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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여성성 그리고 시란 무엇인가? 시인 김혜순


 


 


 


점심 때가 되기 전의 카페. 아직 손님이 없는 카페. 약속 시간 보다 조금 일찍 나와 시인을 기다린다. 다소 굵고 낮은 시인의 전화 안 목소리를 기억하며. 시인의 시론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을 들추어본다. 부제 「연인, 환자, 시인 그리고 너」도 되새겨본다. 그리고 들림의 시, 영감, 공간, 어머니, , 증후, 사랑이라 제목 붙여진 챕터들. “저만치있는 시의 나라, 그 안에 시인이 있음을 느끼며 다소 긴장이 된다, 낯선 거리감에.


 


여성시가 이해받지 못한 이유 그리고 바리데기


 


아마도 내가 이 글들을 쓰게 된 가장 큰 동기는 소통에의 갈망이었을 것이다. 나는 왜 여성이 쓴 시는 소통의 장에서 소외되어 있는가라는 의문을 푸는 글을 한 편 쓰리라 마음 먹었다. 그러나 글을 쓰기 시작하자, ‘왜 여성의 언어는 주술의 언어인가. 왜 여성의 상상력은 부재, 죽음의 공간으로 탈주하는 궤적을 그리는가. 왜 여성의 시적 자아는 그렇게도 병적이라는 진단을 받는가. 왜 여성의 언술은 흘러가는 물처럼 그토록 체계적이지 못한가. 왜 여성의 시는 말의 관능성에 탐닉하는가…’와 같은 수많은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본의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글이 길어지고 상당히 수다스러워졌다. 그러나 어쨌거나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나를 끊임없이 침범하는 생각 하나는 시는 여성적 장르이고, 모름지기 시인이라면 그, 그녀는 귀신에 들리듯 여성성에 들린다는 것이었다.”


                                                        - 책머리에 중-


 


시인 김혜순의 시론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은 시인이 책머리에서 밝혔듯 왜 여성이 쓴 시는 소통의 장에서 소외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책이다. 우리나라 시문학 현장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시인 중 한명인 그녀는 먼저 최초의 의문에 대하여 말한다. 


 


일단 우리 나라에서 여성시가 시작된 것이 얼마 안되었어요. 여성적 의식을 가지고 쓰여진 시가. 그러한 시인들이 나오기 시작한 이래로 여성시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라는 소리가 많이 나왔죠. 여성이 쓴 소설들은 소통이 잘 되는데, 왜 우리 나라와 외국의 여성 시인들의 말은 이해받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대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서구의 페미니즘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거였어요.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문학 안에서도 그랬고 독자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하다 보니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 쓴 것 같아요.”


 


주술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하며 부재의 공간으로 탈주하는 궤적을 그리는 여성적 글쓰기를 심층적으로 읽고 이해하기 위하여 시인이 불러들인 텍스트는 바로 바리데기 신화이다. 시인은 이 신화를 읽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없을 거라며 바리데기 신화에 대해 설명한다. 진지한 시인의 얼굴.


 


바리데기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버려진 존재이지요. 버려진 후 서역에서 약수를 구해 오는데 모험을 통해서 구해오는 것이 아니라 밥짓고 빨래하고 물긷는 노동을 통해 구해오죠. 그러한 여성의 노동이 개입되었다는 것. 또 돌아와서 대왕이 자기 나라를 주겠다, 라고 했는데 나는 죽은 자들이 저 세상으로 가도록 인도하는 직책을 갖겠다’. 이렇게 말하는 그것. 현실에 없는 어떤 공간을, 자기 부재 공간을 자신의 공간으로 갖는 그것. 시라는 것이 부재의 공간을 영토화하는 것이니깐요. 그 외에도 너무 많아요. 바리데기가 여성시를 읽는 텍스트이며 또한 뮤즈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유화부인이나 낙랑공주처럼 문자 기록자의 손에 걸려듦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릴 수 밖에 없었던신화 속의 여성들과는 달리 바리데기는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여성들만의 구술세계 안에 몸을 감추고, 늘 연희현장에서 변화를 맞는 텍스트 안에 몸을 내줌으로써 심층적으로 얽힌 텍스트 안에 자신의 몸을 면면히 둘 수 있었다.”주류가 없이 수많은 이본 텍스트 안에서 입 없는 입으로 말하는 모습. 그 바리데기가 깃든 여성적 글쓰기, 주술의 언어, 그 들림. 


 


들림, 여성성 그리고 시


 


시인이 말하는 들림이란 무엇인가?


 


 


아침에 지하철을 탈 때 여성이라는 것을 의식하죠. 어디 가도 자기가 여자이며 사회적 약자라는 것을 의식하죠. 9시 뉴스를 봐도 그렇고. 여자는 부수적으로 있잖아요. 그럴 때 여자는 바리데기처럼 버려진 존재라는 것을 자꾸 의식하게 되죠. 그 의식으로부터 시작하게 되는 거예요, 그 들림이. 여성이라는 자각이 오는 거죠. 자신의 존재성에 대하여 질문을 하게 되고. 더군다나 내 어머니를 볼 때, 내 딸을 볼 때 느끼게 되는 거죠. 자꾸만 생기게 되는 거죠. 그러한 자각이 그 자리를 갖게 하는 거죠.”


 


시인은 이어 말한다.


 


여성 시인들이 시를 쓸 때 왜 자꾸만 비현실적이거나 부재하는 공간에 대하여 쓰는가, 왜 환상을 가지고 오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죠. 그런 데서 의식이 생기고, 들림이 생기는 거죠. 바리데기 연희자들이 들리는 것처럼요. 왜 나는 현실 공간에 부재하고 있는가, 버림받았는가를 받아들이는 순간에 들림이 생기는 거죠.”


 


시인은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의 부제를 「연인, 환자, 시인 그리고 너」라고 붙인 이유도 연인, 환자, 시인이 모두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회 체제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부정적인 존재들, 국외자, 제도에서 벗어난 자리, 파렴치한 자리.


 


 


시인은 이렇게 부재하는 존재가 내는 목소리를 듣고 말하는 장이 바로 시라고 생각한다. 버림받은 여성 바리데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아우러지는 부재함의 의식. 시인은 이러한 이유로 시가 여성적인 장르라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 현대시의 시작이 김소월, 한용운인데 모두 여성적 화자입니다. 이들은 남성으로서 여성의 목소리를 낸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든 여성의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끌어내었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무엇인가?


 


본질적으로 시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며 철학과 정신분석학 그리고 문학이 혼용된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는 시인은 우리 나라에서는 이번 자신의 책처럼 상호 연결된 글쓰기의 시도가 없었던 것 같다며 그래서 사람들이 더욱 낯설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여성성이라는 주제로 시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왜 시의 언어는 주술의 언어인가?”와 같은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되고 여기에 답하고 싶어하는 자신을 발견한단다. 그러나 이 같은 작업을 계속하게 되면 너무 말이 많아져 떠도는 시가 사라질 것 같단다.


 


산문을 쓰면서 시가 녹아 들어가기 때문에 아까워요. 강의할 때도 그래요. 말을 하게 되면 시가 발산되고, 발산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하기 싫잖아요. 아까워요.”


 


『우리들의 陰畵』『나의 우피니샤드, 서울』『불쌍한 사랑기계』『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와 같은 시집을 통해 그녀 스스로가 연희자가 되어 거듭 바리데기를 불러 온 시인. “배고픔도 해결해 주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맞고 있을 때 때리지 말라고 말도 잘 못하는, 아무 것에도 쓸모없는 효용성을 지닌 시를 쓰는 시인. 단지 잡지 않으면 흘러갈 뿐인 과거와 역사를 “‘순간이라는 압축성으로 폭발시키는시인, 김혜순에게 시는 무엇인가?


 


시인으로서 말하기 방식이죠. 내 존재가 말하는 방식이 시이죠. 그런데 언어라는 그릇에 담아보면 제 시가 아닐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언어라는 그릇의 한정성을 깨뜨리려고 자꾸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것이 시 같아요. 내 존재를 넓히고 넓혀 보려는 욕망이 있는 거죠. 자기가 여성으로서 부가된 아이덴티티가 있잖아요. 누구는 나보고 엄마라고 하고, 누구는 나이 든 여자라고 하고. 또 어떤 여자한테는 창녀라고도 말할 수 있는. 그렇게 부가된 아이덴티티를 벗어나려하는 몸부림이죠, 시는.”


 


그러나 시인은 다시 현실 속에서/자신이 몸담고 밥 벌어먹는 일상 속에서/쓰는 의무보다 살아내는 의무를 가진 자로서/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과 접촉하면서/그리고 시인이 사는 방법이 바로 삶 속에서 시를 실현하는 것이라 믿으면서/그것이 갇힌 내 몸의/그러나 그것이 세상의 살갗이요 내용이라 믿으면서/그것이 바로 어디에도 없는 곳, 유토피아라 믿으면서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중 「시는 시다」에서-


 


 



시인은 요즈음 내가 어디에 있는가?”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자신이 살아온 시간, 시간의 허망함, 그러한 시간의 한 지점을 바라보는 느낌이 굉장히 어둡다고. 그러면서 사람이 나고 죽는 것처럼 시도 그렇게 한 사람을 찾아왔다 갈 것 같다고 나직이 말하는 시인의 눈가가 흐릿하다. 그러나 매순간 상념 속에서 과거인 역사를 지금, 여기. 속에서 폭발해내어야하기에, 자신의 존재를 넓히고 넓혀 보려는 욕망이 있기에 시인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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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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