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후기 / 한국

문학소녀
- 작성일
- 2017.6.30
박열
- 감독
- 이준익
- 제작 / 장르
- 한국
- 개봉일
- 2017년 6월 28일
2017. 6. 28. 수.
너무나 멋진 영화, [박열]을 문화가 있는 수요일 저녁에 봤다. 할인 받은 가격이 미안할 지경인 정말 훌륭한 영화다. 별이 열 개 였다면 정말 열 개를 줘도 아깝지 않을 영화다.
알려지지 않은 일제 강점기 때 실존 인물을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영화, [박열]. 작년에 본 영화[동주]가 잔잔하고 먹먹한 감동이었다면, 이 영화는 확연히 다른 경쾌함을 넘어서 통쾌함을 주는 감동이었다. 분명 같은 시대였고, 일본에 의한 희생양이었지만, 색깔이 완전히 다른 두 사람. 영화 [박열]은 이준익 감독의 말대로 정말 경쾌했고, 발랄했고, 순수했으며, 가슴 속에 남는 메시지는 뭉클했고, 강렬했고, 끝나고 나서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정말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재판을 받고 이렇게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사형선고를 자처했을까... 라는 의구심을 품을 수 밖에 없을 관객들을 위해서 영화는 시작하면서 자막을 올려준다. 이 영화는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만들었고, 영화에 나오는 사건도 모두 실제의 사건이고, 등장 인물은 모두 실제 인물이며 이름도 실.제.라.고.!!! 이 자막이 아니었으면 감독의 허구와 상상력이 재밌긴한데 좀 과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본 정부가 주목하는 사회주의자들과 독립운동가들... 그들을 일본은 불령선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박열은 동지들과 함께 보란듯이 <불령사>라는 조직을 만들고, 상하이에서 직접 폭탄을 들여와서 일본 황태자에게 투척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하는 <사회주의 오뎅집>에서 얼마나 대놓고 뻔뻔한지 웃음이 났다.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인 일본여인 가네코 후미코도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볼수록 매력이 넘쳤다. 박열의 시<개새끼>를 읽고 반해서 함께 살자고 먼저 제안하고, 동거계약서를 쓰고, 마음에 안드는 일이 있으면 일단 대차게 뺨을 올려부치는 센 언니 ... 외롭고 어려운 어린 시절을 겪은 가네코지만 스스로 일하며 공부하고 바른 정신을 키운 여인으로 대도 세고 의리도 있고 순수함 그 자체다. 박열 또한 일본의 압박에 기죽지 않고 대항하는 모습은 보는 내내 당당함과 경쾌함 그 자체였다.
1923년 일본에 관동대지진이 일어나서 엄청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나는데, 일본 정부는 수습과 대책마련이 쉽게 되지 않자 다른 것으로 시선을 끌기 위해서 머리를 짜낸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탄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자경단이 무법적으로 조선인들을 죽이고 다니는 것을 묵인하면서 불령선인을 잡는데 혈안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 <사회주의 오뎅집>에도 일본 경찰이 들이닥치고, 박열은 혼자서 다 뒤집어 쓰기위해 잡혀준다. 오히려 자경단을 피하려면 유치장이 더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유치장까지 자경단은 들어와서 조선인들을 살상한다. 다들 잡혀 들어갔을 때, 일본인이기에 피할 수 있었음에도 공범이라고 주장하며 감옥까지 따라오는 가네코 후미코...
이들의 진짜 이야기는 감옥과 검사와의 심리, 그리고 재판정에서 시작된다.
특히 이들을 심리하는 일본 검사가 나오는데, 점점 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나름 합리적이고 공정한 역할을 하며 문명국(?)검사답게 조선인이라고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흔히 우리가 봐왔던 욕하고 고문하는 검사실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심리를 하면 할수록 이들의 얘기에 빠져들며 조선인을 혐오하는 내무장관에게 정치적인 이유를 내세워서 이들의 터무니없는 요구까지 들어주도록 하는 검사. 그걸 노린 박열은 후미코가 죽으면 무연고시신으로 아무곳이나 버려질 것을 걱정하여 혼인신고를 요청하고, 그 후에 고향에 계신 자신의 어머니께 증거로 보내줘야 한다며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요구한다. 그리고 검사는 그 요청을 들어주고, 이들은 지금 시대에도 민망할 것 같은 도발적인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이 사진은 나중에 각 나라의 신문에까지 나며 감옥에서도 하나도 겁먹지 않는 당당한 모습으로 조선인들에게는 웃음을, 일본인들에게는 조롱받는 기분을 선사한다.
감옥의 간수도 인상적인데, 따로 갇혀있는 이들의 편지를 계속 전달해 주면서 편지 검열을 하고, 후미코가 쓴 자서전을 읽고서 후미코를 이해하게 되고,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노려보던 눈빛이 변해서 나중에 안타깝게 바라보는 눈빛이 참 인상적이었다. 또 법정에 설 때 박열과 후미코는 한복을 입게 해줄것과 자신은 일본어가 아닌 조선어로 말할 것이니 통역을 세우라는 것과 재판관과 같은 높이의 의자를 만들어서 마주보게 할 것을 요구한다. 이 요구는 지금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인데, 이런 요구가 다 통하지는 않았지만, 요구를 했다는 자체가 정말 대담하고 신선하고 통쾌하다. 일본에서 대역죄인이면 조선에서는 영웅이 아니냐며 오히려 당당한 박열에게 일본인들은 오히려 당황한다. 의자까지 높이지는 못했지만, 한복을 입고 보무도 당당하게 박열과 후미코가 재판정에 들어서는 장면에서는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또 박열과 후미코를 공정하게 변호하는 일본인 변호사, 일본의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조선침략의 부당함에 반기를 들고 박열을 면회와서 사죄하는 일본 학생 및 기타 일본의 일부 지성인들이 있다. 일본의 침략은 잘못되었지만, 일본인 전체를 매도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던 장면들이다. 우리나라에도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듯이, 일본에도 침략의 야욕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으면 잘못된 것을 시정하려고 노력하는 바른 사고를 가진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천황에 대한 신격화에 일본인 모두가 찬성하는 것은 아님을 제대로 알려준 이준익 감독의 의도가 확 와닿았다.
내무장관은 박열과 후미코를 사형시키려고 하였지만, 국제사회의 비난을 면치 못할거라는 정치적인 의견 때문에 천황의 은혜라며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것은 참 기가 막히다. 천황에게 내려온 은사장(은혜를 베푼다는 증서였던 것 같다)을 감옥에서 받은 박열도 찢어버리고, 후미코도 찢어버린다. 하지만, 일본의 신문에는 감읍하며 받았다고 실리니, 이때부터 신문은 어용언론으로 믿을 게 못되었나보다. 뭐 전혀 증거도 없으면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고 서로 앞다투어 마구 기사를 쓰고, 자경단의 조선인 학살은 축소해서 올리는 신문들이 대부분 이었으니, 국가권력에 꼼짝 못하고 놀아나는 신문은 지금이나 그때나...
어쨌든 박열과 후미코는 서로 다른 형무소로 헤어지게 되고, 그 후 얼마 있다가 후미코는 죽었는데, 자살이라고 나오지만 그 사인은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내가 봐도 그 씩씩했던 후미코가 자살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형무소의 간수들에 의해 모욕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까 나름 추측해 본다. 박열의 부탁으로 박열의 친구들은 후미코를 박열의 고향으로 보내서 묻히게 한다. 그리고 박열은 22년을 감옥에서 지내다가 해방 후에 풀려나고, 나중에 납북되어 북에서 72세까지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딱 어울리는 당당하고 거친 연기를 선보인 박열 역의 이제훈.
발랄하고 단호하고 경쾌한 후미코 역의 최희서(어째 발음이 좋다 했더니 일본에서 살았다고 함),
문명인의 모습을 제대로 보인 차분한 일본 검사역의 김준한(감우성과 너무 닮았음),
야비하고 이기적이며 정치적인 일본인 내무대신 역의 김인우(이분은 일본인인줄 알았음).
자본과 국가의 눈으로 보았을 때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개새끼’에 불과하더라도,
‘내 머리에 오줌을 갈기는 권력자의 다리에 나 역시 오줌을 갈기겠다’는 패기와,
‘내 몸이야 마음대로 죽일 수 있겠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 하겠느냐’는 기개로 산다면,
인간은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니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저항하니까 인간이다. 박열처럼! 후미코처럼!
--- 칼럼리스트 황진미의 [박열]영화평 중에서 ---
연기 잘하는 배우들과 멋진 시나리오, 대단하신 감독님께서 정말 멋진 영화를 만들어 주셨다. 이 영화도 호불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흥행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의 독립투사 박열과 그 친구들, 그리고 우리를 도우려던 일본인들... 많은 우리 후손들이 그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독립투사들과 그들의 눈물겹지만 당당했던 투쟁기들이 더 많이 밝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과 그들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멋진 영화에 가슴 한편이 먹먹하기도 했지만, 멋진 청년 박열과 역시 멋진 아나키스트 후미코의 당당함에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가버린 유쾌, 상쾌, 통쾌한 시간이었다.
좌측은 진짜 박열과 후미코의 사진이고, 우측은 영화 속에서 재연된 박열과 후미코의 사진.
그 시대에 그것도 대역죄인으로 재판을 앞두고 있는 조선인이 일본에서 저런 장면을 연출해서 찍다니...
사형을 구형 받을 것으로 예상했더라도 이런저런 요구를 당당히 하고 하고싶은데로 해낸 두 사람,
정말 대단하고 대단하다. 스스로 아나키스트라는 것을 인정한 깨어있는 의식도 대단하고,
일본인이면서도 조선에 대한 침략과 살상이 잘못된 것임을 거침없이 비판하고 부끄러워하는
후미코도 멋진 여성이다. 법정의 판사 앞에서도 절대 쫄지않는 두 사람, 정말 엄지척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얘기해 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장난기 넘치는 박열의 요상한 손의 위치를...
이렇게 먼훗날 이 사진이 남아 얘깃거리가 될 것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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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