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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1
글쓴이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저
민음사
평균
별점9.1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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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모임을 통해 고전을 한 권씩 알음알음 읽어내고 있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읽는다면 다양한 해석을 하고 의미 파악에  도움이 되겠지만, 아직 그 정도의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3월 17일부터 5월 17일까지 두 달의 기간 동안 읽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1권과 2권을 읽어냈다. 읽었다가 아니라 읽어냈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표현 같다. 작가부터 제목, 분량까지 읽어내야만 하는 책으로 두려움을 잔뜩 머금고 시작한 책이다. 


러시아 작가의 작품인 만큼 인물들의 이름과 친해지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책이 시작되기 전 표기된 인물 관계도를 왔다 갔다 확인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걸친 후에야 어떤 인물이고 누구와 어떤 관계인지 어슴푸레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익혔음에도 책을 덮은지 열흘 정도 지났다고 인물들의 이름이 낯설고 맞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앞으로도 내용의 흐름과 인물 관계도 정도만 기억될 뿐 소설 속 인물의 이름을 부를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심인물인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니코프는, 법대생으로 매우 치밀하게 준비된 작업을 통해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게 이른다. 유일한 목격자가 될 뻔한 노파의 이복자매까지 살해한 뒤 스스로가 느낀 혐오감에 며칠을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주변의 보호를 받는다. 




제목 그대로 라스콜니코프는, '살해'라는 큰 죄를 지었다. 소설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계획된 범죄가 일어나고 곧  벌만 받으면 되는 매우 당연한 소재가 어떻게 두꺼운 책 2권의 분량을 채울까 의아했다. 책장을 넘기면서 나의 의아함은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라스콜니코프와 연결된 인물, 그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이 일어나고 라스콜니코프와는 별개처럼 보이지만 결국 라스콜니코프에게 모여지는,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글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고전'으로 자리매김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느끼는 기회가 되었다. 




『죄와 벌』은, 라스콜니코프의 노파 살인 사건 외에도 동생이 겪어낸 과거의 아픔과 파혼, 술주정뱅이의 장례식, 동생 약혼자의 비열하고 파렴치한 사건들을 볼 수 있다. 사건을 들여다보면  남성과 여성의 지위, 신분에 의한 차별과 빈부차로 겪는 어려움 등 다양한 사회 모습을 통해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소양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나 자신을 알면서도 나 자신을 예감하면서도 감히 도끼를 들고 손에 피를 묻히다니! 기필코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에잇! 실은 미리 알지 않았던가……!' 그는 절망에 사로잡혀 이렇게 속삭였다. 


……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다. 원칙을 죽인 것이다! 



『죄와 벌 1권』  494~495쪽







내가 과연 노파를 죽인 걸까? 나는 나 자신을 죽인 거야, 노파가 아니라! 어쨌거나 그로써 나 자신을 작살낸 거야. 단번에 영원토록 ……! 그 노파를 죽인 것은 악마지. 내가 아니야……. 



『죄와 벌 2권』 264쪽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이 행한 살인 행위에 대해 혐오를 넘어 타당성을 선택한다. 가난한 유학생으로 항상 돈에 굶주리는 자신의 처지에서 전당포 노파의 행위를 부당하게 받아들이며 치밀한 계획으로 살인을 저질렀으며, 노파에게서 가져온 돈은 세어보지도 않은 채 땅속에 파묻으며 자신과 노파는 결코 같지 않음을 스스로에게 보여주므로 자신은 살인 따위를 저지르지 않았노라 생각한다.  




그 후 정신 이상 증상을 보이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죄를 짓고는 결코 편안한 일상을 누릴 수 없구나. 자수가 아닌 자살을 선택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으나 그는 결코 자신의 죄를 죄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죄 없는 다른 이가 용의자로 지목됐음에도 자신의 죄를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라스콜니코프의 심리 상태와 자기 논리에 빠져 뻔뻔한 치부를 내보일 때마저 그의 논리에 빠져들고 있어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만약 스스로 죄를 인정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랬다면 모든 것을, 수치와 치욕마저도 견뎌 낼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자신을 아무리 엄중하게 심판하고 양심을 모질게 다져 봐도 지난 일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실책 외에는 유달리 끔찍한 죄를 도무지 발견할 수 없었다. 그가 수치스러워한 것은 다름 아니라 그, 즉 라스콜니코프라는 인간이 운명의 어떤 맹목적인 선고에 따라 그토록 맹목적이고 허망하고 먹먹하고 어리석게 파멸했으며 만약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진정시킬 마음이 있다면 저 무슨 선고의 '어처구니없음'과 타협하고 그것에 굴복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죄와 벌 2권』 486쪽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보호막이 너무나 많은 라스콜니코프, 불안한 자신의 심리 상태를 끝까지 안아주고자 애쓴 친구와 그의 범죄를 자백 받고도 곁을 지켜준 여인 소냐, 라스콜니코프보다 더 치졸하고 악랄한 동생의 약혼자까지 그의 도덕성과 얼마 남지 않은 돈을 기꺼이 기부할 줄 아는 동정심은 어느 누구도 그의 잔혹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환경 속에서 라스콜니코프는 점점 자신에 대한 옹호적인 논리를 펼치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눈은 무한한 행복으로 빛났다. 그녀가 깨달은 사실,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란 그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 무한히 사랑한다는 것, 마침내 이 순간이 도래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돌 다 창백하고 여위었다. 하지만 병색이 완연한 이 창백한 얼굴에서 이미 새로워진 미래의 아침놀이. 새로운 삶을 향한 완전한 부활의 아침놀이 빛나고 있었다. 사랑이 그들을 부활시켰고,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을 위해 무한한 생명의 원천이 되어 주었다. 



『죄와 벌 2권』 496쪽








라스콜니코프가 자수를 선택한 것은 끝까지 그를 믿어주는 한 여인, 소냐의 믿음 그리고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난하지만 확고한 믿음 아래 살아온 그녀는 라스콜니코프의 범죄 사실을 알고도 그의 곁을 지켜주며 그가 죗값을 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정말 귀한 사람이다. 




『죄와 벌』 스스로 읽으려고 펼치지 않을 책, 평생 읽으려고 시도하지 않았을 책을 두 달이란 시간을 걸쳐 읽어냈다. 제목만 보고 두 권으로 나올만한 이야기가 될까 궁금했던 책을 읽고 나니, 매우 단순했던 나의 사고가 부끄러워졌으며, 흡입력 있게 이야기를 몰고 가는 도스토옙스키의 필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렇게 큰 일을 꾸밀 생각이면서 동시에 이렇게 시시한 것을 두려워하다니!” 


그는 야릇한 미소를 머금으며 생각했다.



『죄와 벌 1권』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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