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필과 노트
은이후니
- 공개여부
- 작성일
- 2007.1.29
3. 시간을 방부 처리할 수 있는 소금은 없는가
그러고 보면 소금은 찌꺼기이다/ 태양이 마지막까지 거두어가지 않는/ 버림받음인 것, 잔류인 것
(민음의 시 52 이문재 시집 <산책시편> 중 ‘염전중학교’에서)
자전거를 타고 산하를 누비던
바다의 짠맛과 더불어 햇볕의 향기가 가득 담겨 있는 이 고요한 소금은, 벌판에 내려 쌓이는 함박눈처럼 와서 염전의 바닥에 부드럽게 쌓인다. 이런 고요한 소금의 삼투력은 깊고 그윽해서 젓갈을 익히고 재료들의 향기를 드러나게 한다고,
그런데 여기 시인 이문재가 만난 소금은
야 이 새끼야 뒈진 줄 알았다, 라고 웃고 떠들어대는 중학교 동창들과의 반가운 해후도 시인의 쓸쓸한 마음을 돌이키는 데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전속력으로 늙어가는 그들의 얼굴에서 시인은 속절없이 지나가버린 지난 세월을 더욱 실감할 뿐이다. 그래서 시인은 토악질 끝에 탄식한다. 아, 십팔 년이……가버렸다!
그렇다. 시간을 방부 처리할 수 있는 소금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추억이란 기껏해야 시간의 찌꺼기일 뿐이며 잔인한 시간이 한 조각 가지고 있는 손톱만한 자비심이 겨우 허락한 잔류에 불과한 것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허락된 그 찌꺼기와 잔류조차도 그것들을 지탱해 주는 상관물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버리고 있는 현실 속에서는 그 입지가 갈수록 옹색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땡볕 속을 걸어서 그리고 그 땡볕 속에
염전들이 그 많은 소금을 쌓아두고도 속절없이 사라지고 만 것처럼 우리의 기억이 아무리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해도 시간을 붙잡아두지는 못한다. 시간을 방부 처리할 수 있는 소금은 없으며,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추억도 서서히 썩어서 언젠가는 마침내 사라질 것이다. 시인이 중학교를 다니던 3년 내내 매주 조회 시간마다 목청껏 불러제꼈을 교가의 첫 구절을 끝내 떠올리지 못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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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