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문학

goodchung공식계정
- 작성일
- 2013.11.9
걷기예찬
- 글쓴이
- 다비드 르 브르통 저
현대문학
내가 집을 나설 때 꼭 챙기는 것은 책 한 권과 함께 하루 걷는 걸음수를 측정하는 만보기이다. 바쁘게 살다 보니 이젠 걷기가 유일한 건강 챙기기 수단이 되어 버렸다. 하루 만보를 채우기 위해 평일에는 사무실이나 집 근처에 걷고, 주말에는 산과 들을 찾는다. 생각해 보면 걷기야말로 몸으로 하는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하면서 걷기보다는 타는 것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 사실 문명의 발달이란 것이 우리 몸 주위에 거추장스러운 보조장치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었고 그러는 사이 우리의 몸은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삶에서 점점 소외되는 보조적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 책은 건강을 위해 걷기를 권장하는 그런 책이 아니다. 오히려 걷기의 본질을 탐색하는 철학적 산문집에 가깝다. 속도의 제어를 통해 몸이 자유로운 감각을 회복하는 걷기의 본질을 탐색하는 동시에 걷기의 즐거움을 이야기한 수많은 걷기 대가의 말들을 소개한다. 그래서 우린 이 책에서 장 자크 루소, 스티븐슨, 피에르 상소, 일본의 하이쿠 시인 바쇼을 만나게 된다. 걷기와 관련된 그들의 주옥같은 말과 철학적 성찰에서 길을 걷는 쫄깃한 맛들을 느껴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켜 준다.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자동차의 속도감은 우리를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게는 만들지만 주변 세상을 만나는 진정한 기회를 만들어 주지 못한다. 외려 우리는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을 때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이런 측면에서 걷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길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몸의 속도에 맞추는 삶, 느리게 산다는 것이 가져다 주는 진정한 삶의 예찬, 생명의 예찬, 인식의 예찬을 여러가지 측면에서 고찰하고 있다.
걷기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간단한 산보나 도보여행도 있지만 자신의 신념이 드러나는 순례길이나 고행의 걸음도 있다. 걷기는 삶의 불안과 고민을 해소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과 정신의 고양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비노바 바베는 인도 전역을 걸으면서 부유층들이 자기 땅을 기증하도록 유도했고, 한비야는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을 돌면서 구호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발로 걷는 사람이 자동차로 이동하는 사람에 비해 거만하게 구는 일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걷기에서 자신의 나약함을 느끼고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기회를 갖는 동시에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의 고마움을 깨닫는 자기 만남의 순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시생활에서도 물론 걷기가 가능하다. 그러나 걷기란 일에 필요한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한 걷기이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의 연장선일 따름이다. 아런 측면에서 진정한 의미의 걸을 수 있는 세계는 점점 줄어든다고도 할 수 있다. 걷기란 '미친 듯한 리듬을 타고 돌아가는' 현대성에 대한 도전이며, 자잔한 일상에만 관심을 두는 삶에서 나는 누구인지 근본적 질문을 묻는 삶으로의 전환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기 위해서는 현대인이여! 걸을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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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