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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여부
- 작성일
- 2012.5.31
어제 <은교>의 박범신 작가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했었는데 아직 젊은이들처럼 정정하신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풀잎처럼 눕다>, <물의 나라>, <불의 나라>, <죽음보다 깊은 잠>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들이 영화로도 만들어지기도 했었는데 '93년 갑자기 절필하고 잠시 쉬시기도 하였지요. 요즘 고향 논산에 계시는데 강의 때문에 가끔 서울에 올라온다고 합니다. 한시간 반 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생에 대한 이야기, 창의와 창작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은교>에 관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먼저 등산 이야기로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등산에는 두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가 극지법(極地法) 등반으로 정상정복을 목표로 높이 경쟁을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영국의 힐러리경이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한 이후 이젠 전근대적 방법이 되어 버렸답니다. 이젠 두번째 등산방법인 등로주의(登路主義)식 등산이 대세랍니다. 장비와 타인(셰르파)의 도움을 최소화하고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을 중시하는 등산법이라고 합니다. 정상과 높이가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지도를 만들어 가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지요.
우리 인생에서 성공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정복해야 할 목표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극지법 등산방식은 진정한 만족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창조적 삶도 불가능하고요. 그래서 등로주의식으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것이 진정한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안전한 삶은 습관을 만들어 창조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박범신 작가는 창의성은 리듬이라고 정의합니다. 충만의 상태와 거리가 먼 결핍의 상황에서 감정의 편차가 발생하고 이것이 결국 창작의 원동력이 된다고 합니다. 부러운 것은 '93년 절필하고 몇년이 지났을 무렵 수많은 '감수성의 나비'들이 날라 들어오더라는 겁니다. 상황을 묘사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많은 재료들이 눈앞에 어른거려 거기서 적당한 곳을 골라 쓰기만 하면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와 당시의 상황사이에 괴리가 큰 상황이었다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최근의 화제작 <은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젊음에 대한 결핍, 나이듦에 대한 스트레스, 영원히 살수 없는 것에 대한 슬픔과 원망같은 것들이 집필의 동기가 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원작에는 70대 늙은이의 늙어가는 슬픔과 카리스마를 나타내려고 했는데, 영화에서는 17세 소녀와의 에로티시즘에만 너무 촛점을 맞추었다고 평가하시네요. 단순한 성취목표 너머의 진정한 꿈, 그리운 저기와 아직 상처투성이인 여기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감... 이러한 비전에 대한 현실의 결핍이 아직 창작의 원동력으로 왕성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결핍을 키우고 창의력의 원천으로 활용하려면 결국 원하는 그리움의 깊이를 키워나가는 방법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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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