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와 함께 하는 하루

청개구리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0.7.8
연탄 한 장
- 안 도 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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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님의 그 유명한 詩 '너에게 묻는다'가 떠오른다.
너에게 묻는다
- 안 도 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대학시절 어느 친구가 이 시를 보더니 왈,
"난 차도 된다. 난 누군가에게 정말 뜨거웠던 적이 있으니까."
그 말을 듣고 주위 친구들과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친구 말처럼 연탄재를 차도 될까?
연탄재를 차는 것은
또한 스스로를 차는 것과 같지 않을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연탄재를 차서는 안 된다.
한낱 연탄만 그러랴...
따지고보면
내 주위에는 내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나를 위해 드러냄 없이 스스로를 희생하는 존재들이 얼마나 많을까.
삶이란 나를 으깨는 일이라고 한다.
그 으깨어짐이라고 하는 것이
비단 몸을 희생하는 것에만 의미를 두는 것은 아니리라.
사람이 으깨어질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심지어는 말만으로도 남을 위해 스스로가 으깨어질 수 있다.
이런 멋진 詩 한편
가끔 꺼내 볼 수 있다면
그때마다 커다란 용기가 생겨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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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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