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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온 파이어
글쓴이
수재나 캐헐런 저
골든타임
평균
별점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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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손에 쥐기까지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자주 찾는 전문지 웹페이지에 떠 있던 광고 때문이었다.

브레인 온 파이어? 뇌에 불이 났나? 그럼 뇌전증?

함께 게재된 동명의 영화 포스터는 한낱 로맨스 드라마로 치부될 수 있는 분위기.

그냥 뇌전증 환자를 잘 보살펴 준 남친과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인가 보다 싶었는데

그래도 이 전문지는 맹목적인 다른 언론사와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있기에

자기네 웹페이지에서 눈에 띄게끔 광고를 게재한 것은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터.

국내 최대 인터넷 서점으로 가서 다시 검색했다.

글쓴이는 저널리스트, 그러니까 기자인데 어떤 희귀병에 걸렸고

진단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기록한 논픽션.

의례 이런 종류의 책 소개에는 독자에게 충동구매를 강요하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

아마존 판매 1위라던가,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라던가 하는 등등의.

역시,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논픽션 1.

그런 따위에 감히 속아 넘어가지는 않는다,

게다가 손가락 오그라들게 만드는 영화 포스터 하고는......

하지만 결국 구매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겉표지에 그려진 시계 그림이었다.

이건, 학생 때나 이후의 연수강좌 등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그림이 아닌가.

출판사 리뷰에는

마지막으로 합류한 수헬 나자 박사의 도움으로 극적인 전환점을 맞게 되었고

신종 자가면역질환의 한 종류로 진단받아 기어이 희귀병을 극복해 내었으며,

자신의 경험을 최대한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 위하여 노력 중이라는 소개가 있었다.

다시 찾아간 국내 포털 사이트 영화 검색.

영화는 2017127일 국내 개봉, 2016년 토론토 국제영화제 상영.

예고편에서 보여주는 전형적인 뇌전증 발작.

이쯤 되면 충동적이긴 하지만 구매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간적 순서를 따지자면 2012년에 미국에서 책이 나왔고,

베스트셀러 논픽션으로 뜨니까 영화도 만들어졌을 텐데,

그 영화가 개봉되고 한 달 반 지난 시점인 

2018122일에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으므로

출판사 브랜드인 골든타임과는 서로 사맛디 아니하다 하겠다.

아마 판권구매로부터 번역출간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적 격차가 원인이기도 하겠지만,

이왕 영화가 국내에 상영되는 거라면

그리고 띠지에 영화포스터를 이용할 요량이라면,

물리적 불가항력에 의한 시간적 차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는 없었던 것일까?

국내 최대라는 온라인 서점에 4월 중순인 지금도 독자 리뷰가 한 편도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전문매체인 청년의사가 그동안 외국서적들을 번역출판하거나

국내 서적을 펴내면서 꾸준히 유지하던 사명(社名)을 버리고

단행본 출판 브랜드를 출범시켰다는 사실에 축하도 드리고, 내심 기대도 걸어본다.

2. 책 내용

딱 한 줄로 요약하면 바로 이거다.

저널리스트인 환자가 기록한 NMDA수용체 자가면역성 뇌염의 증례보고

일반 독자라면 그저 평이한 자전적 회고록으로 읽힐 수 있겠지만,

처음 책을 폈을 때 가슴이 턱 막히는 문구를 접하게 된다.


아직 진단이 나오지 않은 이들에게 바친다.”


대부분 속표지의 제목과 지은이를 나타내는 장을 넘기면

왼편에는 저작권과 관련된 내용이 기재되고 오른편에 헌정사가 적히기 마련인데,

이 책은 거기에 저렇게 인쇄된 활자가 찍혀있다.

그렇지, 진단이 나오지 않는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자신의 병명이 무언지 모르고 치료받거나 약 먹는 환자들이 셀 수도 없을 텐데.

현대의학에서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선언하다시피 할 수 있는 병태보다는

그러지 못한 상태가 더 많다는 점은 사실이기도 하지만

일반인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의사들의 행태로 비추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극적인 부분은 바로 이 장면이기도 하다.

처음 만난 개원의 솔 베일리 박사로부터

뉴욕 대학교 랭곤메디컬 센터에 입원 후 만났던 데브러 루소 박사,

그리고 엄마의 기대를 저버린 윌리엄 시걸 박사(책에선 내내 벅시로 소개된다.)까지

-실명인지 아닌지 그것까지는 검색해보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진찰, 검사, 설명 등의 과정을

그들은 성실히 수행하는 듯싶지만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실망만 안겨줄 뿐이다.

정신병원 입원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병명인 

정신증psychosis으로 진단되려는 찰나,

뇌척수액 검사의 사소한 이상 소견을 근거로

윌리엄 시걸 박사는 수헬 나자 박사에게 도움을 청하고

나자 박사는 (책 표지에 나오는) 시계 그림을 그려보게 한 다음

희귀한 종류의 뇌염을 의심하게 되면서 뇌 생검까지 받은 후 확진을 받게 된다.

그리고 공격적인 스테로이드 요법, IVIG 요법, 혈장 교환 요법을 받고 

회복되었단 얘기.

도중에 공감이 갔던 내용 몇 줄만 적어 보겠다.

 

박사는 차트에 이를 메모했다. 이때 나는 몰랐지만, 의사들은 보통 그런 수치를 두 배, 심지어 세 배로까지 늘려서 받아들이는데. 이는 환자들이 자신의 나쁜 버릇에 대해 거짓말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pp.83-84

부모님 생각에, 의사들이 자기네가 병의 정체를 영영 알아내지 못할 것 같다고 비관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듯 했다. (중략) 엄마가 오랫동안 의사들과 이런저런 일을 겪어 오면서 양성 검사 결과를 바란 것은 이때가 유일했다. p.175

 

책은 모두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는 뉴욕대 부속병원에 입원하기 전, 2부는 입원기간, 3부는 퇴원 이후의 일들이다.

원저자가 저널리스트이다 보니 잘 짜인 신문기사처럼

줄거리의 흐름도 원활하고 군더더기 없이 읽기 쉽게 편집되어 있다.

3부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근무하는 신문에 기사로 보도한 이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희귀병을 알리고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들과

생존자의 죄책감과 같은 내용들로 채워져 있고,

또 자신의 질병을 보도하고 책으로 내기 위하여

까다로운 전문지식을 쉽게 풀어내기 위해 매진한 흔적들도 있다.

따라서 의학에 전문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읽어내기에는 무난하다고 보여 진다.

한편으로는 이런 단행본을 엮어내기 위한 전문번역가의 노고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혈액-뇌 관문, 해마, 편도, 신경전달물질, NMDA 등과 같은 익숙한 전문용어들과

직접 강의를 듣거나 그림과 도해를 통해서 조차도 알쏭달쏭한

식세포, B세포를 섭렵하는 면역체계 따위의 어려운 설명을

번듯하니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내는 근원은

아무래도 저널리스트인 지은이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지 싶기도 하지만

전문용어를 제대로 번역해서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은 또 다른 이야기다.

고마워요, 번역 작가님.

특히 서술기억과 수행기억의 차이를 설명한 부분에서는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나올 정도로 잘 설명되어있기도 하다.

사실 신경외과 전문의로서도 3부의 병태생리를 설명하는 부분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할 만큼이긴 했다.

마치 증례보고의 논의를 읽는 느낌.

그렇다, 의사들은 고작 논문 서너 페이지로 요약되는 증례보고 취급하겠지만

막상 그렇게 보고되는 희귀 질환을 앓는 환자들은

이 책의 지은이만큼이나 기구하고 애틋한 사연들을 가지고 병과 싸우고 있으리라.

 

3. 닮은 점 vs. 다른 점

의사들이 여러 진단명들 사이에서 보다 사실에 가까운 근거를 찾아 애쓰는 동안

환자와 가족들이 경험하는 낙담과 불신이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마음가짐이야 그쪽이나 우리나 비슷하겠지만 태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첫 입원 후 약 3주간 여러 검사를 하고

면역글로불린 요법까지 시도했지만 기대했던 묘약이 아니었고,

벅시 박사는 이제 이 일에서 손을 뗐고,

이쯤 되면 담당의사에게 닦달을 하거나

본인 부담금 중간 정산을 요구하는 원무 직원에게 어깃장을 놓거나

당장 진료기록과 영상기록 복사해서 수도권 빅5병원으로 가겠다는 모습들이

늘 겪곤 하는 우리나라 병원의 모습이겠지만,

이혼한 부모님의 태도는 냉정하리만큼 차분하다.

오히려 이혼과 재혼으로 따로 살림을 차리고 있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상호간에 매우 협조적이기도 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생부이고 생모이고 다 큰 딸자식이 병신이 되다시피 했으니

그 즈음에 정신 나간 환자 못지않게 난리법석을 떨 수 있겠다 싶은데,

그런 몰상식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하기는 거기도 명색이 뉴욕대학교 병원이다 보니 그런 점도 있겠지만.

그리고 딱, 그 순간에 나자 박사의 존재가 드러난다.

그리고 지은이의 경우

처음 자신을 알코올 금단 증상으로 믿었던 베일리 박사에 대한 평가도 경이롭다.

좀 야박하게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오진이 되는데,

이 책 어디에도 그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역시 저널리스트의 글이어서 그런지

혹은 국내 판권소유자가 의료계 전문매체여서 그런지

원서를 직접 읽지 않아서 알 수 없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처음 진료한 의사의 오진에 대한 악감정은 당연한 수순일 텐데.

 

베일리 박사는 내 사례에서 실수한 것을 인정하진 않았지만,

확실히 거기서 교훈을 얻긴 한 모양이었다. p.371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보호자의 심정은 마찬가지인지라.

지은이의 기사가 나간 후 다른 병원에서 비슷한 질병을 의심한 에밀리 개비건의 경우

처음 3주간 입원 치료를 담당했던 정신과 의사의 반응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그는 자신이 뭔가 놓치기라도 했다는 식으로 간섭을 받아 기분이 몹시 언짢아진 듯했다. p.344

라고 했는데, 이런 점은 거기나 여기나 마찬가지이겠구나 싶은 부분도 있었다.

 

100만 달러가 넘는 비용이 든 혈액검사와 뇌 정밀 검사라는 부분에서는

나도 턱이 딱 벌어졌다.

물론, 100만 달러의 본인 부담금이 아닌 비용이긴 하지만

국내 사정 같다면 10억의 5%쯤에 해당하는 오천만원 가량이 되지 않을까 추정했다.

입원비, 지속적 뇌파 모니터링, 두 세 번의 MRI 검사와 두 번의 뇌척수액 분석까지.

물론 달마우 박사가 고안해서 시행하고 있는 검사키트와 뇌 생검을 제외하고 말이다.

결론처럼 보이지만 꼭 인용해야 하는 부분이 한 군데 더 있다.

 

미국의 오진율이 1930년대 이후 줄곧 제자리걸음인 시대에 사는 우리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항상 두 명 이상의 의사에게 소견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그는 결함 있는 의료체계, 즉 신경과 의사들이 하루에 X명의 환자를 5분씩 봐야 최소한의 수익을 유지할 수 있는 불완전한 체계의 부산물이다. p.333

이건 국내 사정도 마찬가지, 아니 더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는 않을걸.

 

4. 사족

만약, 우리나라에서 어느 환자가 이런 질병을 앓고 있다면?

정확히 조사해보지 않아서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달마우 박사의 검사 키트를 과연 국내에서도 활용가능한지의 여부에 달려있는

진단의 어려움을 별개로 하더라도,

국민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의 까다로운 신의료기술 평가에 

지루한 세월이 요구될 것이고,

그래서 제대로 진단받아 나중에 거의 정상생활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를

많은 젊은 여성 환자들이 정신병원에 신환으로 입원하여

일생을 난치성 환자로 버려지게 될 공산이 크다고 판단되고,

가까스로 인정이 된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교묘한 요건들로 인해

글쓴이처럼 공격적인 스테로이드 요법, IVIG 요법, 혈장 교환 요법 등을

횟수 제한 없이 충분히 받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읽던 도중에 딱 한 군데 금방 유추되지 않는 용어가 있었는데, 섬 피질.

읽다보니 그건 insular cortex였다.

하긴 해부학도 학문이다 보니 용어의 변화가 있기 마련인데

그사이 우리말 번역 용어가 많이 세련되어졌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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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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