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북클러버

캡
- 작성일
- 2024.12.29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 글쓴이
- 조승리 저
달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글쓴이는 여성이자 시각장애인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이런 글쓴이에게 진상 같던 사자머리 손님이 고맙다는 말을 건넨다. 자신에게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쏟아내며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함까지 불평을 쏟아내는 진상이었던 사자머리 손님. 그 손님은 어느날 글쓴이에게 마사지를 받으면서 귀국하면 마사지를 받는다는 생각으로, 고된 삶을 보상 받는 다는 마음으로 마사지 가게에 온다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사자머리는 노쇼 손님한테는 금융치료가 답이라 글쓴이를 대신하여 화를 내면서 글쓴이의 마음을 다독거리며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그 말에 글쓴이는 다시 힘을 내어 일을 한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라는 다소 역설적인 제목처럼 책 속에 담긴 이야기는 웃기면서도 슬픈 감정이 교차한다. 글쓴이의 탁월한 글솜씨에 따라 전체적인 글 분위기는 재미있지만, 조금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슬픈 이야기가 가득하다. 특히나 글쓴이가 시각장애인인 탓에 받게 되는 장애인인 글쓴이에게 상처주는 말들이 종종 등장한다. 대만으로 가는 해외여행 중에 만난 할머니는 "앞도 못 보면서 여길 힘들게 뭐 하러 왔누"라고 말한다. 그냥 툭 던지는 말, 어쩌면 걱정되어 하는 말이겠지만 듣는 글쓴이의 입장에는 상처가 된다.
"모든 이들은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글쓴이처럼 보이지 않아도 보고 싶은 욕망은 있다. 눈이 보이지 않지만 여행지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 그날 여행지에서의 분위기와 여행지에서만 맡을 수 있는 냄새와 그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볼 수 있는 여행객 못지 않은 기쁨을 줄 수 있다. 공항에서 만난 직원들, 사람들을 전도하는 교회의 목사가 던진 말들. 모두가 상처가 되는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손을 살며시 올려 놓으며 말하는 항공기 승무원, 시각 장애인의 얼굴을 보며 말해주는 가이드처럼 다른 일상의 사람들과 같이 대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반갑다.
시각 장애가 있어서 마사지사 교육을 받고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글쓴이에게 부모가 있었다. 아버지는 어디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는 시각 장애인인 딸이 마사지로 번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쓸모없는 부모였다. 엄마와의 기억도 그리 좋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 글쓴이가 말하는 엄마와의 추억을 읽으며 마치 글쓴이와 엄마가 친구처럼 지낸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글의 말미에 글쓴이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오지 않고 굿을 하러 간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글쓴이가 엄마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컸겠구나 싶었다.
글쓴이가 앞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엄마에게 어떻게 말해야하는 걱정이었고, 딸의 장애를 받아들일 수 없는 엄마를 따라 약수라는 구정물도 마시고, 머리 쪼개는 노파에게도 가보고. 고생이 참 많다 싶었다. 그런 엄마가 결국 딸이 글로 상을 받기도 하는 졸업식에 오지 않고 굿하러 갔다는 이야기가 부모로서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분노와 함께 마음이 아팠다. 한편으로는 그 엄마도 엄마의 엄마에게 많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딸에게 정말 사랑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르고 자랐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부는 쓸모없고 모는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않고 부정하며 딸에게 도움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글쓴이는 어떻게 글을 잘 쓰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장애까지 찾아온 글쓴이는 시력을 잃기 전에 열심히 책을 읽었다고 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모전에 당선될 정도의 글솜씨를 지니게 된 것은 그때 책을 많이 읽어서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청각 장애에 마주한 베토벤처럼 어려운 환경 속의 고난이 글쓴이에게 창작의 고통과 함께 기쁨을 알게 하며 좋은 글을 쓰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장애까지 지니게 되어 글쓴이의 글에서 방어기제가 많이 느껴지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밝고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는 수미씨에게 그렇게까지 반응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싶으면서도 자신의 장애로 수없이 차별의 말을 들으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제대로 된 돌봄이 없이 장애를 지닌 어려운 환경 속에서 별다른 정신과 진료와 심리적 상담을 받지 못한 채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을 글쓴이가 떠올라 안타깝기도 했다.
장애인 딸의 졸업식에 축하하러 오지 않은 엄마와 달리, 글쓴이의 샘터 공모전 수상 소식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는 모습이 대비되었다.
"그들은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움츠렸던 글쓴이의 어깨가 펴지며 새로운 꿈과 함께 자신감이 피어났다. 글쓴이는 꽃이 되고 싶어 했다. 자신의 "향기를 맡고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자신의 아픔의 끝은 사건의 지평선으로 남을 것이란 글쓴이의 말. 어쩌면 그런 문장을 잘 찾아냈을까 하는 감탄과 이 책의 표지가 금붕어보다는 글쓴이의 꿈을 담은 "꽃"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동시에 다가왔다.
이 책을 읽고 슬펐고 뜨거웠다는 어느 작가의 소개 글처럼, 처음엔 그저 재미있기만 했던 글쓴이의 글이 읽다 보니 아파서 시리고 슬펐다. 몸 개그를 하는 코미디언이 정작 자신은 아프지만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처럼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우리에게 글의 재미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대견하면서도 슬펐다. 그리고 그 슬픔을 쌓아 재미로 승화시켜 축제로 만들어 놓은 글쓴이의 솜씨가 때로 즐겁고 한편으로 삶의 위안을 주었다.
그 남다른 창작 솜씨에 모처럼 단숨에 에세이를 읽었다. 삶을 다시 한번 다른 시각으로 보여준 글쓴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글쓴이는 여성이자 시각장애인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이런 글쓴이에게 진상 같던 사자머리 손님이 고맙다는 말을 건넨다. 자신에게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쏟아내며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함까지 불평을 쏟아내는 진상이었던 사자머리 손님. 그 손님은 어느날 글쓴이에게 마사지를 받으면서 귀국하면 마사지를 받는다는 생각으로, 고된 삶을 보상 받는 다는 마음으로 마사지 가게에 온다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사자머리는 노쇼 손님한테는 금융치료가 답이라 글쓴이를 대신하여 화를 내면서 글쓴이의 마음을 다독거리며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그 말에 글쓴이는 다시 힘을 내어 일을 한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라는 다소 역설적인 제목처럼 책 속에 담긴 이야기는 웃기면서도 슬픈 감정이 교차한다. 글쓴이의 탁월한 글솜씨에 따라 전체적인 글 분위기는 재미있지만, 조금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슬픈 이야기가 가득하다. 특히나 글쓴이가 시각장애인인 탓에 받게 되는 장애인인 글쓴이에게 상처주는 말들이 종종 등장한다. 대만으로 가는 해외여행 중에 만난 할머니는 "앞도 못 보면서 여길 힘들게 뭐 하러 왔누"라고 말한다. 그냥 툭 던지는 말, 어쩌면 걱정되어 하는 말이겠지만 듣는 글쓴이의 입장에는 상처가 된다.
"모든 이들은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글쓴이처럼 보이지 않아도 보고 싶은 욕망은 있다. 눈이 보이지 않지만 여행지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 그날 여행지에서의 분위기와 여행지에서만 맡을 수 있는 냄새와 그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볼 수 있는 여행객 못지 않은 기쁨을 줄 수 있다. 공항에서 만난 직원들, 사람들을 전도하는 교회의 목사가 던진 말들. 모두가 상처가 되는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손을 살며시 올려 놓으며 말하는 항공기 승무원, 시각 장애인의 얼굴을 보며 말해주는 가이드처럼 다른 일상의 사람들과 같이 대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반갑다.
시각 장애가 있어서 마사지사 교육을 받고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글쓴이에게 부모가 있었다. 아버지는 어디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는 시각 장애인인 딸이 마사지로 번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쓸모없는 부모였다. 엄마와의 기억도 그리 좋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 글쓴이가 말하는 엄마와의 추억을 읽으며 마치 글쓴이와 엄마가 친구처럼 지낸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글의 말미에 글쓴이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오지 않고 굿을 하러 간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글쓴이가 엄마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컸겠구나 싶었다.
글쓴이가 앞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엄마에게 어떻게 말해야하는 걱정이었고, 딸의 장애를 받아들일 수 없는 엄마를 따라 약수라는 구정물도 마시고, 머리 쪼개는 노파에게도 가보고. 고생이 참 많다 싶었다. 그런 엄마가 결국 딸이 글로 상을 받기도 하는 졸업식에 오지 않고 굿하러 갔다는 이야기가 부모로서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분노와 함께 마음이 아팠다. 한편으로는 그 엄마도 엄마의 엄마에게 많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딸에게 정말 사랑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르고 자랐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부는 쓸모없고 모는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않고 부정하며 딸에게 도움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글쓴이는 어떻게 글을 잘 쓰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장애까지 찾아온 글쓴이는 시력을 잃기 전에 열심히 책을 읽었다고 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모전에 당선될 정도의 글솜씨를 지니게 된 것은 그때 책을 많이 읽어서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청각 장애에 마주한 베토벤처럼 어려운 환경 속의 고난이 글쓴이에게 창작의 고통과 함께 기쁨을 알게 하며 좋은 글을 쓰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장애까지 지니게 되어 글쓴이의 글에서 방어기제가 많이 느껴지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밝고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는 수미씨에게 그렇게까지 반응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싶으면서도 자신의 장애로 수없이 차별의 말을 들으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제대로 된 돌봄이 없이 장애를 지닌 어려운 환경 속에서 별다른 정신과 진료와 심리적 상담을 받지 못한 채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을 글쓴이가 떠올라 안타깝기도 했다.
장애인 딸의 졸업식에 축하하러 오지 않은 엄마와 달리, 글쓴이의 샘터 공모전 수상 소식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는 모습이 대비되었다.
"그들은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움츠렸던 글쓴이의 어깨가 펴지며 새로운 꿈과 함께 자신감이 피어났다. 글쓴이는 꽃이 되고 싶어 했다. 자신의 "향기를 맡고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자신의 아픔의 끝은 사건의 지평선으로 남을 것이란 글쓴이의 말. 어쩌면 그런 문장을 잘 찾아냈을까 하는 감탄과 이 책의 표지가 금붕어보다는 글쓴이의 꿈을 담은 "꽃"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동시에 다가왔다.
이 책을 읽고 슬펐고 뜨거웠다는 어느 작가의 소개 글처럼, 처음엔 그저 재미있기만 했던 글쓴이의 글이 읽다 보니 아파서 시리고 슬펐다. 몸 개그를 하는 코미디언이 정작 자신은 아프지만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처럼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우리에게 글의 재미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대견하면서도 슬펐다. 그리고 그 슬픔을 쌓아 재미로 승화시켜 축제로 만들어 놓은 글쓴이의 솜씨가 때로 즐겁고 한편으로 삶의 위안을 주었다.
그 남다른 창작 솜씨에 모처럼 단숨에 에세이를 읽었다. 삶을 다시 한번 다른 시각으로 보여준 글쓴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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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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