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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a
- 작성일
- 2021.11.16
고립의 시대
- 글쓴이
- 노리나 허츠 저
웅진지식하우스
늘 북적북적한 시대를 살아왔는데 봉쇄되고 제한을 두고 서로간의 거리를 유지해야하는 시대를 살아가는게 서글프다. 불과 20여개월 전부터 시작된 바이러스의 영향권이 삶의 전 영역에 걸쳐 마치 바이러스를 듬뿍 배양한 공기를 뿌려대듯 우리 삶은 모든 접촉을 오염된 것으로 느끼게 할 만큼 변화되었다. 웃으며 별 일있겠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코로나바이러스는 학교, 직장은 물론이고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아이들의 입에도 마스크를 피부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얼마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휴교는 조금씩 대면 수업이 진행되지만 근 일년 이상을 온라인 교육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수업이 자리잡게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친구들의 얼굴을 줌으로 볼수 있고 예체능조차 비대면 수업으로 이루어지게끔 만들었다. 작은 사각형태의 줌 창문속에서 각자의 아이들이 어딘가를 향해 멍하니 응시하는 모습, 선생님이 외로운 교실에서 혼자 수업을 진행하며 교육을 송출하는 모습이 이제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익숙하다.
점차 모든것이 비대면이 되어가는 시대이긴 했지만 급작스러운 온라인, 비대면 상황으로 대면으로 이루어지던 많은 서비스들이 온라인이나 기계화되면서 뉴테크의 급진보로 오히려 이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을 소외계층으로 밀어넣고 있다. 그 어느 시대보다 더 극명한 세대갈등, 직장내 갈등, 정치적 반대성향,경제, 사회, 세계 어디서나 갈등하고 분열하며 실제로 감행된 극악무도한 범죄양상에 이제 정말 더 나빠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는 마비되었고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을 함유한 세대임에도 상황은 더 나빠졌다.
밤낮없이 올라오는 수많은 SNS 소식과 링크들이 있지만 정말 우리는 끈끈하게 맺어진 관계일까?
그리고 우리는 정말 친구일까?
나는 어떤 존재일까?
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의 60%이상이 일년간 한명의 방문자도 받지 않는다는 데이타가 있고, 인구의 삼분의 일가량이 늘 고독함을 느끼고 있다는데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이 곧 오리라는 걸 우리는 알까?
SNS를 즐기는 나는 사실 '좋아요'를 누른다는 것이 참 쉬운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조회수가 올라가면 기분이 좋아지고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예전에 조회수나 좋아요를 많이 받기 위해 구입을 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비지니스를 위한 계정도 아닌데 정말 그런일이 있어? 라고 놀랐던 일이다. 마치 '라떼'에는 결혼식에 참석할 친구들이나 가족을 돈을 주고 고용한다는 일들도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보여주는 것이 진짜가 아닌데도 자유롭지 못한 한계가 있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얼마나 빈깡통같을 수 있는지도 속속히 내막을 들여다 보면 참 부질없는 짓임에도 말이다.
두가 기쁜듯 좋은 곳에서 좋은사람들과 좋은 음식을 먹고 행복한 인증샷을 남기지만 실상 우리, 정말 행복한가를 <고립의 시대>를 넘기며 씁쓸하게 본다.
고립이 되면서 더 재미있는건 어떤 의미를 추구하며 뭉치고자 한다.
이번엔 더 강력하고 배타적인 벽을 세우면서 말이다
전통적 사회의 특징인 공동체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개인의 자유, 권리를 위해 탈 공동체했고 해체하고 파괴하며 신자유주의를 추구했던 시기가 있다면 이제는 오히려 인권을 주장하며 서로의 인권을 밀어내는 강력한 벽을 세우고 내것, 내가 속한 곳만 옳다고 주장한다. 작년 1월이었던가.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격렬한 시위를 펼치고 상상못할 어마어마한 증오의 범죄의 영상이 전세계에 충격적인 화면으로 펼쳐졌다
또한 아프가니스탄의 절규하는 부모들의 모습, 담장을 넘지못해 아이라도 자유를 주기 위해 알수 없는 세계로 자신의 아이를 넘기는 모습도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슬프고, 아프고 외롭고 고립된 곳곳의 모습과 코로나로 제한되는 수많은 일상이 그냥 남의 일처럼 흘러가고 있다.
어쩔때는 고통이 현실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자조도 있다
영화도 아니고 꿈도 아닌데, 울부짓고 있는 우리 주변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스크롤바를 내리는 모습을 발견한다.
왜 이렇게 되어갈까에 대한 작가의 고민은 스마트폰을 한 원인으로 주목한다. 약 십년사이에 폭발적으로 늘어나 이제는 스마트폰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할 정도로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많은 시간을 보낸다. 식당을 가봐도 함께 밥을먹지만 스마트폰을 다 꺼내서 보기도 하고 잠깐 길을 건너는데도 스마트폰에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늘상이다.만남을 위해 시간내서 만나서 서로 스마트폰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사람을 앞에 두고 계속 스마트폰과 상대방을 한자리에 모시고 어찌보면 스마트폰이 더 우선순위에 있는 듯해보이기도 하다. 인정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중독상태가 계속되고 우리 시대는 어린 중독자부터 나이든 중독자 그리고 신생아 중독자까지 계속 양산하고 있다. 문제는 이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는가를 들여다 보는것이다. 시선과 우리의 관심을 빼앗는 것들은 자극적이고 공격적이고 가학적이기까지 한데 알게 모르게 너무나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성장기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의 뇌에도 아무렇지 않게 노출이 되고 우리의 행동은 이러한 자극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고를 하게 된다. 두려운것은 이것이 아무런 경고장치가 없다는 사실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규제하고 막으려는 시도를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이 흐름은 누구에게도 제한이 없다. 어찌보면 막으려는 일이 무의미 할 정도로 거대한 파도와 같아 이 시대를 점점 더 고립의 시대로 잠식해간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더 멀리 더 많은 사람들과 연계를 할 수 있다는 놀라운 발상의 스마트폰은 이제 우리에게 최악의 고립을 준다. 멀리 볼게 없는게 스마트 폰 하나 있으면 방문을 닫고 절대 나오지 않을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고립으로 인한 황폐함이 역사적으로 어떤 광기로 분출될 수 있는지에 대한 흐름과 반복패턴을 보며 다른 모양인듯 하나 결국 그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고립> 이 인간의 역사에 주는 신호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등에 우리 주변의 고립이 어떤것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행동변화를 권고한다. 고립속에 빠진 인간이 어떻게 혐오공동체를 형성하게 되고 결국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되는지 그 내면을 본다면 저렇게 평범하게 생긴 사람들이 어떻게 역사상 수치스러운 비인간적인 행동을 집단광기적으로 할 수 있었는지 답이 될 수 있다. 고립의 고리를 끊으려면 직접 만나야하고 광장으로 나와야한다. 공동체가 함께 토론하고 생각을 조정할 수 있는 넓은 장으로 나와야한다. 비대면이 주지 못하는 인간의 표정과 직접 만나지 못하면 느낄 수 없는 공감과 모방이 역사속 그림이 되지 않으려면 더 늦기전에 그 흐름에 인간애를 찾아 함께 공감하고 의미있게 느낄 수 있는 시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노리나허츠의 <고립의 시대를 통해 표류하는 동시대 사람들이 함께 고민 할 수 있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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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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