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과 서평

신의딸
- 작성일
- 2014.5.2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
- 글쓴이
- 우르술라 누버 저
문학동네
"지난 밤, 나는 조금 울었다."
만성피로 증세를 보이며 머리만 대면 곯아떨어지던 제가 어느 날부터인가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날이 많았습니다. 낮에는 멀쩡하게 생활하다가도 밤만 되면 이유도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많이 지쳤구나,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저 '번아웃' 상태로만 알고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낮에는 웃던 그녀들이 밤마다 우는 이유"
이 책을 읽어야겠다 생각한 건, "한낮엔 웃다가 한밤엔 후회와 자책으로 우는 당신에게"라는 문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난 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문장부터 저자는 제 마음을 읽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는 자신이 우울하다는 것조차 모른 채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들을 위한 책입니다. 이 책은 왜 유독 여자가 남자보다 우울증에 많이 걸리는지를 탐구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우울한 여자는 전반적으로 유쾌하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남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기 때문에 대화 상대로 꽤 인기가 많다(307)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무도 그녀가 우울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결국은 스스로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한 채 지쳐가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여성이고, 얼핏 보기에는 우울증과 전혀 상관없는 모습을 보이고 열심히 성과를 거두려 하고 다른 사람에게 무척 친절하지만, 속으로는 자기 비하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면, 당신은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이 책은 "남자와 판이하게 다른 여자만의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압박감"의 실체를 파헤쳤습니다. 여자는 "특별한 종류의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여자가 경험하는 그 특별한 종류의 스트레스의 실체를 한마디로 "관계'라고 정의합니다.
"여자의 우울은 일종의 관계장애이다"(16).
"이렇게 우리는 타인을 잃어버리지 않고자 하는 소망 때문에 자신을 잃어버리고 만다."
유독 여자들이 남자에 비해 우울증에 많이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자의 설명이 재밌습니다. 일단은, 여자가 남자에 비해 의사에게 더 솔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의사들이 가진 선입견 때문에 남자에게보다 여자에게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더 많이 내려지기 때문이랍니다. 생물학적 요소(호르몬, 유전자)와 심리적 관점(유년 시절, 성격)으로 이를 설명하는 학자들도 많은데, 저자는 생물-심리적 모델만으로는 "여성의 우울증 발병률이 이토록 높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저자가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곳은 '사회적 관점'입니다.
"여자가 우울해지는 이유는 호르몬이나 유전자, 혹은 여자 특유의 성향 탓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 겪는 불화가 더 큰 원인이 된다"(174).
본질적으로 여자의 하루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정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100). 여자는 남자보다 걱정해야 할 일이 많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도움과 관심, 원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이를 무시하지 못합니다(161). 또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두지 못하고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그들이 내게 무엇을 기대하는지에 너무 골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74).
문제는 불균형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한 만큼 자신에게도 필요한 격려와 공감을 얻지 못할 때, 갈등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갈등상황이나 상대의 거부를 무서워하는 여자는 이런 경우 자신이 스스로 책임을 뒤집어쓰고,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울한 여자는 자신의 욕구는 접어둔 채, 더 친절해지려고 애쓴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는 이렇게 현대 여성을 덮치는 다양한 콤플렉스, 스트레스 상황을 설명하고 그에 반응하는 여자의 심리를 다각도에서 분석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우울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길을 가르쳐줍니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어떤 설명 하나가 남자를 이해하는 중요한 관점을 가르쳐주었고, 그것 때문에 내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여아와 남아가 성장 과정에서 어떻게 각각 다른 성향을 학습하게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 설명을 통해 "여자가 관계 속에서 감정적으로 외로워할 때 남자가 어찌할 바 모르고 그저 바라만 본다고 해서 그녀를 무시하는 것은 절대 아니"(223)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를 위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하겠는가?"
저는 근 20년 동안 다른 사람을 우선으로 돌보고 격려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져왔습니다.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나의 욕구나 필요보다 늘 다른 사람의 욕구를 우선시하는 것을 당연시해왔습니다. 친구들나 가족들과의 만남도 늘 뒷전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문득 문득 나도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바람 때문에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낮에는 늘 친절한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쓰다 밤이면 무기력 속에 갇혀 늘어지곤 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내 자신에게 지나칠 정도로 소홀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자는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그 이유를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돌린다"고 합니다. 더구나 "우울한 여자는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가장 잔인하게 대하며 자신의 사정을 이해하고 위안하지 못한다"(279)고 합니다. 지금 당신이 우울하다면, 그것은 나의 이해와 위로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다른 누구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우울은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오랫동안 침묵해왔다는 신호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일에 너무 많이 신경쓰고, 지나치게 순종적으로 다른 이의 상황에 자기를 끼워맞추며, 무리한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고 본인을 존중하지 않으며 살았다는 신호이다"(302)
튤리안 차비진 목사님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날 (미국) 고등학생이 평균적으로 느끼는 불안감의 수준은 1950년대 초 정신병 환자의 수준과 똑같다", 또 "2007년 <뉴욕타임스>는 미국 여성 열 명 중 세 명이 취침 전에 상습적으로 수면제를 복용한다"고 보도했다고 합니다. 현대의 많은 여성들이 (과도한)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음을 생각하면, 자신도 모른 채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수 없습니다.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심리분석학자인 융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이렇게 충고했다고 합니다. "우울증은 검은 옷을 입은 여인과 같습니다. 이 여인이 나타나면 일단 내쫓지 말고 탁자에 앉으라고 권하세요. 그리고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이세요"(256).
현대 사회는 온갖 소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기를 주장하는 목소리, 서로를 비판하는 목소리, 많은 매체에서 쏟아내는 소리들이 홍수를 이룹니다. 어쩌면 그 소리들에 뭍혀 정작 들어야 할 내 마음의 소리는 무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더 이상 방치하지 않으려 합니다. "내가 나를 위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하겠습니까?"
"하지만 방법은 의외로 쉽다. 일단 내 마음의 소리에 가만히 귀기울이는 것에서 시작하자. 애써 모른 척했던 내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주자. 그것이 나와의 화해를 위한 첫걸음이다"(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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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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