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이 집에서 처음으로 수신인에 내 이름이 적힌 편지를 받았다. 이사하고 나서 보름 가까이 지났는데도 전에 이 집에 살았던 사람 앞으로 계속 날아드는 우편물들로 좀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으니 반가워야 할 터인데, 아내로부터 편지를 받아든 나는 왠지 좀 찜찜했다. 편지 봉투 뒷면에 발신인이 적혀 있지 않았고, 발신인을 짐작할 만한 로고나 그림 따위도 전혀 인쇄되어 있지 않아 딱딱하고 불친절한 느낌을 주어서 그랬을까?

 

아니나 다를까, 개봉해서 첫눈에 들어온 편지 상단의 로고는 이 편지가 그다지 유쾌한 소식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대번에 알려주었다. New Zealand Police. 잠시 숨을 고르고 읽어내려가는 내 얼굴 표정이 많이 구겨진 모양이다. 아내가 묻는다. 뭐야? 뭐가 잘못 됐어? 한숨을 쉬며 나는 대답한다. 과속 딱지를 뗐어. 벌금을 내라고 하는군. 아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대꾸한다. 아니, 언제 우리가 여기서 과속한 적 있었나? 이런 시골 동네에도 몰래 카메라가 있나 보네.

 

그런데 편지와 함께 동봉한 벌금고지서를 들여다보니 우리 차가 무인 카메라에 찍힌 곳은 이곳 카티카티나 그 주변이 아니었다. 오클랜드에서 전에 우리가 살던 동네 근처의 도로였는데, 시속 50킬로미터 구간을 63킬로미터로 달린 것으로 나와 있었다. 위반한 날짜와 시간을 따져보니 바로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하던 날 바로 그 시간이었다.

 

평소 공중도덕에 관한 한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바른생활 사나이였기에 혹시 무슨 착오가 있는 게 아닐까 기대했었던 나로서도 알리바이를 댈 수 없는 꼼짝없는 상황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아침, 이사전문회사에 일을 맡기지 않고 소형 트럭 두 대를 가지고 있는 딸 남자 친구의 도움을 받아 우리끼리 이삿짐을 나르고 싣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었다. 뒤늦게 이사 가는 집으로 향하면서 늦어진 시간을 벌충하느라 나도 모르게 평소와는 달리 좀 속력을 냈던 모양이다. 그게 꼼짝없이 무인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그날 내 몸이 좀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싸게, 일꾼들 눈치보는 일 없이, 우리끼리 이사를 참 잘했구나 생각했는데, 뒤늦게 날아든 과속벌금고지서가 이렇게 내 뒷통수를 때릴 줄이야. 아내는 이게 다 새로 이사온 이 집에서 앞으로 무탈하게 잘 지내기 위한 액땜이라고, 그러니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잔뜩 골이 난 나를 다독인다. 그래 맞아, 그 액땜도 몸이 아니라 돈으로 하는 것이니 얼마나 다행이야. 80달러(한국돈으로 약 7만원)를 기꺼이 뉴질랜드 정부에 헌납하기로 한다. 옛다, 액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