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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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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신께서 자진하셨다니, 저도 모르게…….”


이신은 말끝을 흐렸다. 누가 이런 짓을 한 것일까. 김흥진의 사인을 사실대로 알려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음이 분명했다. 더구나 검안 소견을 내놓은 것은 의금부였다.


“과인이 그대를 부른 이유가 바로 그 시장 때문일세.”


“무슨 말씀이신지…….”


“과인은 김흥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네. 그가 자결했다니 믿을 수 없어. 그대가 김흥진의 사인을 정확히 밝혀주게.”


“칙사인 소인이 말입니까?”


“자네는 칙사인 동시에 내금위장이 아닌가. 무엇보다 다른 신하들은 믿을 수가 없네.”


임금은 이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이신은 허리를 숙이고 임금의 곁으로 다가갔다.


“자네 혹시 비격진천뢰라는 무기를 아는가?”


임금이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비격진천뢰라고 하셨사옵니까?”


이신은 시장을 봤을 때보다 더 놀랐지만 짐짓 침착한 표정을 유지했다.


“손으로 투척할 수 있는 폭탄이라네. 임진왜란 때 그것으로 왜구를 물리쳤다고 하더군.”


“…….”


“어제 사대문 밖에서 비격진천뢰를 만드는 무리들을 잡았네. 염초를 대량으로 구입하는 자들을 뒤쫓다가 잡았다는군. 이번에 내금위 쪽에서 찾아낸 비격진천뢰의 화력은 왜란 때 사용한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고 하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나? 역모가 분명해. 그런데 같은 날 훈신이 죽었네. 어떤가?”


“두 사건이 같은 자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말씀이신지요?”


“그렇지. 이것은 필시 역모를 꿈꾸는 자들의 소행일세. 과인을 칠 생각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무기가 그렇게 많이 필요했겠나?”


“하오나 역도들과 김흥진의 죽음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 않사옵니까?”


“물증이라면 없어. 단지 과인의 짐작일세. 비격진천뢰까지 손에 넣었다면 이번 역모는 그저 불한당 몇몇의 짓이 아닐걸세.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지. 그렇다면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훈신들이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이신은 지난 밤 대숲에서 맞붙었던 자객들을 떠올렸다. 예사롭지 않던 칼놀림 역시 치밀한 준비를 방증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장이 걸렸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가짜 검안서를 만들었단 말인가. 그 연유가 무엇이든 김흥진의 죽음에는 분명 의금부 내 누군가가 관여하고 있었다. 또한 만약 김흥진의 죽음이 역도들과 관련된 것이라면 의금부 내의 누군가가 역도들과 한패라는 의미였다.


그제야 이신은 임금이 몰래 자신에게 이 일을 부탁하는 이유를 이해했다. 그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조정 내에 역도들과 손잡은 무리가 있다면, 그리고 짐작할 수는 없으나 그 세력이 충분히 크다면, 이미 왕권이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왕으로선 드러내놓고 가짜 검안서 문제를 밝히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임금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임금과 역모를 꾀하는 신하들의 수 싸움에 말려드는 것이었다. 임금도 이신의 그런 속마음을 읽었는지 차분하게 설득했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은 꼭 과인을 위한 일만이 아닐세. 황제의 제후인 과인을 몰아내고자 한다면 이는 황제에 대한 항명이 아닌가? 그대에게 이번 사건을 파헤칠 전권을 주겠네. 이 일은 지엄하신 황제의 권위, 아니 황제의 안위를 지키는 일일세. 그러니 필요하다면 누구의 목이라도 베어도 좋네. 설사 정승이라 할지라도. 황제에게 도전하고, 왕기王機를 흔드는 자는 용서할 수 없지 않은가?”


임금이 말을 마치자 이신은 수긍했다. 임금이 황제의 종이라는 사실은 분명 치욕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방어막이기도 했다. 황제의 종은 황제만이 건드릴 수 있었다. 칙사에게도 조선의 내정에 일절 간섭하지 말라는 황제의 명이 있었다. 하지만 임금의 말처럼 감히 황제의 제후를 함부로 전복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그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역모가 성공한다 해도, 새 임금을 인정하지 않는 황제가 군대를 보내기라도 한다면 오히려 난감한 일이었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분부 받들겠사옵니다.”


“고맙네. 그러나 서두르지 말게. 놈들이 알아차리고 꼬리를 감출 수도 있으니. 천천히, 그러나 치밀하게 접근해 역도들을 발본색원해야 하네.”


“명심하겠사옵니다, 전하.”


“그런데…….”


이신이 명을 받들자 마음이 놓인 듯 잠시 기뻐하던 임금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달리 걱정되시는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


“말씀하시옵소서, 전하.”


“이 일이 잘못 되어 혹시라도 조선에서 항명이 일어났음이 황제에게 전해진다면, 만일 그리 된다면 황제께서…….”


임금은 이제 정말로 묻고 싶은 말을 꺼냈다.


“입조를 명하시지 않을까? 황제께서 자네에게 입조에 관해 특별한 하명을 내리진 않으셨는가?”


조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그런 얘기는 듣지 못했사옵니다.”


“하지만 소문이 돌고 있어. 심양에서 군사를 보낸다는 거야. 그게 사실이라면 자네는 알 것 아닌가.”


“헛소문이옵니다. 하오나…….”


“하오나?”


임금은 초조해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아니옵니다. 전하, 소신은 아직 입조에 관해 황제의 칙을 받은 바 없사옵니다.”


이신은 고개를 조아렸다. 하지만 임금에게 그 말이 다르게 들렸다. 사신도 칙사도 평소와는 다르게 뭔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때 바깥에서 내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하, 내의원에서 준비한 탕제를 드실 시간이옵니다. 어의가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알았네. 그만 물러가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신을 임금은 가만히 지켜보았다. 어쩐 일인지 칙사도 사신도 입조 문제만 나오면 입을 닫았다. 분명 둘 다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임금은 생각했다.


어의와 상궁이 가지고 들어온 탕제를 임금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물러가라는 명을 내렸다. 어의가 물러가자 내금위장 김창렬이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칙사의 정체에 관한 일이옵니다.”


김창렬은 임금에게 바싹 다가와 목소리를 낮추었다.


“어떻게 알았느냐? 자세히 말해보라.”


“칙사가 며칠 전 종로 거리에서 검 한 자루를 샀는데, 그것이 예사 검이 아니라 광해군의 내금위장이 쓰던 검이라 하옵니다.”


“폐주의 내금위장이라면 누구를 말하느냐? 광해의 내금위장은 한둘이 아니지 않느냐.”


“제 짐작으로는 이익수가 아닐까 생각하옵니다. 이익수는 폐주를 지키려다 반정군의 손에 죽은 자이옵니다.”


“확실한가?”


“가게 주인의 말로는 칙사가 그 칼을 대번에 알아보았다 하옵니다. 그렇다면 칼의 주인과 잘 아는 사이라는 뜻 아니겠사옵니까? 지금 칙사의 나이를 고려해서 당시 내금위장들의 자식들을 하나하나 따져보았더니 이익수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칙사가 폐주와 관련된 인물이라는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전하.”


임금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항상 칙사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역관 정명수처럼 천한 출신이라 자신의 과거를 불문에 부치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이신이 공맹을 읽었다고 하나 글을 안다고 다 선비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폐주 광해와 관련된 인물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칙사를 잘 감시하고 있는가.”


“예.”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가 누구와 접촉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하나도 놓치지 말고 보고하라.”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






































































“폐주 광해를 섬기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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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강희진 저
비채 | 201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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