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문학

goodchung공식계정
- 작성일
- 2012.12.31
행인 行人
- 글쓴이
- 나쓰메 소세키 저
문학과지성사
'What Women Want'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주인공 닉은 여자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이 '여자가 되어 보기'로 결심하고 여자들처럼 화장도 하고 여자들 속옷도 입어보며 조만간 자신이 여자들의 욕구에 맞는 광고 기획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기분이 으쓱해지는데, 순간 욕실 바닥에 넘어져 정신을 잃고 만다.
다음 날, 닉은 이상한 환청에 시달리게 된다. 주위 여자들은 분명 입을 다물고 있는데, 닉에게는 그녀들의 속마음이 다 들리는 것이다. 이 때부터 멋진 일들이 전개된다. 영화의 설정처럼 무딘 남자의 감성으로 여자 마음을 제대로 알아차린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행인>애서 남자가 자신의 아내조차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책 제목도 행인인가 보다. 독일 속담에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는 없다' 는 말이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주인공 나가노 지로와 그의 형인 이치로, 형수인 오나오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인간심리와 감정추이를 묘사한다. 그러면서 남자와 여자, 아니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도 진정한 상대방 이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학교수로 학문하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인 형 이치로는 따뜻한 정은 부족하지만 주위사람들에게 훌륭한 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자신에게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스스로 타인과 깊은 관계의 단절을 초래하고 만다. 집에서 그의 부모도 아내도 동생도 그와 한 자리에 모여 마음을 터놓는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낄 정도이다.
이 소설은 이치로가 아내와 남동생 지로와의 관계를 의심하고, 마침내 아내의 정절을 시험해 보기로 결심하는 데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인간 내면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쳐 그 진상을 극단까지 끌고 가 타인불신으로 인하여 인간내면의 모순과 암울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통해 인간실존에 대해 통찰하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섬인지' 아니면 정현승 시인의 말처럼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간의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의심의 눈초리로 상대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애정과 이해하려는 그런 마음을 앞세워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가족들에게 이치로를 욕하기 전에 그가 처한 고독감을 이해하고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라는 조언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는다.
- 좋아요
- 6
- 댓글
- 2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