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입니다

크리스탈호이
- 작성일
- 2020.9.24
빨강머리 앤이 사랑한 풍경
- 글쓴이
- 캐서린 리드 저
터치아트

독자들은 앤과 많은 면에서 닮았던 몽고메리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앤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더 감동하게 될 것이다. (중략) 나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앤과 모드와 함께 나무가 줄지어 선 ‘연인의 오솔길’을 걸었고, 수선화
흐드러진 들판에서 소풍을 즐겼으며, ‘유령의 숲’에서 하늘을
가린 무성한 나뭇가지를 이불 삼고 고사리를 양탄자 삼아 낮잠도 자보았다. 부디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빨강머리앤과 몽고메리, 프린스에드워드섬을 아우르는 시간여행, 문학여행, 문화여행, 자연여행을 충분히 즐기기 바란다. 그리고 그 여행이 독자들의 힘겹고 무료한 일상을 잠시나마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기를. (p. 263 옮긴이의 말 中)

내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 시리즈를 좋아했던 건 너무나 사랑스러운 주인공 앤과 앤이 사랑하는 멋진 풍경들 때문이었다. 소설을 읽고 있으면 밝고 긍정적인 앤의 모습도 좋지만, 소설속의
풍경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되어 이 소설을 한층 더 예쁘고 사랑스럽게 만들어준다. (나는 이 소설만
읽으면 숲 속 오솔길을 산책하고 싶어진다.)

소설을 읽으며 앤이 찬양해 마지않는 그 풍경들이 너무나 궁금했었다. 연인의
오솔길, 유령의 숲, 빛나는 물의 호수 등... 예쁜 별명들을 붙여주고 볼때마다 감탄했던 그 풍경들 말이다. 빨강머리
앤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작가가 보고 느끼며 그려낸 풍경들은 실제로 어떠할지
너무나 궁금했다. 머릿속에서 내 나름의 경치들을 꾸며가며 소설을 읽었는데 (나는 애니메이션으로 보지 않아서 정말 내 멋대로 상상할 수 있었다) 그것이
실제와 얼마나 다를지 궁금증을 가득 안고 책을 펼쳤다.
책 띠부터 시작해서 이어지는 풍경들이 정말 멋지다. 그런 곳을 뛰어다니며
놀았을 작가가 부럽고, 소설 속의 앤이 부러웠다. 요즘처럼
외출이 어려운 시기에 사진과 글로 라도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그냥 멋진 사진도 아니고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빨강머리 앤이 사랑한 풍경이니 말이 필요없다.

작가는 인정하지 않았다지만, <빨강머리 앤>은 몽고메리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면이 작가와 비슷하고 어떤 부분이 다른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앤 셜리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성격(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성적이며 자연과 정원을 사랑함)과
성장 환경(부모 없이 노부부 아래에서 자람)은 비슷하지만, 구체적인 주변 인물들의 성격은 조금 달랐다. 작가를 키워 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소설 속 매슈, 마릴라와는 달리 작가를 따스히 보듬어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작가가 어린시절 원했지만 받을 수 없었던 것을 자신을 똑닮은 소설 속 주인공에게 줌으로써 어린시절의 자신을
위로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빨강머리 앤의 주인공인 앤 셜리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에게 찾아온 문제와 걸림돌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고, 그 대신 자신이 사랑하는 자연속으로 가 그것이 주는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찾아 돌아온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가진 것을 보는 힘을 앤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 채워가는 것이 그녀를 더 나은 삶의 방향으로 이끌어간 비결처럼
보인다.

앤 셜리를 만들어 낸 몽고메리 역시 그러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니 비슷한 성향을 가졌으나 다른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당시에도 몽고메리의 일기장이 출판되기
전까지는 작가의 내면 속 어두움을 알았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몽고메리가 그려 낸 작품 속 캐릭터들은
뛰어난 상상력과 긍정적 에너지로 삶에 찾아오는 시련들을 지혜롭게 넘어간다. 그녀가 꿈꿔 왔지만 이루지
못했던 삶의 모습을 그녀를 닮은 소설 속 주인공들이 대신 이루어가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아픈 마음을 다독이고 어루만져준 것은 아닐까.

책 속 멋진 사진들이 나에게 부족했던 초록빛을 채워주었다. 최근에
찍은 사진들과 당시에 찍은 흑백사진이 섞여서 실려 있는데, 흑백사진들 중에는 몽고메리가 직접 색을 입힌
사진들도 있어 신기했다.
사진 속 초록지붕 집을 보며 그곳에 너무나 가보고 싶었다. 물론 빨강머리앤
박물관이 되면서 소설 속의 풍경을 되살리기 위해 꾸며진 상태이지만, 그래도 <빨강머리 앤>을 사랑하는 독자로써 너무나 가보고 싶은
공간이다. 내 상상 속의 공간을 실제로 만나보고 싶다.

소설 속에서 앤이 예쁘고 개성 있는 별명을 붙여주었던 공간이나 꽃, 나무들을
사진으로 볼 수 있는 것도 궁금증을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숲에서 피는 수줍음이 많은 꽃’(린넨풀), ‘빛나는 물결의 호수’(캠벨
호수), 이 꽃을 모르는 것은 비극이라고 하던 ‘메이플라워’, ‘유령의 숲’ 속 마른 덤불과 나뭇가지들의 모습, 가장 궁금했던 ‘연인의 오솔길’의
풍경도 사진으로 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는 이곳도 많은 발전을 해서 현대식 교통수단과 골프장, 놀이공원
등이 들어서 막상 방문하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지만, 그럼에도 책 속의 풍경들은 프린스에드워드섬의
여전히 남아있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있다.
<빨강머리 앤>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름답게 묘사된 소설 속 풍경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빨강머리 앤이 사랑한 풍경>을 꼭 읽어 보길 추천한다. 자연과 정원을 사랑한 루시 모드 몽고메리와 앤 셜리의 이야기, 그리고
프린스 에드워드섬의 풍경들은 나에게 행복을 충전해주었다. 내가 책 속에서 찾아낸 즐거움의 조각들을 다른
이들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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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