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소통과고독
- 작성일
- 2007.12.22
할머니의 연애시대
- 글쓴이
- 벌리 도허티 저/선우미정 역
창비
그들의 성장통,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속의 이야기.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산다. 그것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아픔이기도 하고, 또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은밀한 비밀은 타인의 비밀과 만나게 될 때 위로되어 지고 세상과 소통되어 진다. 비밀의 조건이란 그렇다. 한쪽으로만 흐르는 비밀은 왠지 덜 은밀하고, 덜 중요하게 느껴진다. 비밀 공유의 조건은 쌍방향간의 교환에서 시작되고, 그로 인한 응집성과 친밀감 생성은 비밀 공유의 묘미이다.
벌리도허티의 장편소설 「할머니의 연애시대」는 제스의 유학전날 온 가족이 모여 벌어진 고백 파티의 이야기이다. 저마다 가슴속에 묻어둔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 놓음으로써, 제스네 가족의 응집력은 한층 강화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설령 그것이 가족일지라도, 가슴에 묻어둔 그늘진 이야기를 진실하게 털어 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제스네 가족은 참으로 용감하고 현명한 사람들이며, 진실로 행복을 가꿀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교가 다른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부모님 몰래 축복받지 못한 결혼을 해야 했지만, 함께 꾸려나갈 삶의 약속이 있어 결코 불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부모들은 자녀의 결혼을 표면적으로는 축복해주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두 사람 앞날의 행복을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떠나는 오토바이 소리를 오랜 시간 말없이 듣고 있던 부모님의 모습에서, 자식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사랑이야기로 시작된 고백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거쳐 제스의 사랑이야기로 끝이 난다.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은 모든 인간에게 공유되어지는 감정이라는 듯이 말이다. 제스는 스스로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웃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발견하면서부터 사랑의 눈을 뜨게 된다. 그것은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자의식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결코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사랑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을 불륜이라는 이름으로 더럽히지 않는다. 제스를 매의 먹이감으로 만드는 대신에, 지독하게 고통스럽고 그리운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남겨둠으로 제스를 한층 성숙시킨다. 이렇게 작가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사람의 마음은 고귀하고 소중한 것이며, 때로는 참고 멈추는 법을 알아야하고, 그렇게 마음을 잘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고귀하고 소중한 만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다뤄야한다는 듯이.
그리고 그 사이에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었던 오빠 대니 이야기, 한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열렬하게 사랑한 루씨, 그리고 그 엇갈림 속에서 탄생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과 결혼, 백마탄 왕자님을 꿈꿨지만 성실한 사랑을 선택한 친할머니의 이야기, 비둘기 길들이기를 통해 마음을 열고 사랑의 소통을 나누는 아버지와 오빠 이야기, 여린 거인 길버트 할아버지의 사연이 있다.
이런 사연들은 그들을 성장시키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놓이게 한다. 여기에 나오는 사연들은 시대와 문화는 조금 다르지만,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피해갈 수 없는 자연스런 경험처럼 느껴진다. 사랑의 아픔, 젊은 날의 어리석은 선택, 철없던 시절의 가벼운 행동, 가족의 가슴 아프고 찡한 사연 등은, 모습과 양상은 조금 다를지라도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성장통처럼, 누구나 한번쯤은 겪게 되는 통과 의례 같은 것이다.
지금 막 어른의 세계로 발을 들이려고 연습중인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다. 청춘이 란 이름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어 질것 같은 지금의 시기는 머뭇거림과 주저함 그리고 때론 실패까지도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고 말이다. 청춘이기 때문에 실패마저도 미소 지을 수 있으며, 무엇이든 꿈꿀 수 있고, 용기 낼 수 있으니 힘내라고 말이다. 힘들고 괴로워도, 지금의 아픔이 너무 크게 느껴지겠지만, 시간이 지난 후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더라고. 언젠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웃을 날이 반듯이 찾아온다고, 그렇게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살다보니 다 살아지고 이겨내 지더라고, 그러니 힘내라고 말이다.
성장통을 겪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격려의 마음을 건낸다. 조금 먼저 살아온 사람으로써, 성장통을 겪으며 전전긍긍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예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걸 보니, 이젠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2007.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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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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