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을 살아 가고 있는 우리는 그야 말로 매일 매일이 불확실성의 체인으로 연결된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2020년 1월까지만 해도 중국 우한시에서 처음 발병한 코로나 바이러스 (COVID-19)가 단순한 신종 지역 풍토병인줄로만 알았겠지만, 그로부터 반 년이 훌쩍 지난 8월 현재, 전 세계의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는 물경 2,200만 명에 육박하고 있고, 사망자 역시 8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한국의 사정 역시 녹록치 않아서, 잡혀 가는 듯 했던 확진자 수는 최근 예기치 못한 폭증세로 인해 2차 팬더믹 양상으로 돌입하는 추세다. 코로나 바이러스 외에도 2020년은 불확실성의 관점에서 보면 또 하나의 기록적인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들은 지난 6월부터 8월 중순까지 유례 없을 정도로 길고 길었던 두 달여 간의 장마를 겪었다. 예년의 장마가 보통 2-3주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가히 우기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듯한 수준의 긴 장마를 겪은 것인데, 이렇게 긴 장마 역시 올해 초만해도 예상했던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폭염을 예측한 사람은 많았다.) 물론 매년 극심해지고 있는 지구 기후 위기로 인한 재해 피해 규모가 매년 급증할 것이라는 예상은 있었지만, 장마의 기간이 두 달이 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팬더믹이든 기후 위기든, 현대인의 삶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꼭 현대인에게만 해당했던 현상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에서 현대로 올수록 인류의 과학적 지식과 기술, 그리고 자연을 이해하는 방법론의 발달로 인해, 인류가 맞닥뜨리는 불확실성의 범위가 줄어 들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100% 정확도는 아니지만 이제는 제법 쓸모 있는 기상예측 알고리듬과 그것을 실행할 슈퍼컴퓨터가 있으며, 복잡한 대중교통 시스템은 큰 변동 요인이 없는 한 대부분 예약된 시간에 출발하여 예정된 시간에 도착한다. 불확실성이 갖는 수학적 특징을 역이용하여 난수 (random number)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정보 보안을 위한 암호로 잘 활용할 수도 있으며, 특정한 시스템에 불완정성을 일부러 집어 넣어 특별한 물성을 이끌어 내는 기술을 개발하는 수준에 이르기도 했다. 행성의 주기적 운행을 점성술이나 관측에만 의존하다가, 물리학과 수학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 와 방정식 몇 개로 복잡한 현상을 예측할 수 있었으며, 무한정 안정된 시스템으로 여겨졌던 행성계의 움직임이 수백 만 년 후에는 카오스로 진화할 수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자연, 그리고 인간의 시스템에 내재된 불확실성과 무질서에 대한 이해가 커지면 커질수록, 인류는 여전히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불확실성과 마주하고 있다. 수천 기의 기상 위성과 슈퍼 컴퓨터를 가지고서도 여전히 일기예보의 정확도는 100%를 달성하기 힘들며, 일주일 후에 비가 오는 것을 50% 이상의 확률로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층의 응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첨단 신 기술을 도입해도 당장 며칠 뒤의 대지진을 예측하지 못 해, 수 만 명의 인명 피해를 사전에 막을 수 없다. 고전 물리학의 종언을 고했고, 전자공학의 혁명, 그리고 21세기 차세대 반도체의 혁명을 이끌어 내고 있는 양자역학은 여전히 확실한 해석, 인지의 철학을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각종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언론사의 출구 조사는 실제 결과와 정반대의 예측을 보이는 경우가 꽤 빈번하게 매번 반복된다.

이 책의 저자인 영국의 수학자 이안 스튜어트 (Ian Stewart)는 이러한 불확실성과의 마주함이 과연 과학적으로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고, 각 분야에서 어떻게 지금까지 진화해 왔는지를 차분히 서술한다. 이미 여러 권의 유명 교양 과학서를 썼던 저자는 해당 주제에 대해 이미 좋은 책을 저술한 바 있다. 1989년, 이안 스튜어트는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는가 (Does God Play Dice?)’라는 제목의 교양 수학서를 펴낸 바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당시 기준으로 최신 과학이었던 '카오스 이론'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를 하였다. 카오스, 즉, 혼돈 이론은 미분방정식으로 기술될 수 있는 동역학 시스템의 시간에 따른 상태 변화를 논하는 이론이다. 특히, 초기 조건의 미약한 변동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큰 폭의 변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해의 불확실성은 카오스 이론의 핵심 중 하나인데, 저자는 바로 이 불확실성에 주목하여 카오스 이론이 보여 줄 수 있는 새로운 비전에 대해 논했다. 약 30여 년이 흐른 2018년, 이제 완연한 70대에 접어든 노 수학자가 된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장난스럽게 비튼 듯한 새로운 책을 쓴다. 그것은 바로 ‘주사위는 신 놀이를 하는가? (Do Dice Play God?)’라는 제목의 책이다. 이 책은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신도 주사위 놀이를 한다’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는데, 바뀐 제목도 딱히 나쁘지는 않으나, 1989년 동 저자의 책과의 대칭성을 생각할 때, '주사위는 신 놀이를 하는가'라고 그대로 직역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한다.

저자가 이러한 제목을 선택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계산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단순히 주사위와 신의 위치를 주어와 목적어 대치를 시킨 것에만 그쳤다고 생각한다면, 사실 이 책을 반만 이해한 것이다. 양자역학 태동기에, 코펜하겐 해석을 위시로 한 양자역학의 물리적 실재에 대한 확률론적 해석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이후 아인슈타인의 발언은 때로는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 한 아인슈타인의 고집스러움에 대한 예시로, 때로는 양자역학의 해석에 다른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대안으로, 때로는 자연에 내재된 확률론적 특성이 어디까지인지를 묻는 과학철학의 주요 논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저자가 아인슈타인의 이 발언을 1989년의 책에 이어, 다시 2018년의 새로운 저작에서 재활용한 것에도 다분히 의도가 있다. 특히 원제를 살펴 보면, 주사위를 한 개 (die)가 아닌 여러 개 (dice)로 쓰고 있다. 이는 주사위를 여러 번 던짐으로써 확률 분포가 점점 정규분포에 가까워지는 통계학의 '큰 수의 법칙'을 의도한 것일 수도 있고, 주사위 한 개에 비해 여러 개가 있을 때 경우의 수가 훨씬 많아지므로 불확실성의 범위를 더욱 다채롭게 정의할 수 있다는 의도일 수도 있다. 이러한 저자의 의도는 책의 전반부에서 확률론과 통계학의 발전 역사를 되짚어 보는 과정에서도 한 번 드러나며, 책의 후반부, 양자역학을 본격적으로 다룰 때 재차 드러난다. 특히 코펜하겐 해석을 곧이곧대로 받아 들이지 않고 혼돈 이론에 기초한 '숨은 변수 이론'으로 양자역학의 해석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저자의 논지는 ‘신도 주사위 놀이를 한다’는 한국판 제목과 정반대의 의미를 갖기 때문에 굉장히 역설적으로 다가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책의 전반부는 전술하였듯, 딱히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들로 점철되어 있다. 확률론과 통계학을 다루는 대부분의 교양 과학서에서 다루는 통사적인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내용들을 잘 아는 독자들에게는 그래서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기존의 확률론 혹은 통계학 기본 교양서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저자가 인류의 불확실성 대처 역사를 여섯 개의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을 신의 의지로 합리화시켰던 단계, 과학적 접근 방식으로 이것을 다루게 되기 시작한 단계, 확률론과 통계학이 본격적으로 불확실성을 다루게 된 단계, 양자역학의 탄생으로 시작된 양자 불확실성의 단계, 동역학 시스템의 혼돈 이론으로 개막된 불확실성에 대한 이해 단계, 불확실성에 대한 무지를 오히려 역이용하여 제어하고 응용하기 시작한 단계로 저자는 인류의 불확실성 대처 지성사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는 통사적 관점으로도 볼 수 있지만, 저자가 잠깐 언급했듯, 굳이 통사적 흐름으로 볼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다양한 시대, 다양한 분야에서 발달한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었는지를 살펴 보기 위한 매듭이라고 보는 것이 더 편할 수도 있다.

책의 전반부는 앞서 언급헀던 저자의 여섯 단계 분류 중 첫 네 단계까지의 서술로 갈음할 수 있다. 저자가 설명하듯, 인간이 미래 예측에 집착하는 것은 인간의 마주하고 있는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여 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이 닥쳐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불확실성을 느끼는 것은 다른 생물과는 달리,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는 자아가 있기 때문이고, 이는 닥쳐 올 미래에 대해 미리 생각 (혹은 걱정)하는 인류 고유의 특성이기도 하다. 시간의 흐름을 인지한 덕분에 미래라는 걱정 거리도 생겼지만, 그 걱정 거리에 대처하기 위해 과거라는 데이터를 쓸 수 있는 것도 인간 지성의 특징이다. 단순히 과거의 경험에 의존하여 앞날을 예측하는 수준이 아닌, 과거의 경험을 체계적인 데이터로 바꾸고, 그로부터 패턴을 읽고 그것을 예측에 이용하는 데까지 이르면, 이제는 과거의 경험은 더 이상 개인의 경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확률과 통계의 무대가 된다.

확률론과 통계의 탄생은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도박을 논하는 것으로 서술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3, 4장에 걸쳐 다소 하나마나한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 놓은 것은 이 분야를 잘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 분야에 대해 처음 진입하는 독자들에게 역시, 고등학교 확률/통계 이상의 지식이 없다면 다소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개별적인 사례의 언급보다도, 확률론이 태동하고 통계학으로 발전하던 당시의 사고의 흐름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조금 더 서술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5장에서는 본격적으로 통계학의 탄생, 즉, 회귀분석과 최소자승법 같은 도구의 탄생 이야기가 나온다. 이러한 도구들이 과적합 (over-determined)된 데이터를 하나의 논리로 서술하기 위한 시도에서 파생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은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서술되고 있다. 단순히 회귀분석을 독립변수와 종속변수 사이의 직선 그리기라고 막연하게 이해하고 있던 독자들이 있었다면, 이 부분에서 꽤 좋은 통찰력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6장에서 본격적으로 샘플 공간과 조건부 확률의 개념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아마 이는 이후에 이어질 베이즈 정리, 베이지안 해석을 위한 기초 작업을 해 두려는 의도로 보인다. 많은 독자들은 고등학교 확률/통계 과목을 배울 때 아마도 조건부 확률의 기초 개념을 배울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조건부 확률의 분모와 분자를 왜 그런 식으로 설정해야 하는지 잘 이해를 못 했던 사람들이 꽤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저자가 택한 설명 방식은 그러한 난관에 부딪힌 사람들에게 좋은 해석의 틀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7장의 제목은 사회 물리학인데, 실상은 사회과학의 도구로서 발전해 온 통계학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8장에서 저자는 본격적으로 베이즈 정리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베이즈 정리는 빈도주의 철학과는 달리, 사전 확률과 사후 확률을 근거로, 특정 사건의 확률을 계산하는 철학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애초에 모수를 정확히 결정할 수 없는 빈도주의 철학과는 달리, 새로운 정보가 입력되었을 시, 그것을 업데이트하여, 상황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점점 많은 분야에서 공격적으로 통계 해석의 도구로 간주되어 활용되고 있다. 베이즈 정리에 입각한 확률론, 그리고 통계학은 의외로 7장에서 언급한 사회 물리학의 주요 도구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음을 저자는 8장의 후반부에서 역설하고 있다. 저자는 다양한 법정 판결에서 빈도주의에 입각한 확률의 오해가 억울한 피해자, 억울한 피의자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특히 모집단을 어디로 볼 것인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부 확률을 따르는 베이즈 정리는 어떤 피의자가 진짜 범죄를 저질렀을 확률을 99%에서 10%로 낮출 수 있음을 저자를 실제 판례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저자는 8장의 말미에, 기존의 빈도주의 통계학에 입각한 고전 통계학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베이지안 통계학에 입각한 베이지안 네트워크를 사용할 것을 은연 중에 지지하는 뉘앙스를 보인다. 이 아이디어는 다루는 개별적인 베이지안 통계 계산이 아닌, 엄청난 규모의 판례와 데이터에 의존하는 베이지안 통계 알고리듬을 판결에 이용하자는 아이디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AI 기반 판사 도입과도 맥락이 맞닿아 있는 것 같은 아이디어다. 이 아이디어가 실제 효용성이 있을지 여부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과거의 빈도주의 통계학에서 얼마나 확률과 통계가 잘못 해석되고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만들어냈고, 실제 범죄자를 다시 무죄석방시켰는지를 감안한다면, 시스템의 수정에 있어서는 반드시 베이지안 통계학에 입각한 방식이 집중적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추가적인 사례 분석과 최근 연구 경향이 8장에 조금 더 보강되었더라면 독자들의 이해를 한 층 더 깊게 만들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9장은 통계물리학 이야기다. 통계물리학 이야기를 할 때 그 창시자인 볼츠만을 빼 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볼츠만은 빈 대학 학부생 시절, 맥스웰의 기체분자운동론 (kinetic theory)에서 영감을 얻어, 본격적으로 '원자'가 어떻게 운동하는지에 대한 이론을 순전히 기계론적인 뉴턴 역학 관점에서 유도하였고, 특히 역학의 시간 대칭성과 그가 유도한 통계열역학의 시간 비대칭성의 모순을, 확률 분포의 도입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이는 통계물리학의 시초가 되었다. 볼츠만이 거의 평생 매달렸던 회심의 역작인 운송 (수송) 방정식 이론 (Boltzmann transport equation)은 고전역학과의 화해는 물론, 당시까지 평형 상태에서만 논의되던 기체의 움직임을 비평형 상태로까지 끌고 들어와 다루려던 최초의 시도였다. 볼츠만은 이 방정식을 최대한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 기체 분자의 기계론적 개념을 더욱 명확하게 설정하였다. 즉, 이상기체 (ideal gas) 분자의 충돌을 수학적으로 모형화했는데, 3차원 위치-운동량으로 이루어진 6차원 위상 공간 (x,y,z,px,py,pz)에서의 입자들의 확률 분포 함수 f(x,y,z,px,py,pz)를 도입하고, 그것의 비평형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f의 시간 변화율을 상정한 것은 물리적 개념에서나 수학적 체계 안에서 탁월한 접근이었다. f의 변화율은 분자에 가해지는 외부의 힘, 분자의 확산 (diffusion), 그리고 분자끼리의 충돌 (collision)로 나뉘어 분석되었는데, 앞선 두 가지 요소는 이미 잘 알려져 있던 뉴턴 역학 이론을 가져다 쓰면 되었지만, 세번째 요소가 문제였다.

문제를 간단하게 만들기 위해 볼츠만은 기체 분자 두 개의 충돌만 고려했다 (세 분자가 한꺼번에 충돌하는 경우는 수학적으로 해석하기가 불가능하다). 특히, 그 때 그 때 마다의 분자 간 충돌은 다른 충돌이나, 과거의 충돌과는 상관 없으며, 충돌 직전의 두 분자 역시 서로의 위치나 운동량 정보를 모른다는 (즉, 완전히 uncorrelated state라는)는 가정 (이 가정을 분자 카오스 (molecular chaos )가정이라고 한다.)을 이용하여, 볼츠만은 운송 방정식의 '충돌항'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는데 성공하였다. 문제는 그 표현이 닫힌 표현이 아니라 적분 형태로 밖에는 남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몇 가지 가정을 더 하면 (특히, BGK 등의 approximation은 맥스웰 분포로의 회귀율을 도입하여 훨씬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다.) 적분 형태를 벗어날 수 있으나, 가정이 없는 상태에서는 수학적으로 이 미분-적분 방정식의 일반해를 구할 수 있을 전망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힐베르트도 이 방정식에 한 때 매달리기도 했으나, 일반해를 구하는 것에는 성공하지 못 했을 정도다.

볼츠만은 열역학 2법칙이 왜 존재할 수 밖에 없는지를 바로 이 운송 방정식을 통해 보이려 노력했다. 볼츠만은 H라는 열역학적 비대칭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 때문에 볼츠만의 운송 방정식은 'H-정리'라고도 불린다), 기체 분자들의 H값은 그의 운송 방정식에 따르면, 분자들의 속도 분포가 맥스웰-볼츠만 분포일 때 최소가 된다 (따라서 물리적 의미만 따지면 엔트로피 S는 H값의 부호를 바꾼 값에 대응한다.). 분자들의 속도가 맥스웰-볼츠만 분포를 벗어나는 정도가 크면, 그에 비례하여 분자 간의 충돌 빈도가 높아지고, 이는 마치 피드백 제어회로처럼 작용하여 맥스웰-볼츠만 분포를 벗어난 '비정상적인' 속도 분포를 다시 '정상적인 (즉, 평형 상태에서는 열역학적으로 가장 낮은 자유 에너지를 갖는)' 맥스웰-볼츠만 분포로 되돌리는 작용을 한다 (이를 가장 간단하게 수학적 형태로 모사한 것이 BGK approximation이다). 이는 열 현상이 왜 비가역적인지를 설명하는 이론이 되었다. 어떤 열적 상태에 있는 기체 시스템이든, 결국 시간이 지나면 맥스웰-볼츠만 분포로 회귀하는 것은 상태 진화에 대한 방향성이 정해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은 엔트로피는 시간에 따라 감소할 수 없다는 클라우지우스의 이론과 합치되는 것으로 보였다. 즉, 볼츠만의 운송 방정식, 특히 분자 충돌에 대한 모형은 엔트로피의 개념을 수학적으로 정돈하고, 비평형 열역학에서의 시간 비대칭성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이것이 정작 볼츠만 자신이 이론을 유도한 기저인 뉴턴 역학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특히, 뉴턴 역학은 힘, 질량, 그리고 시간만 주어지면 개별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있는, 기계적으로 잘 작동하는 체계였고 (사실 분자동역학 시뮬레이션도 이러한 기계론적 해석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마찬가지다. 몇 가지 term이 더 추가되거나 확률적 해석을 추가할 수는 있다), 특히 시간에 음의 부호를 붙이더라도 물리적으로 이상할 것이 없는 시간 대칭성을 갖는다. 따라서 시간 가역성이 있으며, 이는 뉴턴 역학으로 기술되는 어떤 시스템이라도 시간 대칭성을 가져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제는 볼츠만이 유도한 운송 방정식은 뉴턴 역학으로 기술되는 어떤 가상의 물리량 H에 시간 대칭성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볼츠만의 친구이자 같은 빈 대학 동료이기도 했던 요제프 로슈미트 같은 물리학자는 볼츠만의 이론에 모순이 있다고 비판했으며, 이는 로슈미트의 역설 (시간 가역성 역설)이라고 불렸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이 점을 다시금 지적하고 있다.

볼츠만 방정식은 수학적 관점에서도 꽤 곤란한 지적을 마주하기도 했다. 동시대의 프랑스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앙리 푸엥카레는 에너지가 보존되는 비평형계 역시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상태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음을 발표했는데 (이를 푸엥카레 재귀정리 (Poincare recurrence theorem)라고 한다), 이 정리에 따르면 다소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에 있던 계 역시 시간이 충분히 지나면 그보다 낮은 엔트로피를 갖는 상태로 회귀할 수도 있다. 즉,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닫힌 계의 엔트로피가 반드시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서, 볼츠만의 H-정리는 푸엥카레 회귀정리와도 모순인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또한 같은 대학에 재직 중이던 과학철학자 에른스트 마흐는 조금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볼츠만의 아픈 곳을 찔렀다. 마흐는 볼츠만을 비롯해서, 그 이전 달톤 같은 과학자들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원자론'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혹은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그것이 실재한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따라서 볼츠만이 어떤 정교한 이론으로 어떤 특정한 현상을 설명한다고 해도, 그것은 반쪽짜리 이론일 뿐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이런 사조는 사실 유럽 대륙, 특히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같은 독일어권 학계에서 강했는데, 증거가 없으면 이론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실재론'의 바탕을 이룬 것이기도 했다.

개념의 실재성, 수학적 헛점, 이론의 모순성, 그리고 검증을 빡세게 요구하는 독일권 학계의 실증주의 분위기 속에서, 볼츠만 같이 자존심이 센 물리학자는 점점 에너지가 고갈되어 갔을 것이 분명하다. 둘째 아들이 맹장염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한 후, 조울증을 앓기 시작했던 볼츠만에게, 이러한 끊임 없는 동료들의 공격은 학자로서의 자존심을 계속 갉아 먹는 요인이기도 했다.

적어도 요제프 로슈미트의 시간 가역성 공격은, 볼츠만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론을 확률론적 관점에서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마침내는 S = klogW라는 엔트로피 개념을 확립하는 방향으로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 (참고로 로슈미트는 1895년에 사망했다). 또한 푸엥카레 정리와의 합치성 역시, 엔트로피의 증가와 비평형 열역학 법칙에 확률 개념을 도입하는 것으로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다.

책 전반적으로는 저자가 충실하게 확률과 통계를 다뤘던 과학사의 주요 부분을 잘 다룬 것으로 보이지만, 몇몇 지적 불성실성이 보이는 대목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부분이다. 저자는 뉴턴 역학의 시간 대칭성이 뉴턴 역학에서 유도될 수 있는 볼츠만 방정식과 통계물리학에서 충분히 화해되지 않았다고 (그래서 자기 모순적인 면이 남아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렇지만, 볼츠만의 끊임 없는 노력은 원자라는 실재론을 제외하고는, 엔트로피 개념의 확립과 푸엥카레 정리와의 합치, 즉 비평형 열역학의 확률 개념 도입으로 실마리가 풀렸다. 물론 마흐와의 실재론 다툼은 볼츠만이 죽을 때까지 끊임 없이 볼츠만을 괴롭혔다. 10년 넘는 마흐-볼츠만 논쟁은 '원자'에 대한 실재성이 증명되지 않는 한, 볼츠만에게는 풀 수 없는 숙제였다. 1897년, J.J. 톰슨에 의해 처음 실험적으로 그 존재가 증명된 전자 역시, 당시로서는 원자가 실재하는지에 대한 실험적 증거로서는 불충분하다고 여겨졌다. 원자의 실재한다는 당위성을 철학적으로 우회하여 증명하기 위해 볼츠만은 빈 대학에 있을 때 물리학뿐만 아니라, 철학, 특히 인식론을 비롯한 과학철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심지어 스스로 과학 철학에 대한 강의를 하기도 했다. 물론 그 강의와 철학 역시 마흐와의 합의를 끝내 이룰 수 없었고, 마흐를 지지하던 과학자들의 공격도 같이 받게 되었다.

지속적인 공격은 볼츠만을 점점 내향적으로 몰고 갔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기 보다는 소모적인 공격에 대한 방어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게 만들었다. 물론 대부분의 방어는 그가 만든 이론이 그 때까지 관측된 여러 실험 결과와 잘 합치된다는 귀납론적인 방어이긴 했다. 1905년에 출판된 아인슈타인 (당시로서는 무명에 가까운)의 브라운 운동에 관한 페이퍼 역시 볼츠만을 지옥에서 구해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의 페이퍼에서 원자의 실재론을 가정하여 입자의 통계적 요동을 해석함으로써, 입자의 열적 요동으로 준동된 random walk에 의한 확산을 설명하였다. 지금은 볼츠만 상수 k라고 불리는 특별한 상수가 바로 그 열적 요동에 관여하는 상수이며, 그 의미는 원자를 가정해야만 확립할 수 있음을 보였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계산이 맞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정해진 시간 동안 확산된 입자의 개수를 측정하여, 어림셈으로써 아보가드로수도 측정했는데, 정확한 값은 못 구했지만, 대략 10^23임까지는 보임으로써, 꽤 실질적인 증명을 한 결과에 당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매우 애석하게도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계산도 이듬 해 있었던 볼츠만의 불행을 막을 수는 없었다.

볼츠만의 운송 방정식은 그의 사후에도 계속 연구되었으며, 지금은 통계물리학은 물론, 반도체 소재의 물리학, 양자역학/양자정보, 스핀트로닉스, 플라즈마 동역학, 유체역학, 고분자 물리학, 연소공학 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각종 유체 (혹은 준 유체)의 이동 및 유체가 갖는 물리적 특성의 비평형 분포를 해석하는데 응용되고 있다. 불행하고 힘든 삶을 살았던 볼츠만의 연구는 통계물리학이라는 물리학의 주요 학문 분야의 시작을 알렸으며, 이제 통계물리학은 물리학과 공학 제반 분야는 물론, 사회적 현상에 대한 이해, 경제학,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의 frame을 제공할 수도 있는 범위로 확장되고 있다.

물론 9장에서 저자가 이렇게 장황한 통계물리학의 역사를 제대로 짚고 있는 것은 아니다. 통계물리학의 탄생에서 그가 주로 주목한 것은 엔트로피 개념인데, 열역학적 관점에서 정의되는 엔트로피는 단위가 있는 양이지만 (즉, 볼츠만 상수가 붙음으로 정의되는 열역학적 물리량), 열역학적 관점이 아니라면 볼츠만 상수 같은 인위적인 단위 체계는 붙을 필요가 없다. 저자가 실수를 보이는 부분은 카드를 섞는 경우의 수를 열역학적 상태라고 오해하여 이의 엔트로피를 볼츠만 상수를 붙여 부자연스러운 단위를 붙였다는 것이다. 이는 기초적인 실수로서 충분히 검토하고 감수하는 과정에서 고쳐졌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는 여전히 뉴턴 역학의 시간 대칭성과 볼츠만 통계물리학의 시간 비대칭성의 비합치에 골몰하는 듯한 뉘앙스를 9장 곳곳에서 보인다. 예를 들어,

‘그렇다면 시간의 화살이 오직 한 방향만을 가리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종종 무시되는 경향이 있는 무언가에 답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든다. 모든 사람이 법칙의 시간 ?역전 대칭성에 초점을 맞추지만 나는 초기 조건의 시간-역전 비대칭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라는 대목이 대표적인 부분이다. 저자의 생각은 시간의 방향이 바뀌면 초기 조건은 더 이상 초기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일견 타당한 지적으로 보인다. 뉴턴 역학의 결정론적 관점에서는 깨진 유리병이 시간을 역전하여 다시 완전한 유리병으로 되는 것이나, 원래의 유리병이 시간을 순행시켜 깨진 유리병이 되는 것 사이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 시간의 방향성이 존재하는 것은 시간을 순행시켜 원래의 유리병이 깨진 유리병이 되는 과정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기 위함이다. 만약 깨진 유리병이 원래의 유리병으로 완벽하게 붙을 수 있는 열역학 법칙이 있다면 시간의 역전은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이는 초기 조건의 설정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물론 저자가 인용하는 카를로 로벨리의 이야기 역시 저자의 믿음과는 달리, 이와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카를로 로벨리는 그의 저작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우리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에 놓여 있기 때문에 시간의 화살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엔트로피가 더 작아 보이기 때문에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생각한다. 즉, 원인과 결과가 바뀐 셈이다. 그런데 이는 초기 조건의 역방향성 혹은 비대칭성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카를로 로벨리의 이야기는 어느 시점에서든 시간의 화살이 존재하려면 엔트로피의 비대칭성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비대칭성을 따라가면 결국 초기 조건이 나와야 한다. 이에 대한 오해는 9장의 후반부에서도 계속된다. 물론 엔트로피의 개념을 단순히 무질서에 대한 개념으로 치환하는 것은 저자의 언급처럼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맥스웰의 도깨비, 그리고 정보이론에서 다루는 엔트로피를 충분히 언급하지 않은 채, 열역학적 관점에서의 엔트로피만으로 성급하게 9장을 마무리한 것은 상당히 아쉽고 찜찜한 부분이다. 9장이 좀 더 완벽해지려면 정보이론 관점에서 정보를 지우고 저장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며 이는 결국 정보 엔트로피 개념으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는 부분을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10장은 이제 저자가 1989년의 책에서 다뤘던 혼돈 이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저자도 잠깐 언급했듯, 혼돈 이론의 효시는 19세기 프랑스 수학자 푸엥카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푸엥카레-벤딕손 정리를 통해, 연속 시간 상에서의 2차원 동적 시스템은 혼돈 (chaos) 상태를 보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 참고로, 푸엥카레-벤딕손 정리는 이산 시간 상에서의 2차원 동적 시스템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즉, 이산 시간 상에서는 2차원 동적 시스템은 카오스를 보일 수 있다. 혼돈 이론의 특징은 시스템을 지배하는 방정식이 수학적으로 굉장히 단순하고 결정론적인 것처럼 보이는 반면, 그 방정식의 해는 아주 작은 파라미터 혹은 초기 조건 변동에도 크게 바뀔 수 있는 불확실성이 내재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지배 방정식에 비선형항이 포함될수록, 그러한 불확실성은 증폭될 수 있고, 이는 저자가 언급한 로렌츠 방정식에서도 잘 나타나는 부분이다.

로렌츠 방정식에서 얻는 결과물은 대중에게도 매우 잘 알려진 이른바 '이상한 끌개 (strange attractor)'이며, 이 끌개는 주어진 공간을 서로 겹치지 않는 궤도로 최대한 밀집하여 채워야 하는 특성을 만족한다. 이 특성은 어느 척도로 봐도 바뀌지 않으며, 덕분에 파생되는 혼돈계의 특성은 프랙탈, 즉, 자기닮음꼴이다. 이상한 끌개 같은 혼돈계는 미시적으로는 매우 불확실한 상태를 보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시적으로는 매우 안정된 궤도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혼돈 이론에 대한 보다 수학적인 접근은 위상기하학에 기반하여 랴푸노프 지수, 랴푸노프 시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 더 편하게 할 수 있다. 저자가 이 부분을 충분히 언급할 수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우리 태양계의 랴푸노프 시간을 언급했다면, 충분히 안정된 시스템이라고 여겨지는 뉴턴 역학계가 실제로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발산할 수 있음을 보일 수 있었다는 부분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또 한가지 아쉬운 부분은 혼돈 시스템과 프랙탈을 수학적으로 다루는데 있어, 저자가 이미 '측도 (measures)'라는 수적 개념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10장의 후반부에서는 이에 대한 설명을 거의 하고 있지 않다는 부분이다. 저자의 간략한 설명대로, 이상한 끌개의 경우, 끌개가 그리는 궤적의 영역, 그리고 그 영역 안에서 머무는 시간을 계산하여 끌개의 측도를 계산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측도가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여러 끌개에서 나타나는 측도가 그 시스템의 불확실성 혹은 장시간 불안정성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설명을 생략한 것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책의 범위 상, 측도까지 제대로 다루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왕 언급한 개념이었다면 최대한 쉽게, 그리고 실질적인 사례를 이용하여 비교하면서 예시를 보여 주었다면 독자들의 이해를 더 깊고 풍부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11장, 12장, 13장은 인간이 불확실성에 대처하여 실제로 이 과정에서 어떤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일종의 쉬어가기 페이지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11장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주제는 일기예보와 기후 위기다. 11장에서 저자는 몇 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짚고 넘어간다. 애초에 장기적 일기예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대표적인 포인트다. 저자에 따르면 관측이 아무리 정확하더라도 연장될 수 없는 '예측 지평선의 절대적 한계'가 존재하며, 로렌츠에 따르면 이 한계는 길어야 일주일 정도다. 즉, 수천 기의 인공위성을 지구 주변에 띄우고, 초 고해상도의 위성 이미지와 레이더 데이터를 조합한다고 해도, 그 초기 조건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예측의 지평선은 길어야 일주일이 한계라는 것이다. 물론 일주일 예보도 매우 훌륭한 수준이지만, 현실은 더욱 녹록치 않아서 단 하루 후의 일기도 제대로 예측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우리는 이미 매일의 경험으로부터 잘 알고 있다.

저자가 지적한 또 한 하지 중요한 포인트는 일기예보와 기후 예측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이다. 일기예보는 단시간, 그리고 좁은 영역에 대한 예보라면, 기후는 지구 전체, 그리고 장시간 평균을 낸 일기 정보의 총합이다. 일기는 얼마든지 매일 변동폭이 심해질 수 있고 예측 불확실성이 누적될 수 있지만, 기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차이점이다. 기후는 이미 앙상블 평균 (ensemble average)이 계산된 데이터이고, 따라서 기후 예측의 불확실성은 기후 자체가 일기보다 훨씬 큰 스케일임에도 불구하고 일기 예보의 불확실성보다 낮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저자가 지적한대로, 30년 이동 평균, 전 지구적 평균 기온 같은 앙상블 데이터에서마저 일상적인 변동 폭을 넘어, 예측의 범위를 넘어서는 변동 폭, 특히, 11장의 그림 20처럼 기온의 지속적인 상승이 관측된다면, 이는 정말 심각한 기후 위기의 증거라는 것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11장의 후반부는 바로 이러한 기후 위기가 우연이 아니며 지속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고, 과거의 기후 변동 확률 분포 자체가 이제는 더 위험한 수준 (예를 들어 그림 21)처럼 바뀌고 있음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논조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우리가 2020년 6-8월 두달여간 경험한 초유의 장기간 장마는 기후 위기의 서곡에 불과할지 모르며, 일기 예보의 불확실성은 아마도 장난스러운 애교로 느껴질 날이 조만간 닥쳐 올 것이라는 걱정을 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12장은 의료통계학 이야기다. 특히 12장에서 눈 여겨 봐야 할 부분은 p값이다. 그런데 저자는 p값을 설명하면서 다소 그에 대한 해석의 오류를 보이고 있다. 대개 사회과학이나 의학에서 활용되는 통계 이론 창시한 통계학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인 피셔가 창안 유의성 검정은 영가설 (귀무 가설, null hypothesis)의 유의성을 따지는 도구로 활용된다. 영가설은 특정 변수가 다른 변수에 대해 ‘효과가 없다’, 실험군과 대조군 간에 ‘차이가 없다’, 또는 두 변수 간에 ‘상관관계가 없다’ 등의 진술로 표현되는 가설이다. 연구자 입장에서 특정한 가설 (대립 가설)을 지지하고자 한다면, 1차적으로 해야 하는 작업은 바로 영가설을 ‘안전하게’ 기각할 수 있는지 여부일 것이다 (물론 영가설이 기각된다고 해서 대립 가설이 바로 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대립 가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피셔의 유의성 검정은 오로지 영가설이 유의한지 여부만 판단하며, 대립 가설에 대한 판단은 내릴 수 없다.).

영가설을 검증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으로 쓰이는 방법은 ‘유의 확률’ 혹은 이른바 ‘p값’이라는 지표의 계산이다. 이 값의 사전적인 정의는 ‘영가설 하에서 관측된 자료 이상으로 극단적인 자료가 관측될 확률’로서, 달리 표현하자면 연구 데이터가 영가설과 얼마나 불일치하는가를 나타내는 값으로, 0과 1 사이에 분포한다. p값이 작을수록 연구자가 얻은 데이터가 영가설을 반박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연구자 입장에서 만약 대립 가설을 지지하고자 한다면 우선적으로 바로 이 p값이 기준보다 낮게 나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문제는 많은 연구자들에게 이 p값이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여, 아무 근거도 없는 0.05를 기준으로 삼아, 0.05보다 작은 p값이 나오면, 영가설을 기각하는 것을 넘어, 자신이 세운 대립 가설이 옳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1에서 p값을 뺀 값 자체를 대립 가설이 맞을 확률로 착각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p = 0.03이 나왔고, 그것을 대립 가설이 맞을 확률 97%로 해석하는 격이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통계적으로 전혀 올바르지 않다. 문제는 수학자인 저자도 비슷한 해석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피셔가 창안한 유의성 검정 방법이 대립되는 두 가설의 비교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위에서 설명했듯, 이른 애초에 피셔가 의도한 유의성 검정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피셔의 유의성 검정은 영가설을 기각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방법론이고, 특정한 가설이나 대립되는 두 가설 중 하나를 선택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네이먼과 피어슨이 개발한 가설 검정 (hypothesis testing)을 쓰는 것이 더 맞다. 저자는 또한 p값을 영가설을 가정하고 주어진 데이터를 얻을 확률이라고 서술하고 는데, 이 역시 잘못된 서술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p값은 엄밀한 의미로 따진다면, ‘영가설 하에서 관측된 자료 이상으로 극단적인 자료가 관측될 확률’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영가설이 말하는 사건이 일어날 확률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모든 수학자가 통계학에 정통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으나, 기본적인 통계학 개념을 혼동하고 이것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입장에서라면 저자는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이 책의 12장을 집필했어야 했다. 저자가 실수를 저지르는 대목은 또 있다. 신뢰 구간을 신뢰 수준과 혼동하는 대목이 바로 그렇다. 저자에 따르면 신뢰 구간은 연구 결과의 신뢰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신뢰 구간이란 데이터의 확실성 (혹은 데이터가 얼마나 일관성을 갖는지)을 나타내는 통계적 장치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12장의 후반부에서 앞서 소개했던 베이즈 정리를 이용한 보다 개선된 통계학 적용의 사례를 소개한다. 이 부분은 독자들에게 좋은 통찰력을 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로지스틱 회귀, 부트스트랩 기법, 민감도 분석 같은 통계적 도구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간다. 다만, 12장 역시 이러한 이야기들이 나오다가 급하게 마무리되는 감이 없잖아 있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개발된 새로운 통계적 도구들이 늘상 데이터의 불확실성, 판단의 오류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임상 의학, 생물학 연구에서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를 조금 더 상세하게 알고 싶어할 것이다. 몇몇 사례를 예시로 들고 있지만, 포괄적인 개념을 얻거나, 종합적인 시각을 보여 주기에는 다소 역부족으로 보인다.

13장 역시 데이터 과학과 통계학이 실 생활에 적용되는 사례에 대한 내용이다. 13장에서 다루는 내용은 금융과 경제다. 다양한 수학적 방법론이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어떻게 이식되었는지에 대한 역사를 훑어보는 것으로 13장이 시작된다. 물론 그 역사에 대한 서술은 고전 경제학의 바탕을 이루게 된 수리적 모형들의 정교함에 비해, 경제학의 실상은 실험 근거가 없는 과학이었다는 것까지 포함단다. 이러한 맥락 서술은 균형 잡힌 서술이며, 경제학이 단순히 수학적 모형에만 치중하는 학문일 수는 없다는 특성을 잘 이끌어내어 다음 절로 이어 주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그 다음 절은 주식과 채권 같은 금융 상품, 지표가 예측 가능한가 여부에 대한 것이다. 비슐리외의 확률론적 모형 (stochastic model)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유명한 블랙-숄즈 옵션 가격 결정 방정식까지 논의가 이어진다. 물론 이들 모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상당 부분 생략되어 있다. 관심 있는 독자들을 위해 대랴적인 형태와 그 의미만이라도 한 번 짚고 넘어 갔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저자는 블랙-숄즈 방정식에 내포된 헛점을 짚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는 사실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시장은 블랙-숄즈가 모형화한 방정식대로만 움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주된 이유는 블랙-숄즈 방정식에서 가정하고 있는 수학적 가정이 현실과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블랙-숄즈 방정식에서 활용되는 확산 과정 (diffusion process)가 반드시 정규 분포를 따를 필요는 없다는 것에 기인한다. 우리는 이미 특정한 모형에 대한 과도한 의존, 그리고 그로부터 증폭된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 지난 2008년 세계금융위기 사태에서 뼈저리게 배운 바 있다.

블랙-숄즈 방정식 같은 수리적 모형에 대한 대안으로서 저자는 13장의 후반부에 행위자 기반 모형에 기반한 수리 경제학을 소개한다. 이는 통계물리학에서 다루는 몬테카를로 기법이나 분자동역학 기법과 원리 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분자나 원자 대신, 사람이나 기관, 기업을 플레이어로 가정하고, 이들의 상호 작용을 특정한 수학적 방정식으로 표현하는 것만 제외하면 큰 틀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추가되는 것은 이들 상호작용이 실제로 예상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에러가 생길 가능성도 같이 고려한다는 것이다. 분자와 분자의 상호작용은 어떤 분자를 선택해도 같은 분자라면 항상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관의 상호작용은 그렇지 않다. 개인별 편차가 있을 뿐더라, 같은 사람과 같은 기관이라고 해도 언제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그 상호작용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상호작용 범위의 확대는 상호작용 파라미터의 확률 분포를 도입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고, 이를 위해 매번 상호작용을 고려할 때 확률 분포를 고려하여 특정한 상호작용 값을 채택하여 시뮬레이션에 활용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구체적인 내용을 전부 설명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결정론적 수학 방정식에 비해 행위자 모형이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행위자 모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도 수두룩하다. 이러한 한계에 대한 설명, 특징에 대한 서술이 추가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다른 대안은 네트워크 과학에 기반한 모형들이다. 특히 현대의 금융기관들이 서로 대출이나 지급 보증 관계로 긴밀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고, 따라서 네트워크의 한 노드를 차지하는 특정한 금융 기관이 금융 위기에 빠졌을 때, 네트워크 전체가 불안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렇게 네트워크 과학을 틀로 삼아 금융 시스템을 이해하고자 하는 접근은 점점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다. 저자는 실제로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한 네트워크 안정성 분석 연구 사례를 소개하고 있으며, 이를 생태학적 모형이라고 일컫고 있다. 다만 네트워크 과학이 실제로 무엇인지, 기존의 확률론적 접근과 무엇이 다른지, 노드와 노드 간 정보의 흐름은 어떻게 모형화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서술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은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러한 개념들에 대해 생소할 것이며, 개념이 이렇다 저렇다는 서술 후, 갑자기 특정한 연구 사례에서 이러한 도구들이 활용되었다고 내용이 이어진다면 징검다리에서 돌 몇 개가 빠진 것 같은 기분을 느낄 것이다. 교양 수학서로 이 책을 볼 때 다소 아쉬운 부분이 계속되고 있다.

14장에서 저자는 다시 베이지안 철학으로 돌아 온다. 앞서 언급했듯, 베이지한 철학은 전통적인 빈도주의 철학을 대체하는 통계학적, 확률론적 방법론으로 점점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급기야는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일부 심리학자, 행동과학자, 인공지능연구자들은 인간의 뇌가 베이지안 결정 기계 (Bayesian decision machine)이라고까지 가정하고 있다. 인간의 인지 능력을 베이지안 기계로 가정할 경우, 여러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왜 인간은 사이비에 잘 빠지는가, 왜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왜 인간은 믿음을 갖는가 등에 대해 베이지안 해석을 곁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인공 지능 분야에서는 헬름홀츠 기계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계론적 관점에서부터 베이지안 철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심층 학습 (deep learning)의 효시는 바로 이러한 헬름홀츠 기계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인공지능의 메커니즘 속에 베이지안 철학이 담겨 있다고 해서, 인공지능이 반드시 인간의 뇌에 수렴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조심스레 지적한다.

저자는 신경과학까지 언급하며 베이지안 철학이 어떻게 의사 결정 과정 모형화에 활용될 수 있는지 설명한다. 그가 소개하고 있는 개념은 '윌슨 네트워크 (Wilson network)'라는 것으로, 이 네트워크는 뇌의 고급 의사 결정에 대한 모형이다. 일종의 퍼셉트론 네트워크 (perceptron network)로도 볼 수 있다. 윌슨 네트워크는 인간이 시각 신호를 처리하는 과정도 모형화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인간의 시각 정보가 어떻게 인지 정보로 패턴 인식 되는지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적어도 다층 구조를 가정하여 raw data가 information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윌슨 네트워크로 처리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각 노드 간의 가중치는 베이지안 접근 방식에 의거하여 계속 업데이트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윌슨 네트워크는 그 단순성에 비해 풍부하고 깊은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로워 보이는 대목이다.

저자는 14장의 후반부에서 베이지안 뇌의 특징 중 하나가 믿음에 조종당할 수 있다는 것임을 설명한다. 이 때문에 인간은 자주 가까 뉴스에 속는 것이고, 이는 인간의 뇌가 내재된 믿음에 기초하여 작동하는 베이지안 머신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인간의 뇌가 정말 베이지안 뇌로 진화해 왔다면, 그것은 인류가 탄생한 초창기에는 수집할 수 있는 정보의 종류가 제한적이고 비교적 반복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저자가 이야기하는대로, 현대 시대처럼 매일 같이 새로운 뉴스가 발생하고, 그 중 어떤 것이 진짜고 가짜인지 가려내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시대로 진입한다면, 우리의 베이지안 뇌는 이러한 정보의 필터링에 오히려 적합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것이 사실일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으며, 우리의 뇌가 베이지안 뇌라고 해도 반드시 믿음에 편향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다소 서두르며 14장을 마무리한 저자는 15장부터 갑자기 새로운 국면의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 선다.

1927년 10월, 벨기에 브뤼쉘에서 열린 제 5차 솔베이 회의 (Conseil Solvay)에서 독일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그 회의의 중심 주제였던 양자역학, 특히 그 큰 축을 차지하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God does not play dice.)’ 라는 유명한 발언을 했다. 이 책패러디하고 있는 발언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은 그 자신이 고전 물리학을 혁파한 20세기의 두 축 중 하나인 상대성이론의 창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 축이었던 양자역학은 있는 그대로 온전히 인정할 수 없었다. 특히 아인슈타인이 불만을 가졌던 부분은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확률론적 해석’의 문제였다. 아인슈타인은 ‘물리적 실재’는 관측과 상관 없이 존재해야 함을 역설했으며, 이는 관측자의 행위가 물리적 실재의 ‘확률’을 결정한다는 코펜하겐 해석에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었다.

1935년, 나치 독일의 압박을 피해 미국 뉴저지 프린스턴에 위치한 고등과학원 (IAS)으로 옮긴 아인슈타인은 그간 그가 고민해 오던 문제를 논문으로 정리하여 발표한다. 젊은 물리학자 보리스 포돌스키, 네이선 로젠과 함께 피지컬 리뷰 (Physical Review)지에 발표한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적 기술이 완전하다고 여길 수 있는가?’라는 다소 철학적인 제하의 4페이지짜리 논문에서, 아인슈타인과 다른 두 물리학자 (세 사람의 성의 머릿글자만 줄여서 EPR로 부른다.)는 양자역학만으로는 물리적 실재를 완전하게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 유명한 논문에서 EPR은 사고 실험을 한 가지를 제안했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듯, 얽혀 있는 두 입자가 있고, 이 입자들이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각 전자 (a와 b 전자라고 하자)의 스핀 (spin) 상태를 x와 z라는 두 축에서 측정하는 실험을 생각해 본 것이다. 먼저 a 전자의 스핀을 z축에서 측정하여 +라는 상태를 확인했다면, (어떤 보존 법칙 때문에) 얽혀 있는 b 전자의 z축 스핀은 자동적으로 ?이 된다. 만약 a 전자의 스핀을 x축에서 측정하여 ?라는 상태를 확인했다면, 얽혀 있는 b 전자의 x축 스핀은 역시 +가 된다. 여기서 나오는 문제는 만약 양자역학이 물리적 실재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라면,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모순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르면, x축 스핀과 z축 스핀을 동시에 확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b전자의 각 축의 스핀은 물리적 실재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양자역학은 물리적 실재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적어도 불확정성 원리는 그 자체로 성립할 수 있는 양자역학 원리가 아니며, 성립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불확정성 원리에서 나오는 확률적 ‘에러’를 만들어 내기 위한 일종의 '난수 발생기'이며, 이 난수 발생기를 '숨은 변수'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런 접근법을 ‘국소적 숨은 변수이론’이라고 부른다). 만약 숨은 변수이론을 제척한다면, 다른 옵션도 있다. 즉, a전자의 스핀을 어떤 축에서 측정하든, 그 영향이 아주 멀리 떨어진 b전자의 스핀 상태에 '즉각적으로' 반영된다는 이론인데, 여기서 ‘즉각적’이란 말그대로 순식간에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용을 의미한다. 에를 들어 a와 b전자가 1 광년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a전자 스핀의 측정은 b전자 상태를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옵션은 ‘비국소성 (non-locality)’라고 부른다. 문제는 아인슈타인은 이 옵션도 반대했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자신이 제창한 특수상대성에 있다. 특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그 어떤 물리적 신호나 대상도 빛보다 빠르게 전달될 수 없으며, 그것은 정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즉, 원거리에서 ‘순식간에, 즉, 빛보다 빠르게!’ 이루어지는 작용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EPR의 주장을 정리한 내용을 EPR 역설 (EPR paradox)라고 부른다. 물리적 실재와 파동함수에 기반한 양쟈역학의 해석 (더 정확하게는 코펜하겐 해석)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EPR 역설의 골자다. EPR 역설 논문이 세상에 나온 후, 양자역학 진영은 이에 대한 문제 해결에 골몰했지만 딱히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29년이 흐른 1964년, 영국의 물리학자 존 스튜어트 벨은 미국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 여유를 이용하여 EPR 역설에 주목하였고, 과연 이 역설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에 천착하였다. 스스로 양자 물리학자였지만, 벨은 양자역학은 잠시 뒤로 제쳐두고, 아인슈타인이 좋아했을 법한 접근법을 먼저 취한다 (실제로 그는 EPR 역설에 대해 처음에는 호의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것은 양자역학이 아닌 고전 역학에 기반을 둔 물리적 실재의 확률 분포 만으로 이들의 상태값 불확정성을 계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접근법이었다. 즉, 예를 들어 사람의 키를 적당한 측정 도구로 여러 번 재면 잴 때마다 조금씩 측정치가 차이가 날 것이고, 아마 그 값은 평균값을 중심으로 정규분포를 그리게 될 것이다. 물론 측정 도구가 점점 정밀해질수록, 그 정규분포 곡선은 점점 델타 함수처럼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상적으로 완벽한 측정 도구가 아닌 이상, 어떤 실재적인 측정 도구든, 확률 분포를 만들어 낼 수 밖에 없으며, 이는 대부분 고전 물리학에서 받아 들이는 분포에 해당한다.

벨 역시 양자역학의 고유 물리량으로 간주되던 전자의 스핀을 모델 삼아, 고전 역학의 확률 분포를 가정하여 이들의 상태가 달라질 확률을 계산했다. 양자역학의 도움이 필요 없다면, 스핀 같은 물리적 실재의 분포를 인과적으로 결정짓는 어떤 '숨은 변수'가 있을 것이며, 다만 이 변수는 숨어 있으므로, 겉으로 나타나는 실제 측정된 상태는 확률 분포를 갖는다고 가정했다. 전자의 스핀은 3차원 공간에서 어떤 방향으로든 측정될 수 있는데, 이 때 세 가지 임의의 축에 대해 측정한 스핀의 상태가 다르게 나올 확률을 계산하고, 그 중 두 축의 상태가 다를 확률이, 나머지 한 축이 관여하는 각각의 축의 상태가 다를 확률의 합보다 작거나 같다는 것이 벨이 고전 역학의 확률 분포만으로 유도한 관계식이었다. 조금 더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른바 '숨은 변수 이론'으로 대표되는 고전 통계물리학적인 확률 이론에서는 어떤 상태든, 중첩된 그렇지만 독립된 상태라면, 이들의 확률 분포는 고전 물리학에서 허용하는 선형합의 한계를 넘으면 안 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주목할 부분은 벨의 부등식은 어떤 특정한 형태의 확률 분포를 가정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즉, 꼭 정규분포여야 할 이유가 없다), 숨은 변수가 작동한다는 가정만 만족된다면 일반적으로 성립해야 하는 지극히 수학적인 관계식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관건은 양자역학, 즉, 파동함수로 전자의 스핀을 정의할 수 있는 수학적 체계가 이 부등식을 만족할지 여부였다. 결과적으로 벨은 양자역학의 확률 분포는 자신이 발견한 고전 물리학의 확률 분포 부등식을, 즉, 숨은 변수 이론을 만족하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그는 간단한 계산을 이용하여, 두 전자의 3축 스핀 상태가 달라질 확률을 계산한 후, 세 축이 특정한 각도를 이루는 경우, 특정한 두 축의 상태가 다를 확률이, 나머지 한 축이 관여하는 각각의 축의 상태가 다를 확률의 합보다 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즉, 양자역학의 확률 해석은 벨의 부등식을 명백하게 위반한다! 이것이 1964년 벨이 발표한 연구 결과의 핵심이었다.

양자역학이 벨의 부등식을 명백하게 위반한다는 사실은 둘 중 하나를 의미한다. 양자역학은 고전 물리학에서 정의된 물리적 실재를 설명하기에 불완전한 체계이거나, 아니면 고전 물리학은 물리적 실재를 정의하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 적어도 숨은 변수 이론에 의존하는 고전 물리학은 통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를 검증하려는 실험적 시도는 이후 꾸준히 있었다. 1969년 미국 물리학자 존 클로저, 그리고 1982년 프랑스 물리학자 알랭 아스페 등에 의해 실험적으로 양자역학이 실제로 벨의 부등식을 만족하지 않으며, 그것은 양자역학의 불완정성이 아닌, 고전 물리학의 숨은 변수 이론 (적어도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이 폐기되어야 함을 증명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 검증 실험은 더 큰 스케일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하며, '비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이 아직 완전히 반증된 것도 아니라는 시각 역시 존재하기 때문에, 양자역학이 과연 물리적 실재를 100% 다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실재적 해석 논란에서 시작한 양자역학의 사고 실험은 곧바로 실증화될 수 있음이 벨의 부등식 실험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실험물리학자들은 재빠르게 이에 주목했으며, 이를 이용하여 놀라운 기술을 개발할 수도 있음을 알아냈다. 그것은 바로 '양자얽힘 (quantum entanglement)'을 이용한 정보 이동, 즉, '양자 통신'이다. 다만 양자 통신은 송신기에서 수신기로 전자기파를 보내는 것처럼, 신호를 직접적으로 보낸다는 의미에서의 통신과는 궤가 좀 다르다. 대신 중첩된 상태를 한 쪽은 송신 측에, 나머지 한 쪽은 수신 측에 배치하여, 송신 측에서 상태 한 쪽을 건드리면 (즉, 상태를 하나로 붕괴시키면), 수신 측의 짝은 자동적으로, 그리고 순간적으로 상태가 결정되는 양자얽힘 원리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정말 가능할까에 대하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이었지만, 21세기에 들어와 중국은 수백 km 거리 떨어져 있는 육상 기지국 간의 양자얽힘에 의한 통신이 가능함을 증명했으며, 최근 2017년에는 저궤도 위성과 육상 기지국 사이의 양자얽힘에 의한 통신이 가능함을 증명했다. 여전히 그 효율이나 정밀도 문제가 남아있지만, 이제 기술적으로 전혀 불가능하지 않음은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 2020년 2월, MIT Tech Review에 따르면 이제는 도시 간 스케일의 양자 얽힘 (quantum entanglement)에 의한 보안성이 거의 완벽한 초고속 광통신 기술이 원리적으로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먼 미래가 되면 이제는 도시 간 양자 통신을 넘어, 행성 간 양자 통신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양자역학, 나아가 양자역학에 기반을 둔 상상 속에서나 나올 법한 기술은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의 현실 속으로 들어 오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양자역학에 대한 논의를 책의 후반부인 15장부터 본격적으로 이어 간다. 태생적으로 양자역학은 그 수학적 틀이 파동함수로 직조되어 있으며, 수리물리학자 막스 보른 (Max Born)의 해석에 따라, 이 파동함수의 절대값의 제곱이 파동함수로 표현되는 물리적 상태의 존재 확률과 연결된다는 특성 때문에,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을 내재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양자역학의 태생적 불확실성에 주목하여 양자역학의 개략적인 발달사를 짚어 나간다. 수학자인 저자가 양자역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일 수 있었던 연유는 아마도 양자역학의 확률론적인 특성을 캐치해 낸 저자의 이해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저자의 이해는 몇몇 양자역학의 특성에 대해서는 제한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EPR 역설 같은 문제에서 ‘EPR 역설로 드러난 효과가 사실’이라고 이야기하는 대목, ‘숨은 변수 이론’을 두 입자의 동기화 메커니즘으로 오해한 대목, ‘양자 상태가 대단히 정확하여 전자의 질량은 소수점 아래 여러 자리까지 일치한다’는 대목 등은 물리학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양자역학을 확률론이라는 피상적 틀로만 이해한 저자의 제한된 인식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피상적 이해는 이후에 이어지는 16장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저자는 계속 EPR 역설에 천착하는데, 그 중에서도

‘만약 양자역학이 맞아서, 숨은 변수 이론이 폐기되는 것이 정당하다면, 양자역학을 작동하게 하는 진짜 신의 주사위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매달리며 자신의 논지를 전개해 나간다. 양자 불확실성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는 저자의 지적처럼 여전히 오리무중이며 많은 연구가 이뤄지는 분야다. 그렇지만, 양자적인 사건들이 확률 분포를 따른다고 해서, 그 배경에 모종의 주사위가 있다고 추측하는 것은 무리다. 저자가 언급한 방사성 동위 원소의 반감기를 지배하는 법칙은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며, 양자장론, 입자물리학, 그리고 표준모형이라는 현대 물리학의 총아로부터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험적으로 훌륭하게 설명될 수 있다. 이는 우연과는 거리가 멀며, 따라서 양자 역학이 작동하는 방식이 순전히 우연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특히 저자는 16장 초반에 벨의 부등식,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실험 결과가 모든 숨은 변수 이론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이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듯, 벨의 부등식과 이후 이어진 실험들은 양자역학의 손을 들어주는 셈이었지만, 그로 인해 제거된 것은 (혹은 제거된 것에 가까운 것은),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일 뿐이다. 아직 '비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을 확실하게 제거할 수 있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으며, 포퍼의 반증 가능성 원리에 입각하여, 숨은 변수 이론은 실험적으로 명확하게 반증될 때까지 양자역학에 대항할 수 있는 후보 이론으로 남을 수 있다.

저자가 한 가지 우를 범하는 부분은 또 있다.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을 제거한 자리에 다른 기존의 불확실성에 관련된 이론, 즉, 혼돈 이론이 들어올 수도 있다는 부분이다. 물론 저자 역시 이는 힌트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지만, 혼돈 이론이 설사 양자 이론보다 먼저 정립되었다고 해도, 혼돈 이론이 숨은 변수 이론을 확실하게 대체할 수 있다는 보장은 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혼돈 이론은 비선형 미분방정식으로 기술 될 수 있는 동역학 시스템의 상태 변동에 대한 이론이며, 비록 미분방정식 자체가 수학적으로 결정론적 프레임에 가깝다고 해도, 그 결과물은 확률론적 불확실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일부 수학자들은 실제로 양자역학의 불확실성, 확률론적 생리의 근저에는 이러한 비선형성에 기반을 둔 카오스 이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명확히 지지하는 뉘앙스를 보이지는 않지만, 저자는 동료 수학자인 로저 펜로즈의 양자 역학에 대한 수학적 해석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펜로즈의 지적처럼, 현재의 양자역학은 이해하기에 너무 기묘하기 때문에,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이론에 심각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더욱, 그 보완이 오로지 수학적 장치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수가 될 것이다.

저자가 16장에서 내내 천착하는 것은 양자역학의 불확실성 내면에는 고전 물리학, 특히 비선형 동역학에서 비롯된 특정한 메커니즘이 숨은 변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저자는 팀 파머라는 기상학자의 이론을 에시로 들고 있다. 파머의 이론에 따르면 동역학 시스템의 거동이 충분히 불안정하다면, 벨 부등식이 통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즉, 동역학 시스템이 숨은 변수로서 잘 작동한다면, 양자역학적 물리적 실재도 벨의 부등식을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스핀 +1/2, -1/2이 끌개로 작동하는 카오스 시스템을 예로 든다. 그 과정에서 주어진 초기 조건으로부터 두 값 중 하나로 진화한다고 이야기한다. 훈련 받은 물리학자라면 이 대목에서 이상함을 느낄 것이다. 비선형 동역학 시스템은 대개 독립변수와 종속변수가 모두 연속 공간에 있다. 즉, 스핀을 예로 든다면 -1/2, 1/2 뿐만 아니라, -0.1289, 0.3425 같은 아무 실수나 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핀은 그렇지 않다. 스핀은 양자수 (quantum number)를 따르며 단위가 1/2인 불연속 상태다. 즉 -0.1289에서 시작하여 -1/2로 수렴해 갈 수도 없고, 0.3425에서 시작하여 1/2로 수렴할 수도 없다. 이상한 끌개가 숨어 있는 변수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연속 공간에서 정의되는 양자역학적 물리 실재를 가져와야 한다. 그런데 연속 공간에서 정의되는 양자역학적 물리 실재는 굳이 양자역학의 프레임이 없어도 고전 물리학만으로 설명될 수 있다. 고전 물리학적 실재를 고전 물리학적 이론인 카오스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합당한 일이며, 새로운 이론이 아니다.

파머의 이론에서 더더욱 이상한 부분은 파동 함수의 붕괴 요인으로서 중력을 가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양자 중력 이론 (quantum gravity)를 의도하는 저자의 시도였는지는 불분명하나, 아마도 단순하게 중력을 비선형 항으로 도입하려는 의도 이상으로는 해석하기 어렵다고 보았을 때, 이는 사실상 아무말대잔치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양자역학까지 갈 것 없이, 고전 물리학에서는 비선형 포텐셜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물리적 실체가 얼마든지 있으며, 특히 양자역학적 스케일에서 작용하는 비선형 항들은 수십-수백 가지나 예시로 들 수 있다. 그것이 반드시 중력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저자는 파머의 이론 외에도 벨의 부등식의 헛점을 발견하기 위해 스스로의 논지를 하나 더 펼친다. 그것은 고전 물리학의 확률 분포가 애초에 없다고 가정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물론 벨 부등식에서 이야기하는 물리적 실재가 확률 분포 없이 합리적 측도 (measures)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무리한 지적이다. 애초 벨의 부등식, 그리고 그에 앞서 아인슈타인 등이 고민했던 부분은 관측이 가능한 물리적 실재이며, 관측 가능성은 필히 관측 도구, 관측 과정, 해석 과정에서의 확률 분포를 불러 온다. 그 어떤 이상적인 환경에서도 이 과정에서의 에러 누적은 피할 수 없으며, 그 에러 분포가 어떤 함수 형태를 갖든, 확률 분포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더욱, 저자가 받아들이고 있는 비선형 동역학의 혼돈 메커니즘이 숨어 있는 변수가 되는 시나리오에서는, 이러한 확률 분포를 더욱 무시하기 어렵다. 당연히 EPR 사고 실험에서 세 가지 독립된 상태의 확률 분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벨의 부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한 확률 공간을 애초에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기계적인 동어반복일 뿐이다.

저자는 로저 펜로즈의 접근법을 다시 들고 나온다. 아마도 로저 펜로즈의 관련 분야 저서인 ‘황제의 새마음’과 ‘실체에 이르는 길’을 많이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로저 펜로즈는 모든 물리학자들의 꿈인 대통일이론, 즉, 중력 이론과 표준모형의 통일에 접근하는 방식을 기존의 물리학자들과는 정 반대로 취했다. 펜로즈가 취한 방식은 중력을 표준 모형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중력 이론은 놔두고, 양자역학에 기초를 둔 표준 모형을 뜯어 고치려는 시도였다. 물론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시도가 결국 실패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이는 스케일의 문제, 측정의 문제, 수학적 연스러움의 문제, 대칭의 문제, 그리고 보존의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펜로즈의 접근이 점점 미궁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빅뱅 '이전'의 상태를 정의하려는 것에 있다. 우주의 수 많은 존재들이 탄생했다는 것 자체가 각 파동 함수가 붕괴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러한 붕괴는 누군가 우주 밖의 존재가 이들을 관측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며,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인류라는 오류가 나온다고 펜로즈는 주장한다.

당연히 이는 오류의 순환일 뿐이다. 빅뱅은 그 자체의 이벤트이며, 그 이전의 이벤트나 상태를 논하는 것은 형용모순이다. 빅뱅 이후 현재까지의 우주 역사를 현대 물리학이 빈틈없이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빅뱅 순간의 양자 요동 (quantum fluctuation), 그리고 전자기력, 강력, 약력의 분리와 더불어 탄생한 최초의 빛, 그리고 그 이후의 우주배경복사 불균일성과 그로 인한 원소의 형성, 초신성의 폭발로 인한 철보다 무거운 원소의 탄생과, 중력에 의한 은하단, 은하계, 행성계, 항성, 행성의 형성은 굉장히 잘 수립된 모형이며, 많은 수정과 보강을 거쳐 지금까지 인류가 우주를 이해하는 최전선의 이론으로서 작동하고 있는 표준 우주론이 되었다. 그 표준 우주론의 양대 축은 바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다. 특히 별의 진화, 우주 초기의 우주 진화를 이야기 때 양자역학 (더 정확히는 표준 모형)을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저자가 양자역학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성, 그리고 그 실재를 들여다 보지 않으려 한다는 비판적 뉘앙스를 표현하기 위해 자주 언급하고 있는 표어는 ‘닥치고 계산이나 해! (Shut up and calculate!)’다. 물론 양자역학, 나아가 표준 모형이 정교해지면서 이 모형에 의거한 다양한 물리적 실재에 대한 계산은 많이 이루어졌었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60년 전에 예측된 힉스 보존 입자가 거의 반세기 넘어서 실험적으로 관측된 것도 좋은 사례 중 하나다. 물리학자들이 표준 모형을 믿고 그로부터 다양한 물성을 계산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와 동시에, 그 계산이 가능한 연유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이론물리학자들도 많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여전히 표준 모형은 LHC 같은 대형 실험 시설에서 다양한 실험을 통해 테스트되고 있으며, 오히려 표준 모형이 틀렸다는 증거를 명확하게 보여 줄 실험 데이터를 기다리는 물리학자들이 그렇지 않은 물리학자들보다 더 많은 것임은 확실하다. (불행히도? 아직까지 표준 모형을 수정해야 하거나 폐기해야 할 정도로 강력한 실험적인 증거가 나오지는 않았다.)

양자역학의 해석이 코펜하겐 해석 하나만 있다고 단정짓는 것도 위험하다. 저자는 주로 코펜하겐 해석에 대한 헛점을 발견하여 여러 논지를 수용하고 소개하며, 가끔 자신의 수학적 논지를 맥락 앞뒤 구분하지 않은 채 끌고 오고 있지만, 정작 물리학계에서 그러한 시도를 했었던 유명한 사례는 언급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누락된 사례는 휴 에버렛 3세의 이른바 다세계 해석이다. 이 해석에서는 코펜하겐 해석처럼 관측에 의해 파동 함수가 붕괴된다는 추측대신, 관측 순간 우주가 여러 조각으로 분기한다는 해석을 택한다. 이 해석에서는 ‘측정’ 결과라는 개념은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측정된 결과는 가능한 모든 상태로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관측자를 시스템 바깥의 존재로 인정하는 것인데, 다세계 해석에서는 관측자의 존재마저도 양자 상태의 일부로 본다.

여전히 다세계 해석에 대한 논란은 이어지고 있지만, 적어도 이 해석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최근 개봉한 SF 영화나 수퍼히어로 영화, 드라마 시리즈에서도 평행 우주, 다세계 우주는 자주 흥미로운 장치로 활용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측정’의 자의성, 주관성 시비에서 해방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코펜하겐 해석이 이제 물경 한 세기가 다 된 고루한 해석이라면, 다세계 해석은 아직은 창창하여 신선도가 유지되는 셈이다. 그외 수학적 우주로서의 해석, 정보이론에 입각한 해석, 심지어는 한국 물리학자 장회익 등이 중심이 된 서울 해석 같은 다양한 양자역학의 해석이 있으며, 어떤 해석이든 확실한 대답을 제공해 주지는 못 하고, 다만 어느 단계부터는 인식론, 존재론 같은 과학철학의 문제로 환원되기 때문에, 하드 사이언스의 역할은 한계가 있다.

이 책에서 특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수학자인 저자가 물리학의 최첨단, 특히 양자역학에 대한 부분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잘못된 오해, 오래되어 배격된 논제들, 업데이트된 이론들에 대한 소개가 부족했다는 것이고, 이는 애초에 저자가 관련 분야의 연구를 깊게 할 수 없었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납득이 되면서도 다소 안타까운 부분이다. 저자의 논지에 유리한 특정 사례를 선택 편향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이는 이 분야를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는 내용으로 읽힐 가능성이 높다. 특히, 현재의 양자역학 혹은 그에 입각한 표준모형은 불완전하며, 로저 펜로즈가 제창한 이론 같은 새로운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가려서 들어야 하며, 이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병술되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양자역학에 대한 지난한 저자의 해석을 넘으면 이제 기다리고 있는 것은 17, 18장 두 장 뿐이다. 17장에서는 저자가 이 불확실성을 어떻게 이왕이면 유용한 방향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인지를 논한다. 먼저 소개하는 내용은 이른바 확률론적 컴퓨터 시뮬레이션 (stochastic computer simulation)의 시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몬테카를로 (Monte Carlo) 기법이다. 저자가 몬테카를로 기법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매 스텝마다 활용되는 난수 (random number), 그리고 난수의 발생 원리다. 통계물리학자들 혹은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기법은 이른바 주사위 던지기를 무한번 하여 주어진 문제의 근사해를 찾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주율을 계산하고 싶으면 가로-세로 1m x 1m짜리 정사각형 표지판에 반지름 1 m짜리 원 하나를 그리고, 원숭이더러 수천 번 다트를 던져 원 안에 들어간 다트의 개수를 세고, 그것을 전체 다트의 개수로 나눈 값을 원주율이라고 하면 된다. 물론 이렇게 구한 값은 정확한 원주율 값은 아니지만, 다트를 던지는 횟수가 늘어나고, 원숭이가 다트를 던지는 것이 정말 마구잡이라면 그 비율은 점점 원주율에 근접한다. 여기서 볼 수 있다시피, 몬테카를로 기법의 핵심은 제대로 된 마구잡이 던지기, 즉, 제대로 된 난수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이다. 저자는 수학적 관점에서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한다. 특히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양자 난수 발생, 혹은 양자 암호 발생이다. 당연히 암호는 마구잡이일수록 그 보안성이 높아진다. 이 과정에서 양자역학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양자 암호 혹은 양자 난수 발생기로서의 역할이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는 내부에 적어도 국소적 숨은 변수 같은 결정론적 메커니즘이 없어야 함을 암시하고 있고 따라서, 결정론적 메커니즘은 도저히 만들 수 없는 난수를 양자역학적 메커니즘으로 만들 수 있음은 원리적으로 납득된다.

양자역학적으로 만들어 낸 고품질의 난수는 비단 암호 용도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고, 여러 방면으로 응용될 수 있는데, 저자가 예로 든 것은 바로 최적화,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활용되는 모의 담금질 (simulated annealing)이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가 제대로 언급하고 맥을 짚고 있는 점은 이 책의 훌륭한 부분 중 하나이다.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는 많은 경우 주어진 제한 조건과 경계 조건 하에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찾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역으로 생각하면, 이러한 과정을 수학적으로 모형화할 수 있고, 그 효용을 최대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값어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을 것이다. 불행히도 그렇게 딱 떨어지는 수학적 방정식을 얻는 경우는 드물며, 대부분 한치 앞도 모르는 상황을 손으로 겨우 더듬어서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씩 이동하며 시행착오를 반복할 뿐이다. 이 과정을 컴퓨터에서 모사한다면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움직일지를 미리 확정짓지 않은 채 무작위로 시행하는 것이 더 유리하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장치가 바로 무작위 걷기와 난수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실제로 복잡한 최적화 문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사례는 많다. 다만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그 범위까지 저자의 논의가 확장되지는 않았다. 대신 저자는 최적화의 다른 알고리듬으로서, 유전 알고리듬을 잠깐 소개하고 있다.

이후 갑자기 주제는 혼돈 시스템의 통제로 넘어 간다. 아마도 인간이 당면한 불확실성을 ‘이용’하거나 ‘제어’하는 두 가지 틀에 대해 나머지 한 꼭지를 혼돈의 제어에 할당할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소개하는 혼돈의 제어 연구는 이른바 혼돈 이론에서 나오는 끌개 궤도에 대한 인위적 제어, 그리고 심박 조율기의 전기 자극이 내포하고 있는 불규칙성 제어를 위한 혼돈 이론의 응용이다. 혼돈 이론을 충분히 알지 못 하는 독자들에게는 혼돈 이론에 대한 수학적 이해가 실제로 어떻게 시스템 불규칙성을 제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조금이나마 정보를 보여 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마지막에 언급한 인공위성의 라그랑주 포인트 (Lagrange point)에 대한 내용은 다소 핀트에 어긋나는 내용처럼 보인다. 애초에 지구 근처의 라그랑주 포인트는 굳이 카오스 이론을 가져오지 않아도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이며, 혼돈 이론의 제어 이전부터 NASA 등의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은 이에 대한 제어 방법을 알고 있었다. 라그랑주 포인트가 혼돈 이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려면 지구-달-태양 같은 삼체보다는, 목성-에우로파-태양 같은 질량 밸런스가 훨씬 불안정한 시스템에서 언급되는 것이 맞다.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고 있으나, 혼돈 제어가 다소 맥락에 맞지 않게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 특히 이 접근 방식이 인류가 당면한 불확실성에 대한 역이용 전략으로 자주 포장되고 있는 것은 다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이다.

저자는 이제 마지막 장인 18장에서 책의 결론을 이끌어 낸다. 다소 광범위한 부분에 걸쳐 반쯤은 과학사, 반쯤은 불확실성을 마주한 현대 과학의 최전선을 훑어 보았던 저자의 결론은 18장의 첫페이지에서 다시 요약된다. 그것은 우리가 알려지지 않은 미지를 알려진 미지로 바꾸어 왔다는 것이다. 그가 인용한 前 미국 국방장관 도널드 럼즈펠드의 발언처럼, 인류가 이룩해 온 지식 문명의 진보는 우리가 모르고 있음을 아는 것, 그리고 우리가 모르고 있음을 모르는 것 사이의 경계선을 전진시키는 과정이었다. 우리가 모르고 있음을 아는 것이 어떻게 지식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지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아예 우리가 모르는 것조차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답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러한 질문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왜 광의의 지식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책 전체에서 느껴지는 아쉬움 중 하나는, 저자도 간파하였듯, 다양한 층위의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각각의 방법론, 그리고 그것의 의미를 자주 혼동하여 기술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원래의 의미가 오용되거나, 무리한 해석이 적용되어 특정 분야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혼동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미래의 과학이 다루게 될 문제가 불확실성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리고 인류가 이룩해 온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그 불확실성의 영역을 계속 잠식해 들어갈 것임도 충분히 예견되는 대목이다. 책의 결론이 이러한 예견이 왜 가능한가에 대한 저자의 비전으로 조금 더 점철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은 대략 44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이지만, 내용은 비교적 어렵지 않다. 물론 독자를 평균적인 고등학교 확률/통계 지식을 갖춘 사람으로 가정할 경우에 그렇다. 다만 후반부의 통계물리, 양자역학 관련한 부분은 대학에서 적어도 물리학 관련 전공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책의 전반부는 다소 평이하고 지루한 반면, 후반부는 흥미로우나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느낌이고, 읽을만한 부분이 나오면 갑자기 결론이 나버리는 허탈함도 자주 느껴진다. 일부 분야에 대해서는 저자의 치명적 실수가 곳곳에서 보이며, 양자역학의 해석 같은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저자가 물리학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해석을 끌고 들어 오는 모습이 연출된다. 이러한 부분은 해당 분야를 잘 모르는 는 학생이나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위험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반적인 번역은 잘 이루어졌으나, 곳곳에서 오역의 흔적이 보이며, 오타도 몇 군데 발견된다. 책의 흐름이 체계적이라기보다는 다소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는 구조여서 편집 과정에서의 아쉬움이 좀 보인다. 시간을 들여 교양 수준 강화 차원에서 읽을 수 있는 책임은 확실하지만, 들이는 시간에 비해 난이도 조절이나 배경 지식 유무에 의한 효용 편차는 불확실하다. 이 책이 애초에 불확실성을 다루고 있음을 감안하면 아이러니컬한 부분이다.

(번외편)

불완전성 혹은 무질서는 보통 안 좋은 의미로 쓰인다. 세상살이라는 것이 결국 대부분 불완전한 상태에서 완전을 추구하는 인생의 질곡, 무질서의 상태에서 질서를 추구하는 지난한 과정 끝에 정보의 완벽한 상실로 접어 드는 여로 아니겠는가. 당연히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불완전성 혹은 무질서가 만들어 내는 완전성 혹은 질서는 그 자체로 모순처럼 보인다. 디스플레이 패널에 있는 수백만-수천만 개의 픽셀 중 하나라도 데드 픽셀 (dead pixel)이 되면 민감한 사람의 눈에는 바로 보인다. 아무리 해상도가 좋고 최첨단 디스플레이 기술이 적용된 패널이라고 해도, 채 5 마이크로미터도 안 되는, 세포 만한 크기의 데드 픽셀 몇 개 때문에,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그것이 신경쓰여 제대로 작품에 집중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이렇듯, 99% 아니 99.9999% 완벽하더라도 0.00001%의 불완전함이 남아 있다면 완벽이라고 못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세상 대부분은 완벽, 완전, 질서, 최적이라는 상태가 되는 것이 그리 녹록지 않다. 설사 겨우 그러한 상태를 달성한다고 해도 대부분 (물리학적 맥락에서) 불안정하며, 다시 무질서, 불완전, 미완성의 단계로 전이되곤 한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 무질서, 불완전, 미완성의 단계로 '전이 (transition)'되는 것 자체가 자연의 특성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열역학 2법칙과 엔트로피 개념을 굳이 가져 오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 생활에서, 자신의 인생 속에서, 타인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속한 시스템을 관찰하면서 이러한 특성을 매일 같이 느낀다. 결국 애초에 이러한 특성 자체가 자연이라는 것을 받아 들이는 것이 오히려 완성, 완벽, 완전, 질서로 가는 궤도라는 사실, 그것이 아이러니컬한 진리처럼 다가 온다.

서평을 생각하면서 내 연구 주제의 한 축이기도 하고, 읽은 책의 한 주제이기도 한 무질서 혹은 불완전성에 대한 낡은 기억을 꺼내 봤다. 이 기억은 영화 '굿윌헌팅 (Good Will Hunting)'의 초반부에 나오는 두 남자의 대화 속에서 얻은 기억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윌 (멧 데이먼 분)이라는, 수학 천재이자 현실은 시궁창 같은 불우한 청년이고, 조연은 션 (로빈 윌리엄스 분)이라는 상담 심리학자이자 역시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 외로운 중년의 남자다. 둘 다 어딘가 공허하고 불완전하며 다소의 무질서 속에 살고 있는 상태이다. 윌은 그 와중에 어떤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꽂혀 있고, 그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 지 션에게 상담을 요청한다. 아래는 윌이 그녀에게 대쉬할지 션과 상담하는 가운데, 둘이 나눈 대화 중 일부*이다.
(*이 내용에 대한 한국어 번역은 Horizon에 기고한 KIAS 박권 교수님의 '양자얽힘'에 관한 글 초반부에서 발췌 및 편집함. https://horizon.kias.re.kr/1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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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내 걱정은 하지 말아요. 내 앞가림을 내가 할 수 있으니까요. 그녀는, 그러니까, 아름다워요. 똑똑하고요. 그리고 웃겨요. 그녀는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다른 여자들과는 달라요.

션: 그래, 그럼 전화 걸어, 로미오.

윌: 왜요? 그렇게 해서 그녀가 사실은 그렇게 똑똑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라고요? 아주 지루하다는 것도요?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아주 '완벽'해요. 망치고 싶지 않아요.

션: 아마 지금 이 순간 '완벽'한 것은 너겠지. 아마 네가 망치고 싶지 않은 것은 바로 그걸 거야. 내 생각에 이건 '초강력 철학'이야. 윌, 그 방식대로 하면 아무도 진짜 알 필요 없이 평생을 살 수 있게 되지… 내 아내는 긴장을 하면 방귀를 끼고는 했어. 그녀는 다양하고도 멋진 특별함을 가지고 있었지. 근데 있잖아. 그녀는 자면서도 방귀를 끼고는 했어. [웃음] 그런 것까지 네가 알게 해서 미안하다. 어느 날 밤에는 방귀 소리가 너무 커서 개를 깨웠지. 그녀가 깨서 “당신이 그런 거예요?”라고 내게 물어 봤어. 그래서 뭐 그냥 그렇다고 했지.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었거든… [웃음] 세상에나.…

윌: [배꼽 빠지게 웃으며] 그녀가 자기자신을 깨웠다고요?

션: [역시 파안대소하며] 맞아! … OMG… 하지만, 윌, 그녀는 2년 전에 죽었어. 그런데 그런 자질구레한 것이 기억나는 거야. [윌은 웃음을 멈춘다.] 근데 멋진 것은, 그러니까, 그런 작은 것들이야. 아, 그런 것들이야말로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들이지. 나만 알고 있는 작은 특별함들 말이야. 그런 것들이 그녀를 내 아내로 만들었던 것이지. 오, 그녀도 나에 관한 사소한 것들을 알고 있었겠지. 사소한 잘못들도 모두 알고 있었고.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결점'이라고 부를 거야. 하지만 아니지. 그런 것들이야말로 진짜 좋은 것이야. 나는 나만의 작고 특별한 세계에 누구를 들일지 선택할 수 있어. 친구여, 너는 '완벽'하지 않아. 긴장감을 덜어줄까? 네가 만난 그녀 있잖아, 그녀도 '완벽'하지 않아. 하지만, 진짜 물어봐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너희가 '서로'에게 '완벽'하냐는 거야. 그게 중요한 거야. 그게 친밀함이라는 것이지. 너는 이 세계에 있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친밀함에 관해서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도해 보는 것뿐이야. 나 같은 늙은이로부터는 배울 수 없는 것은 명백하겠지. 설사 내가 알아도 너같이 하찮은 녀석에게는 말해 주지 않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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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내가 읽은 책에서는 인간 관계의 불안정성 혹은 무질서까지 다루지는 않는다. 이른바 사회 물리학이라 부를 수 있는 학문의 태동, 통계학의 탄생, 확률론의 역사, regression과 deep learning의 효용, 양자얽힘과 통계물리학 등, 광범위한 주제에 걸쳐 불확실성을 다루기는 하지만, 수학자인 저자는 그 너머까지는 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굿윌헌팅의 한 scene을 떠올린 것은, 이 불확실성 혹은 무질서라는 것이 내 연구 주제의 맥락과도 맞닿아있기도 하려니와, 그 연구 주제 가장 아래에 있는 철학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굿윌헌팅의 대화 scene에서도 볼 수 있듯, 불완정성 혹은 무질서는 시스템에 있어 오히려 특별함을 부여한다. 데드 픽셀은 인간의 눈에는 불완전한 미완성의 기기로 정의되겠지만, 어떤 예술가의 눈에는 그 픽셀의 위치와 색, 그리고 깜빡이는 주파수가 그 기기에 특별함을 부여할 수 있다.

단지 예술적 맥락 뿐만 아니라, 과학적 맥락에서도 불완전성 혹은 무질서는 완벽한 시스템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특성을 부여한다. 멀리 갈 것 없이, 양자 컴퓨터의 화두 중 하나인 결함이 있는 다이아몬드 (defect in diamond)가 그런 케이스 중 하나다. 다이아몬드를 이용하는 타입의 양자 컴퓨터는 탄소의 3차원 결정 안에 특정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결함 (비어 있다든지, 다른 원소가 끼어 들어 있다든지, 탄소 원자의 배열이 다소 흔들렸다든지 하는 등의 결함)을 일부러 발생시켜, 그 결함을 중심으로 양자 정보 (qubit)을 처리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냥 완벽한 다이아몬드는 그 내부의 탄소 원자들의 전자 스핀이 구분되지 않으므로, 큐비트 역시 구분할 수 없지만, 아주 작은 결함, 예를 들어 수 나노미터 크기의 vacancy가 있고 그 결함에 질소 같은 원자가 결합해 있다면, 그 결함을 중심으로 독특한 중심 전자 스핀이 전자기장으로 형성될 수 있다. 이 결함에 마이크로파 자기장을 걸어 주고, zeeman 효과를 유도하면 스핀 정보를 읽을 수 있다. 만약 다이아몬드에 결함이 없었다면, 그 결함을 중심으로 발생될 수 있는 특별한 스핀 정보는 발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양자 컴퓨터 용 다이아몬드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냥 투명한 다이아몬드에 비해, 특별한 색이 나오는 다이아몬드 컬러 다이아몬드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당연히 영롱하게 빛나며 완벽하게 컷팅된 투명한 다이아몬드가 더 비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칼라 다이아몬드가 더 비싸다. 이유는 단순하다. 칼라 다이아몬드가 더 희귀하기 때문이다. 대략 전체 천연 원석 다이아몬드 중 2% 만이 칼라 다이아몬드로 채굴된다. 칼라 다이아몬드가 희귀한 까닭은 애초에 투명한, 즉, 거의 완벽한 다이아몬드의 단단한 결정 구조 때문이다. 칼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이아몬드에 탄소가 아닌 다른 원소가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만 탄소 원자의 sp3 결합, 그리고 그것이 3차원에서 거의 완벽한 결정이 되는 고온고압의 환경에서 다른 원자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란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1/50의 확률을 뚫고 일부러 결함이 생겨난 칼라 다이아몬드는 매우 희귀한 것이며, 값어치는 부르는 것이 값일 정도로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완벽을 추구하며, 질서가 잘 잡힌 상태를 좋아한다. 그것은 각자가 처한 현실이 불확실하고, 불완전하며, 무질서가 늘 상존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굿윌헌팅에서 션 교수가 이야기했듯, 모든 존재의 특별함은 그 완벽성에 있지 않고, 오히려 불완전성에 있다.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은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 불완전한 상태, 질서가 완벽히 잡힌 상태가 아니라, 다소 무질서한 상태,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여전히 손 볼 것이 많은 미완성 상태일 것이다. 모든 것이 자리가 완벽히 잡힌 상태는 장기간 유지가 불가능하기도 하려니와, 다른 삶과 구별될 수 있는 특별함이 없다. 완벽한 결정성을 갖는 다이아몬드는 귀금속으로서의 의미가 있지만, 그 너머의 양자 컴퓨터 혹은 칼라 다이아몬드로서의 새로운 의미, 특별한 의미를 줄 수는 없다.

이 책은 기술적으로는 불확실성, 그리고 무질서에 대처해 온 인류 지성사의 기록, 테크니컬한 전략에 대한 소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프론티어 개척의 역사로도 읽을 수 있겠지만, 우리의 일상에 투영해 보면, 결국 불완정성, 불확실성, 미완성을 늘 안고 살아야 하는 인간의 삶에 특별함을 찾을 수 있는 시각을 보여 주는 책으로도 읽을 수 있다. 저자가 애초에 그러한 확대된 해석을 추구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 같은 연구자들에게는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런 뉘앙스가 조금씩 강해지는 인상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위 서평은 출판사 북라이프의 서평단에 선정되어 리뷰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