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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모어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1.1.5
고백
제작 : 2010년 일본
감독 : 나카시마 테츠야
장르 : 스릴러, 범죄
출연 : 마츠 다카코, 오카다 마사키, 기무라 요시노
아시다 마나, 후지와라 카오루, 다카하시 츠도무
카이 이노와키, 미요시 아야카
일본 영화 '고백'은 상당히 잘 짜여진 스릴러 영화입니다. 영화의 내용은 꽤 잔혹하기그지없는데 이게 아마도 한국 영화였다면 꽤 비주얼한 영상이 나왔을 것입니다. 한국영화는 영상과 비주얼, 일본 영화는 치밀한 각본이라는 차이점을 느끼게 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좀 안좋게 표현한다면 한국 영화는 '겉멋'들렸고 일본 영화는 '깊이'가 있다라고 할까요? 모두 그런것은 아니지만 같은 소재에서 그런 차이가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고백'은 내용 자체가 영화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짜임새 있는 연출과 썩 괜찮은 시나리오는 이 영화는 꽤 경탄스럽고 쇼킹한 작품으로 끌고가는 힘이 있었습니다.
1. 유코의 고백
어느 중학생의 학년말인 3월, 마지막 종례가 되는 시간, 담임선생인 유코는 아이들에게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전형적인 단정한 여교사의 분위기를 가진 유코, 담담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이 교사로서 마지막 날이다' 이런 유코의 말에 아이들은 숙연해지기는 커녕 자유분방하게 떠들고 환호를 올리기도 합니다. 그런 무례한 아이들의 태도에 아랑곳 하지 않고 유코는 차분하고 친절한 어투로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갑니다. '지금부터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어요' 유코는 칠판에 크게 '목숨 명'자를 씁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 나갑니다. '내가 미혼모라는 것 알죠?' 예의를 갖춘 유코의 담담한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그리고 에이즈에 걸린 남자와의 사랑과 미혼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다가 그 아이를 잃게 되는 유코의 가슴아픈 이야기가 담담히 전개되며 떠들던 아이들은 어느새 호기심 가득히 유코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 순간 아이들보다 더 큰 호기심으로 귀와 눈을 집중하고 이야기를 듣는 것은 바로 이 영화를 보는 '관객'입니다. 마치 탐정이 추리소설의 맨 마지막에서 범인을 밝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유코의 이야기.... 그러나 결국 그건 유코의 '고백'이었습니다.
이 유코의 고백은 쇼킹한 결말이었습니다. 떠들고 자유분방한 아이들에게도 친절한 예의를 잃지 않고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던 유코.....그녀의 실체는?
이 유코의 고백 만으로 이 '고백'이라는 영화는 하나의 아주 훌륭하고 쇼킹한 별 네개 만점짜리 '단편영화'로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영화가 끝나버리기를 바라게 될 정도로 이 20여분간 전개되는 유코의 이야기에 흥미와 집중을 기울이면서 빨려들어갔습니다.
유코의 고백이 끝나자 더 이상 빼고 더할 것이 없는 완벽한 '단편'에 나머지 시간은 군더더기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이걸로 이 영화에 대한 본전은 다 뽑은 것 같은데'
2. 그리고 동기들
사실 유코의 이야기만 듣고 끝나기를 바랬던 저는 '결과'만 중시하고 '동기'는 관심이 없는 이기심에 가득찬 상황었다는 것은 영화가 중반부를 지나가면서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 벌어지는 역시 '고백'형식으로 전개되는 영화. 고백자는 유코가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한 명 한 명 릴레이처럼 전달되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의 각각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영화방식. 이건 스탠리 큐브릭의 '킬링'과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 등 몇 편의 영화에서 사용되었던 방식입니다. '고백'에서는 약간 차원이 다르긴 합니다. '고백'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자체가 독특하면서도 이 난해한 듯 복잡한 듯한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기에는 가장 친절하고 좋은 방식이었습니다.
여기서 관객은 비로소 하나하나 사건의 동기와 숨겨진 2인치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씩 반전과 부연을 발견하게 되며 등장 인물 하나 하나에 대해서 조금씩의 이해와 관대함도 느끼게 됩니다. 동기를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상당한 '결과에 대한 느낌'에 대해서 차이를 주게 됩니다. 물론 동기의 이해가 사건에 대한 무조건적인 관대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혀 모를때에 비하면 많이 누그러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관객은 어느순간 주인공처럼 오프닝에 등장한 유코의 존재를 잠시 놓게 되고 다른 인물들에 조금씩 집중하게 됩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보면 살인범과 결혼한 여자가 남편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남편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자기의 과거를 거짓으로 꾸며서 들려주고 '독살경험'을 이야기합니다. 남편은 조금전 아내가 타준 커피를 마셨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배가 아픈 고통을 느끼며 쓰러집니다. 그 순간 아내의 지인이 도착하고 위기를 넘깁니다. 이 소설은 '진실'보다 '믿음'이 주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독약이 든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내가 마신 커피에 독약이 들었을 것이라는 믿음.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이렇게 '믿음' 또는 '잘못된 사실 왜곡과 잘못된 인지'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진실'보다 훨씬 많습니다.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것 역시 실제적인 가해가 아닌 이런 '믿음의 효과'에 의한 것이 더 아플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영화를 보면 알게 됨)
3. 돌아온 유코, 그리고 끝나지 않은 복수
'고백'은 양괄식 영화입니다. 너무 빨려들어가고 집중해야 했던 유코의 고백으로 시작하는 오프닝, 그리고 너무 빠른 유코의 퇴장에 실망하면서도 숨겨진 동기와 이면에 대해서 조금씩 적응하는 관객들, 그렇지만 약간 지루함도 느낄 수 있는 중반이 지나서 사건의 전모가 거의 밝혀질 무렵에 유코는 슬며시 재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끝나지 않은 복수'가 전개됩니다. 오프닝에 유코가 하려던 이야기, 들여주려던 이야기는 비극적인 사건의 경험자인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서 '생명의 존엄성과 소중함'을 들려주려던 모습이었습니다. 이 천사같고 성녀같은 유코의 모습도 잠깐, 유코의 고백의 말미는 이러한 상황을 경악스런 결말로 끝내게 되는데 다시 되돌아온 유코가 나타날 당시에는 그런 경악스러움이 다소 해소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코의 고백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유코는 일종의 '완벽하지 못한 복수' '실패한 복수'에 대해서 제 2라운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4. 진정한 복수란 무엇인가?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를 보면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자신이 만든 괴물이 자기에게 마지막 복수를 하러 오는 날이 자신을 죽이러 오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괴물의 복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사랑하는 여인을 죽인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복수는 '살해'가 아니라 '그의 가장 소중한 것은 앗아가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이 인간에게 하는 가장 잔인한 범죄도 그것입니다.
'고백'은 굉장히 쇼킹한 '복수극'입니다. 하나의 완벽한 단편영화 같은 첫 번째 에피소드인 '유코의 고백'이 끝나면 주인공이 자취를 감추고 다른 인물들이 부각되어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은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연상됩니다. 소재 자체도 '죽거나...'처럼 비극적이고 잔혹스런 내용입니다. 고백은 생각보다 직접적인 '가해적 영상'이 없습니다.
이 영화는 '시나리오'에 의해서 전개되는 잔혹극입니다. 단아한 분위기의 여주인공의 캐릭터도 그런 '시나리오 영화'를 위한 좋은 도구입니다. 그리고 대사도 꽤 많습니다. 집중력이 상당히 필요한 영화지만 그만큼 관객을 빨아들이는 역할을 하는 영화입니다.
유코의 고백 이후 이대로 그냥 영화가 끝나기를 바랬던 아쉬움은 후반부의 또 다시 전개되는 유코의 이야기로 그런 아쉬움을 많이 걷히게 합니다. 그래도 역시 '유코의 고백'편이 가장 임팩트와 집중력을 느끼게 합니다.
'고백'은 '용의자 X의 헌신'이후에 그와 비슷하게 흥미로움과 짜임새, 스릴, 반전의 결말을 느끼게 해주는 치밀한 스릴러입니다. 굳이 역션없이 대사로 대부분을 때우는 영화도 이렇게 긴박감과 재미를 제공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게 일본 시나리오 영화의 장점입니다. 제작비를 많이 들여서 호쾌한 액션물을 찍는것에 대한 시장의 한계를 가진 동양영화가 나아가야 할 좋은 방향을 '고백'이나 '용의자 X의 헌신'같은 영화들이 제대로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감독인 나카시마 테츠야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으로 우리나라에 알려진 인물이고 주인공 요코역을 한 마츠 다카코는 1998년작품인 이와이 순지 감독의 '4월 이야기'에서 청춘하고 신선한 여주인공역으로 가슴을 설레게 한 여배우입니다. 그 소녀가 30대의 성인이 되어 출연한 영화가 '고백'으로 그동안 '도쿄 타워'나 '히어로'같은 영화들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틈틈히 선을 보인 여배우입니다. 청춘 로맨스 영화의 소녀가 쑥쑥 잘 커나간 것입니다.
결론 - 고백 강추!
ps1 : 14세 이하의 미성년자의 범죄에 대해서 처벌하지 않는다는 법안이 굳이 이 영화가
아니라도 요즘 청소년 범죄들을 보면 다시 재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ps2 : 이 영화보면서 '저건 아닌데'라고 안쓰러웠던 장면은 길을 걷던 유코가 주저앉아서
우는 장면입니다. 유코는 끝까지 '냉정'을 잃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더군요.
ps3 : 킬링, 메멘토를 보고 느꼈던 전율이 이 영화에서 되살아났습니다.
ps4 : 단순히 범죄 스릴러 영화라는 것만 알고 보았는데 의외의 보물을 건진 느낌입니다.
ps5 : 마츠 다카코는 아직 30대 중반입니다. 아직 한창 더 좋은 배우로 활동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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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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