 입힌 황선미 작가가에 대한 경이로움을 갖게 되었다.

"어리다는 건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아가, 너도 이제 한 가지를 배웠구나.

같은 족속이라고 모두 사랑하는 건 아니란다.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

마당을 나온 암탉. 161~163쪽

20년이 지나 마흔의 중반을 넘어서 다시 만나게 된 『마당을 나온 암탉』 은 참 고마운 동화 한 편이다. '마당'이라는 폐쇄적이고 갇혀진 틀 속에서 과감히 풀숲으로 방향을 돌린 잎싹의 발걸음이, 다르지만 간절히 원하는 소망을 품은 잎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나그네의 포용이 나를 성장시킨다. 안정적인 삶보다 자신에게 가치있는 삶을 살고자 한 의지와 간절히 원한 소망을 위해 자신과 다른 청둥오리의 알을 귀한 마음으로 품을 줄 아는 고귀한 마음 그리고 초록머리의 삶을 위해 과감히 떠나보낼 줄 아는 용기와 상대의 간절함에 마음을 열 줄 아는 결단력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엄마가 되고 나서야 깨닫는다.

아카시아 잎사귀처럼 뭔가를 하고 싶다던 잎싹은, 2020년 기적과 같이 나에게 다가와 '사랑'이라는 말 속에 품은 여러가지의 의미를 전하는 기적을 전해준다. 갇혀진 틀 속에서의 안정감에 유혹당하지 않을 것,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데 마음을 다할 것, 타인의 희생을 당연스레 받아들이지 말 것, 남의 처지를 따스한 눈으로 바라봐 줄 것, 잎싹은 나그네는 견고한 생명력을 지닌 책을 빌어 나에게 내려앉는다.

2020년은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다. 기적과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겨낼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는 이야기 하나 『마당을 나온 암탉』 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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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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