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읽은 책들

캡
- 작성일
- 2021.3.13
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
- 글쓴이
- 정덕현 저
가나출판사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나도 누군가에겐 개새끼일 수 있다"
애초 블로그란 개인적인 공간이란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그런 악풀들-인신공격성 댓글, 욕으로 도배된 글-은 일종의 '무단 가택 침입'같은 불쾌감을 주었다. 그나마 화가 나긴 해도 그다지 충격이 오래가진 않았다.
하지만 악플이 아닌 반대의견이 올라오고, 그 의견이 나름의 논리와 설득력이 있을 때는 훨씬 더 아팠다.
삼십대는 생존과 생계를 위해 글을 썼다. 그래서 내 의견이 틀리다는 반대 의견들은 어떻게든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다 아무리 반론을 펼쳐도 결코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내 글 역시 누군가에게는 생존과 생계를 위협하는 것일 수 있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책, 220쪽-
이 책은 글을 쓰면서 사는,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인 글쓴이가 드라마 속 대사 중에서 마음에 와 닿는 대사를 골라 뽑고 그와 연관된 자신의 삶 속의 이야기를 풀어나간 글이다. 평소 드라마를 즐겨보지는 않지만 또 한번 꽂힌 드라마는 끝까지 보는 성향이 있는 나로서는 꽤 구미가 당기는 책이었다.
책을 읽다보니 그동안 내가 놓친 드라마가 꽤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본 드라마에서 내 마음에 와 닿았던 대사와 다른 사람의 가슴을 후벼팠던 대사가 이렇게 다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생각이 다르니 그렇겠다 싶었다. 그 중에서 위에 있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서로 다른 글을 쓰며 다투던 사람들, 결국 그들은 생계를 위해서 그렇게 했겠다 싶은 깨달음.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모임이 많아지고 이전부터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서로 대면하고 이야기하는 기회가 점점 사라지던 터라 이제는 만나서 술 한잔하며 어깨 두드리고 털어버리는 일이 없어지고 살벌한 텍스트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그 앙금을 털어버릴 기회도 없이 로그아웃으로 끝나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을법하다. 한편으로 편한 세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언가 아날로그 감성이 사라진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다. 그래서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 나왔다던 저 대사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오래전 인기를 끌었던 <별에서 온 그대>, 거기에서 "왜 혼자야? 우리 함께 있잖아."라는 대사가 있었다고 한다.
"사람한테 상처 안 받는 법 알려줘? 아무것도 주지도, 받지도 말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그럼 실망할 것도, 상처받을 것도 없어."
"그럼 무슨 재미로 살아?"
그러게, 그러면 무슨 재미로 살까. 드라마속 수많은 연인들은 오늘도 알콩달콩 달달한 대사를 나누고 때로는 서로 상처주며 싸우기도 한다. 그런 것이 싫어서 연애를 안하면 그만이지만 연애 한번 안해본 사람은 그런 감정조차도 부러울 수 있다. 글쓴이가 인용한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는 김광섭 시인의 시구처럼,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이렇게 만났는데, 그런 감정하나 없이 지낸다는 것도 건조한 일이다. 항상 화창한 날만 있을수는 없다. 때로는 비도 내리고 해야지 대지가 촉촉하게 적셔지겠지.
<눈이 부시게>는 중간에 치매 할머니라는 반전이 인상깊었던 드라마이고 호평이 많기도 했다. "어머님은 살면서 언제가 제일 행복하셨어요?"라는 물음에
"대단한 날은 아니고 , 나는 그냥 그런 날이 행복했어요."라고 답을 하던 대사. 온 동네가 밥 짓는 냄새가 나면 솥에 밥을 안쳐놓고 아장아장 걷던 아들의 손을 잡고 밖에 나가서 멀리 노을이 지는 것을 바라보는 일상의 행복함. 어릴 때부터 꿈이 무엇이냐?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같은 말을 듣다가 어느 순간, 예전 사진 속에 담겼던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될 때. 아마도 그때가 나이가 들어가는 순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드라마 속 대사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는 제목과는 달리 여기에 인용한 드라마 속 대사가 모두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아마도 드라마를 다 보지 못했거나 혹은 내가 글쓴이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일게다. 그래도 다들 대단한 작품을 만든 드라마 작가들에게 추천사를 받은 글쓴이가 부럽고, 그런 글쓴이의 선구안이라면 남다른 글들도 있겠지 해서 책을 끝까지 읽어보았다. 그래서 그 중에는 나도 그랬겠다 싶은 대사도 건져올렸다.
꼭 무엇을 공감하기 보다는, 아 이런 생각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받아들이면서 천천히 책을 읽으면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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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