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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 작성일
- 2021.9.13
여신의 역사
- 글쓴이
- 베터니 휴즈 저
미래의창
독자가 청소년 시절엔 아름다운 여성들을 표현할 때 '여신(女神)'이란 말을 잘 쓰지 않았다.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선 여신이란 표현은 '성적(性的)'인 뉘앙스가 포함된 미화시킨 단어로 생각했던 것 같다. 받아들이는 쪽에서도 이 때문에 여신이란 표현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는 서구 문명의 수용 과정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여신이 아름다움과 성적인 면만 강조되어 전해졌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1980~1990년대까지도 영화 배우나 탤런트 등의 아름답고 예쁜 영화배우에게도 여신이란 말 대신 '조각처럼 아름답다'는 단어를 주로 사용했다. 말하자면 여신이란 표현이 성적 욕구가 들어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는 뜻이다. 아마 사회적 분위기가 여성에 대한 성희롱이 처벌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새로운 표현을 자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깨뜨리고 과감하게 여신이란 표현을 하기 시작한 게 인터넷 언론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각 개인들은 SNS에 '아름다운 여성'의 대명사로 '여신'이란 표현을 거리낌없이 사용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연인이나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도 거리낌없이 '여신'을 사용한다.
여신이란 표현은 원래 그리스 로마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비너스, 아프로디테가 바로 그것이다. 가장 유명한 조각상 중 하나가 바로 '밀로의 비너스'이기도 하다. 이들은 모두 신화에 나오는 존재이지 실존 인물의 이름이 아니다. 여신이란 말이 어떻게 2,500년이 넘도록 인간의 삶 속에서 이어져 왔는지를 알아보는 게 이 책 『여신의 역사』이다.
책에 따르면 신화에서 다루는 비너스, 아프로디테의 탄생은 대지 여신 가이아의 계획에 따른 우라니아의 성기가 바다에 떨어지고 이내 그 여파의 거품이 사이프러스로 흘러들어 비너스로 탄생했다. 이후 비너스는 지중해로 퍼지면서 각 지역에 맞는 이름으로 대체되는 바, 이를테면 바빌로니아에서는 전쟁의 여신이자 절대적인 힘을 지닌 '이난다', 아카드 지역의 '이슈타르(Ishtar)', 페니키아에서는 '아스타르테(Astarte)'로 불리며 오늘날 금성으로 불리는 별자리와 연관되는 관계를 지닌다. 비너스란 존재의 변화는 시대와 역사를 통해 그 역할과 상징성의 변화를 겪는다. 클레오파트라를 비롯한 많은 여인들이 자신들의 치장을 위해 비너스를 모방했던 점은 신으로서 대하는 부분 외에 이를 닮고자 했던 인간들의 욕망을 드러낸 부분이 아닌가 싶다.
저자 베터니 휴즈는 전쟁의 신이자 욕망의 본성을 지닌 여신이란 경외의 존재감은 성과 폭력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시기를 이어 절대적 믿음과 신성함뿐만이 아닌 성에 대한 메타포로써 매춘의 여신이 되기도 했다고 말한다. 그리스의 항구 도시와 폼페이에서 신성한 의식처럼 행해진 매춘과 실제 매춘부들의 일들, 비너스의 프레스코화가 출토되는 것을 통해 매춘과 성교의 수호자로 상징이 되기 시작한다는 것. 인간의 욕망이 녹아있는 여신의 변천사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흔히 비너스 하면 벌거벗은 여인 이미지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비너스는 최초로 문명이 탄생한 때부터 지금까지 인류 역사의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인간은 왜 여신을 만들어냈을까? 그리고 왜 지금도 우리는 여신과 같은 아름다운 무언가를 욕망하고 있을까? 저자는 역사적 증거로 그 답을 풀어간다.
아프로디테-비너스는 동양 문화에서나 서양 문화에서나 관념이자 이미지로서 우리 일상에 존재한다. 이 여신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아주 쉽게 변하는 문화적 요소다. 우리는 최음제나 에로티시즘, 강렬한 소유욕, 화장품, 음란함을 이야기할 때 아프로디테를 기억한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성병을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최근 아프로디테는 다시 한번 선사시대처럼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가진 힘과 잠재력을 고취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아프로디테는 여전히 불멸의 존재인 듯하다.(p.209)
중동의 한 지방에서는 도끼에 갈비뼈와 다리가 베이고, 화살에 두개골이 뚫린 청동기시대 유골 수백 구가 발견되었다. 이처럼 전쟁과 폭력이 난무했던 당시 중동에서는 인간의 파괴적 충동을 설명하기 위해 죽음과 전쟁의 여신들을 만들어냈다. 한편, 서구 세계에서도 여신이 탄생했다. 그리스인들은 미와 사랑을 향한 불같은 욕망을 신화로 설명했다.
동서양이 교류하면서 중동의 여신들, 그리스 여신, 지역 토착 여신이 하나로 혼합되어 아프로디테가 태어났다.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한 후에도 그리스 전역에 퍼졌던 아프로디테 숭배 문화는 이름만 비너스로 바뀐 채 계속되었다. 비너스는 로마 시대에는 세계 정복의 야심을 후원하는 존재로,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문주의자들의 뮤즈로 빛을 발했다. 형태를 바꾸어 재탄생한 여신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 최고의 역사적 증거인 셈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에게 익숙한 벌거벗은 비너스는 비교적 최근에 나타났다. 근대에 들어서자 비너스는 욕정을 자극하는 인간 모델로 전락했다. 여성들은 과거 여신들이 가졌던 위엄과 능력은 가질 수 없었으나, 여신의 아름다운 육체는 본받아야 했다. 비너스는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보는 억압과 차별의 구실로 사용되었다. 지금도 비너스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일상에 들어와 있다.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아프로디테의 꽃 ‘장미’를 선물하며, 피부를 가꾸기 위해 비너스의 새 ‘비둘기’가 그려진 비누를 쓰고, 비너스의 과일 ‘석류’와 아름다운 여자를 연관 짓는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여신과 같은 어떤 대상을 사랑하고, 욕망하고, 바라고 있다.
이처럼 미와 사랑, 섹스, 폭력, 정복 등 고대부터 인류가 여신을 통해 욕망했던 것들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유효하다. 욕망은 우리가 존재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자극하는 삶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여신은 인류가 사회를 이루고 협력하도록, 서로 관계를 맺도록 돕는 존재였다. 고대인들에게 비너스는 매춘과 육체적 만남을 수호하는 신이자 동시에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매개체였다. 비너스가 수호하는 아름다움은 육체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아름다움도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랫동안 철학가와 예술가, 심리학자들에게 비너스는 영감을 주는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러니 서구 문명과 그 영향 아래 있는 지금 이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여신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 베터니 휴즈는 지난 40년간 여신의 자취를 직접 발로 뛰며 조사했다. 웅장한 그리스 신전과 사이프러스 바닷가, 중동의 고고학 발굴터와 폼페이의 가정집을 방문해 얻은 생생한 연구 기록들을 책에 담았다. 증거를 추적해가는 전개 방식과 생동감 넘치는 묘사 덕분에 독자들은 현장에 있는 것처럼 몰입하게 된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함께 포탄이 떨어지는 중동의 발굴터로, 지중해의 햇살이 쏟아지는 그리스로, 비밀스러운 수도원으로 역사 기행을 떠날 수 있다. 여정을 떠날 때마다 새롭게 밝혀지는 비너스의 비밀에 설렘과 전율을 느낄 것이다. 게다가 저자는 고고학 연구뿐만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한 고대 문헌과 예술품들을 분석해 다채로운 여신의 모습을 그려낸다. 신화학, 고고학, 철학, 미학을 넘나들며 촘촘히 엮어놓은 흥미로운 여신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오늘날 우리가 여성을 미적 찬양의 표현으로 쉽게 사용하지만 자세한 뜻과 이어져온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면 함부로 붙일 단어가 아닌 듯하다.
저자 : 베터니 휴즈(Bettany Hughes)
역사학자이자 저술가, 방송인으로 지난 25년간 대중에게 역사를 알리는 데 힘썼다. 고대 및 중세사와 문화를 전문 분야로 옥스퍼드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 코넬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현재 킹스칼리지 런던의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녀의 저서는 평단의 찬사와 세계적인 성공을 거머쥐었다. 헬레네에 관한 역사서 《트로이의 헬레네(Helen of Troy)》는 10개국에서 출간되었으며, 소크라테스 전기 《아테네의 변명(The Hemlock Cup)》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선정되었다. 이스탄불 역사서 《이스탄불: 세 도시 이야기(Istanbul: A Tale of Three Cities)》는 12개 언어로 번역되고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선정되었으며, 런치먼 상 최종 후보작에 올랐다. 아울러 BBC와 Channel 4, PBS, 내셔널지오그래픽, 디스커버리, 히스토리 채널 등 전 세계의 방송국에서 50개 이상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영국 역사협회의 노턴 메들리콧 메달과 헬레나 바스다 실바 유러피언 상을 포함해 다양한 상을 받았고, 역사학에 공헌한 바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4등 훈장을 받았다
역자 : 성소희
서울대학교에서 미학과 서어서문학을 공부했다. 글밥아카데미 수료 후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미래를 위한 지구 한 바퀴》, 《알렉산더 맥퀸: 광기와 매혹》, 《코코 샤넬: 세기의 아이콘》 등이 있으며, 철학 잡지 《뉴 필로소퍼》 번역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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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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