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영화

기리쿠운
- 공개여부
- 작성일
- 2003.11.20
야구는 투수 놀음이다. 한국시리즈에서 9차례 우승했던 김응용 감독은 특히 단기전엔 똘똘한 선수 세 명만 있으면 된다고 했는데, 그 가운데 두 명은 물론 잘 던지는 투수다. 야구에서 투수가 없으면 심지어 경기를 끝낼 수도 없다. 딴 포지션이 아무리 좋아도, 이제까지 아무리 큰 점수 차이로 이기고 있었더라도 9회말 2사에라도 어처구니 없는 투수가 등판한다면 경기를 끝내지도 못하고 계속 두들겨 맞아야 한다.
한 게임을 뛰면서 공을 한 번도 만지지 않는 내야수나 외야수가 있을 수 있지만, 동네 야구팀부터 LA 다저스까지 투수가 공을 만지지 않는 한 경기를 시작할 수도 없다. 야구에서 인플레이 상태란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를 이르는 말이다. 선동렬의 투수 십계명의 마지막은 이렇다.
"10. 너는 그라운드의 왕이다. 타자들이 너에게 존경심을 갖도록 하라. 모든 타자는, 설령 너의 팀 일원이라도 너의 적이 될 수 있다. 그들을 이길수 있는 소질을 계발하라."
케빈 코스트너는 백인이다. 볼 때마다 참 백인답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는 대학교 땐지 고등학교 때까지 야구 선수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야구 영화에 참 자주 출연했다. 영화 속에서 그가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면 나이답지 않게 직구나 변화구가 제법 꼴을 갖추고 들어가는 데에 놀라게 된다.
메이저리그 데뷔 15년을 훌쩍 넘긴 빌리 채플의 아버지는 세상에서 두 가지, 야구와 아내만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어려서부터 야구를 한 건 당연했다. 데뷔 이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디트로이트, 한신, 해태 타이거즈 파이팅!) 소속으로 경기에 나섰던 빌리 채플은 구단 매각과 함께 트레이드 압력을 받게 된다. 그리고, 화려한 선수생활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뉴욕 양키즈 원정 경기에 등판한다. 이 영화는 이 경기 전날 밤부터 다음날 아침까지가 배경이다. 또, 한 회마다 빌리 채플의 추억, 특별히 '제인'에 대한 추억이 끼어든다.
빌리 채플이 이 경기를 어떻게 끝냈는지를 말해버리는 건 김 새는 일이다. 그저 한 마디 던진다면, 멋지게 끝났다. 노장 투수의 은퇴경기 하나에 영화가 쏟는 집중력이 지나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투수의 구질, 컨디션에 따라 경기의 양상이 전혀 다른 것이 돼버린다. 단지 공 놓는 위치, 손가락 채는 강도, 투구판을 밟는 위치, 투구폼, 심지어 기분의 변화 같은 미세한 차이에도 팀 전체가 아무도 이길 수 없는 강팀이 되기도 하고, 동네북이 되기도 한다. 이 영화가 빌리 채플에 쏟는 집중력은 투수가 경기에 쏟는 집중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 경기나 빌리 채플 모두 너무 완벽(perfect)하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이기든 지든 마운드에 서있는 걸로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했던', 한 경기라도 자기 손으로 끝맺은 투수라면 모두 버얼써 옛날부터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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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