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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모어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1.7.30

고지전
2010년 한국영화
배급 : 쇼박스 미디어플렉스
감독 : 장훈
출연 : 신하균, 고수, 이제훈, 류승수, 고창석, 김옥빈, 조진웅, 이다윗
류승용, 정인기
전쟁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좋은 편이 나쁜 놈들을 통쾌하게
무찌르는 영화들, 주로 좋은 편의 역할은 미군이나 연합군이고 나쁜 놈들의 역할은 독일군
일본군, 아랍군, 소련군, 빨갱이들 입니다. 50-60년대에 많이 만들어진 2차대전 영화들이
이런 영화들의 대표들입니다.
두 번째는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뼈저리게 표현하는 '휴먼드라마' 형식, 전쟁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고통과 슬픔, 전우애, 조국애 등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1979년 말론 브란도 주연의 '지옥의 묵시록'이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어리둥절
했을 것입니다. 이게 과연 전쟁영화냐?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 지각개봉을 했고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는데 예전에 보던 헐리웃 전쟁영화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존 웨인 같은
용맹한 미군장교가 등장하여 적군을 통쾌하게 섬멸하는게 아니라 주인공인 대스타 배우
말론 브란도는 마치 '괴물'과 같은 기괴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습니다. 소위 '미친놈'
역할이랄까요?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전쟁장면은 초반부를 넘어가면 아예 등장하지
않습니다.

고수(왼쪽)와 신하균

악어부대 내부의 비밀을 파헤치러 온 방첩군 소속의 신하균과
실질적으로 악어부대의 리더역할을 하고 있는 고수
'영화는 영화다'로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던 장훈감독은 신작 '고지전'을 발표했습니다.
저예산 영화에 가까웠던 영화는 영화다에 비해서 100억대 제작비의 대작을 만들었으니
굉장히 파격적인 상승을 한 셈입니다. 그런데 그는 참으로 할 말이 많았나 봅니다.
한 편의 영화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내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라고 관객이 말하려고 하면 '아니 아직 할 이야기가 더 남았어'라고 하는 듯한
영화가 '고지전'입니다.
고지전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고수'입니다. 엄연한 제 1 크레딧 주인공은 신하균이지만
사실 신하균의 역할은 포와로 소설의 '헤이스팅스'나 '셜록 홈즈' 소설의 왓슨처럼
'나레이터'나 '목격자'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건 백경의 주인공이 에이허브 선장이고,
보물섬의 주인공이 실버선장이고 해저 2만리의 주인공이 네모선장인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6.25 전쟁 휴전이 선포된 것은 1953년 7월 27일입니다. 휴전협정은 2년이 넘게 지루하게
지루하게 이어졌고, 그 기간동안에 벌어진 고지사수싸움을 통한 무수한 희생을 다룬 영화가
바로 '고지전'입니다. 휴전협정이 계속 결렬되는 가운데 동부전선 최전방 '애록고지'를
사수하기 위하여 지루하게 수십차례 반복되는 '고지탈환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첩대
출신의 중위 강은표(신하균)은 애록고지를 사수하는 악어부대 에서 발생한 중대장 전사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 애록고지로 파견됩니다. 악어부대의 중대장의 죽음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고 적과 내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의심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마치 최전방을 지키는 부대 내부의 비밀을 캐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리려는
듯한 전개입니다. 하지만 생각외로 그 '미스터리'는 쉽게 풀립니다. 아니, 미스터리
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강은표가 임무를 캐내는 부분은 별개 아니고 이 이후에 벌어지는
악어부대 내부의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과 전쟁의 참상같은 '후속타'들이 계속 영화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고수가 연기한 김수혁 중위가 있습니다.



아마 이 영화의 출연제의를 받고 시나리오를 받아 보았을 때 고수는 썩 만족을 했을
것이고 신하균은 약간 불만이었을 수 있습니다. 아마 그런 점 때문에 신하균에게는
주인공 크레딧을 선사했고 고수는 '2크레딧'으로 물러났고 고수가 죽은 뒤에도 한참
더 영화를 전개시킨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는 엄밀히 말해서 철저한 '고수의 영화'
입니다. 고수가 죽은 뒤에도 영화의 핵심 역할을 하는 인물은 젊은 중대장을 연기한
이제훈과 인민군을 연기한 류승룡입니다.
애록고지의 탈환, 휴전이 선언되는 당시에 이 고지를 차지하고 있어야 더 많은 땅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애록고지를 둘러싼 반복되는 '땅따먹기 전쟁'은 수십차례 이어지고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갑니다. 과연 전선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그 고지가 도대체 뭐길래
이런 소모전이 계속될까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통치자이지만 전쟁에서 희생되는
것은 애꿎은 국민과 병사들이라는 것은 참으로 허망한 현실입니다. 물론 '독립전쟁'같은
경우야 다르겠지만 통치자의 광기때문에 벌어지는 수많은 전쟁에서 애꿎은 병사들이
죽어 나갑니다.
통치자는 '승리'를 위한 전쟁을 하지만 병사들은 '살아남기 위한 전쟁'을 합니다.
그러나 '승리'를 위해서는 더 많은 병사들의 희생과 죽음이 강요되어야 합니다.
전쟁에 패한다면 통치자는 모든 것을 잃지만 국민이나 병사는 고향에 가서 가족을
만나게 됩니다. 즉 누구를 위한 전쟁이고 누구를 위한 희생일까요?
인민군 최고의 저격수 '2초'의 총에 맞고 죽어가는 고수는 명언을 남깁니다.
'사람을 너무 죽여서 지옥에 가야 할 것 같은데 여기보다 더 지독한 지옥은 없다.
그래서 죽지도 않고 계속 여기 남아있는 것 같다'
'고지전'은 지옥의 묵시록에서 시작하여 플래툰과 풀 메탈 자킷 등을 거쳐 공동경비구역
JSA와 태극기 휘날리며 등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모두 모아서 다시 들려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장훈 감독 이 사람 참 욕심도 많지.

젊은 중대장 역할을 보여준 이제훈

실질적으로 영화의 핵심역할을 했던 고수

작년에 만들어진 '포화속으로'가 전쟁을 소재로 한 '굉장히 낭만적이고 폼 잡는 그림'
이었다면 고지전은 꽤 참담한 영화입니다. 그렇지만 영화의 재미와 오락거리들도 잊지
않고 꼭꼭 챙겨온 영화입니다. 극적인 재미와 전쟁의 참상을 함께 담은 영화이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상영시간은 2시간을 훌쩍 넘고 있고 각 배우들에게 연기할 기회도
충분히 주고 있습니다.
배우들 이야기좀 해볼까요? 사실 영화속에서 가장 개성없는 인물은 주인공 신하균입니다.
그가 무분별한 '빨갱이 색출'에 반대하면서 '친일파 색출때도 좀 그렇게 하지'라는 통쾌한
대사를 할 때만 해도 그가 심상찮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하지만 악어부대로
가자마자 영화의 주도권은 바로 고수가 접수합니다. 고수는 '더블캐스팅'의 최강자로
계속 맹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백야행'에서는 한석규와, '초능력자'에서는 강동원과
그리고 '고지전'에서는 신하균과 함께 연기하고 있습니다. 단독 주연이 아닌 정상급의
배우와 공연을 하면서 주가를 올리고 있고, 이건 '존재감'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 배우에게
유리한 것입니다. 고지전에서 그는 참 활용하기 좋은 마스크와 분위기를 가진 배우라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존재감이라면 한정된 연기만 가지고도 좋은 배우역할을 오래
할 수 있습니다. 이건 신하균이 갖지 못한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젊은 대위 신일영 역의 이제훈도 좋은 배역입니다. 조연이지만 할 역할은 다 하고 꽤
비중있는 중요한 역할을 몇 차례 합니다. 포화속으로의 TOP이 부럽지 않을 정도입니다.
최근 감초같은 조역을 많이 하는 고창석은 나이든 상사역으로 여전히 능청스러운
연기를 하고 있고, 인민군역의 류승룡도 제법 묵직하고 비중있는 역할을 합니다.
'시'에서 윤정희의 손자로 등장한 이다윗은 17세의 막내 이등병역으로 출연하여
'전선야곡'을 구슬프게 부릅니다. 슬슬 배우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박쥐'에서 다소 과대평가를 받았던 김옥빈은 '조연'인데 대사가 거의 없는 역할입니다.
저는 박쥐를 보고 이 배우가 '좋은 배우'로 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는데
고지전에서의 역할 정도가 김옥빈의 배우로서의 능력에 딱 적정수준인 것 같습니다.
김옥빈은 인민군 최고의 저격수 '2초'역할로 미모와 개성을 보여줍니다.
그밖에도 조진웅, 류승수 등 다양한 배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배우들이 각자 자기
역할을 잘 해줍니다.
고지전이 얼마나 흥행을 할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현재의 정서에 잘 맞는 작품이고
어느 정도 완성도와 재미도 있고 '휴먼드라마'로서의 장점도 있어서 단기흥행을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꾸준히 관객을 데려올 수 있는 영화입니다. 개봉 첫주에는 비록 퀵과
해리포터에 뒤졌지만 아직 실망하기는 이릅니다. 영화속에서 악어부대가 끈질기게
버텼듯이 고지전도 과연 장기흥행전선을 펼치며 오래 살아남을까요?
ps1 : 우리는 강한 군대와 강한 민족으로 '이스라엘 군대'를 많이 비유합니다.
이스라엘이 왜 강한지 확실히 알겠습니다. 그들은 '통치자'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같은 이유로 2차대전은 독일이 절대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조국해방을 위하여 싸우는 연합군을 통치자를 위해서 싸우는
독일과 이탈리아가 이길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월남전'에서 미국이 불리할
수 밖에 없었고. 미국에서조차 월남전에 대한 반대시위가 열렸으니까요.
제발 앞으로 '통치자를 위한 전쟁'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하겠습니다.
이상한 통치자들과 종교인들의 밥그릇 싸움만 없다면 지구에서 '전쟁'이 벌어질
하등의 이유가 없지요.
ps2 : 전쟁영화의 몇 손가락에 꼽히는 걸작으로 남게 된 지옥의 묵시록과 대척점에
있는 영화가 바로 존 웨인이 감독 주연한 '그린 베레'입니다. 이 설명만으로
그린 베레가 어떤 수준과 어떤 가치를 지닌 영화인지 알겠죠?
ps3 : 고수의 명대사 또 하나,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그를 쏴 죽인 고수에게 신하균이
총을 겨누자 하는 말
'내가 죽으면 네가 중대장이다. 나보다 더 부하들을 잘 살려낼 수 있다면 네가
그 역할을 맡아라. 그렇다면 나를 쏴라. 어서 쏴'
ps4 : 중대장 죽음의 비밀, 인민군과의 내통의 비밀, '2초의 정체'의 비밀
포항 탈출사건의 비밀, 할 이야기 많은 영화지만 그래도 질질 끌지 않고
속시원하게 이 사건의 내막들을 너무 '자세히' 설명해주는 영화입니다.
ps5 : 신하균과 고수는 왜 그리 '장발'일까요?
ps6 : 대작치고는 보기 드물게 2.35 : 1이 아닌 1.85 : 1 로 만들었는데 아마도 한국 영화관의
대부분의 스크린이 1.85 : 1 이라서 그랬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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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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