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

binonda
- 작성일
- 2009.1.3
당신의 뇌를 믿지 마라
- 글쓴이
- 캐서린 제이콥슨 라민 저
흐름출판
사람들은 흔히 나이를 먹으면 건망증이 심해진다고들 말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한다거나 어디다 물건을 두고 찾지 못한다거나 하는 것을 나이 탓으로 돌리는 것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건 일종의 자기합리화 일뿐 나이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건망증을 나이 탓으로 돌리기엔 무언가 석연치 않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난 어려서부터 가수 이름이나 배우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화를 나눌 때 주변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전날 본 드라마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척이나 곤혹스러웠다. 심지어 길을 걷다 초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보고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대충 아는 척만 하고 지나친 적도 있다. 그때 난 중학생이었다.
한편 우리 할아버지는 1920년대생이신데 여전히 좋은 기억력을 유지하고 계신다. 특별히 책을 읽으시는 것도 아니고 머리를 쓰시는 것도 아닌데도 어떤 일을 이야기하실 때 말씀이 막히시는 법이 없다. 게다가 어렸을 때 잠깐 배우신 일본어를 지금도 잊지 않고 계신다. 이를 통해 보면 건망증이 비단 나이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SK의 야신(야구의 신) 김성근 감독이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을 보더라도 건망증과 나이는 별도의 문제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히려 자라는 과정에서 뇌에 어떤 영향을 받아 건망증이 심해졌다고 보는 것이 내 입장에선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이 책은 건망증이 혹 알츠하이머병(치매)로 이어지진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안겨주는 책이다. 저자는 대표자의 마음으로 뇌에 관련된 진단과 치료를 받아가면서 많은 이들이 걱정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해결책을 구하고 있다. 뇌에 관해 저명한 의사나 박사를 직접 만나 상담도 나누기도 하고 그들의 제시한 해법도 들어가면서 과연 저자가 겪고 있는 건망증이 정상인지 아니면 비정상인지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건망증은 분명 뛰어난 두뇌를 자랑하며 사용하는 사람들에겐 크나큰 재앙이 아닐 수 없다. 높은 지위나 명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 건망증이 민감하게 느껴질 것이다. 쓰나미처럼 갑자기 닥친 이 건망증으로 인해 지금까지 이룩한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이들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알츠하이머병을 현대의 의학수준으로는 고칠 수 없다는데 있다. 만약 치료약이 존재하고 고칠 수만 있다면 이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첨단의학시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도록 하루빨리 건망증이나 치매에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이 책은 총 4개의 파트로 구성이 되어 있다. 주로 저자의 경험담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데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서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상처받기 쉬운 뇌’를 말한 부분이다. 여기서 저자는 “어린아이들이 이마에 받은 충격은 장기적으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거론하고 있다. 이 글을 보고 내 뇌리를 스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막내 동생이 어렸을 때 계단에서 굴렀던 일이다. 부모님이 뇌에 관련된 지식이 조금만 있으셨다면 동생을 바로 병원에 데려가서 뇌 검사를 시켜봤어야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동생을 단지 방안에 뉘여 놓으셨을 뿐 어떠한 조치도 취하시지 않으셨다. 입에 거품을 물고 경기를 일으켰는데도 이렇게 방치하셨던 것이다. 막내는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는데도 우리 둘에 비해 학업성취도가 상당히 낮았다. 게다가 무엇을 설명해줘도 단번에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똘똘했던 어린 시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어렸을 때의 이 뇌진탕이 동생에게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이 분명하다. 좀 더 내가 잘 보살피고 잘 돌봤어야 했는데 꿀밤을 때려가며 뇌에 더 안 좋은 영향이나 준 것이 너무나 미안하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하루 8시간 푹 자지 못하면 뇌는 비상사태로 인식한다.”고 말한 부분이다. 여기서 저자는 나이가 들면 잠을 덜 자도 된다고들 말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고 매일 8시간 정도 잠을 자지 않으면 두뇌는 난관에 부딪힌다고 밝히고 있다. “하룻밤을 꼬박 새는 것은 혈중 알코올 농도가 법적 허용치를 넘긴 상태에서 운전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라고 주장한 마크 마호왈드 미네소타 대학 신경학 교수의 말도 전하고 있다. 난 잠을 잘 자야 두뇌가 제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늘 수면을 충분히 취하는 편이다. 물론 시험 때는 약간 줄이긴 하지만 그래도 밤을 새우지는 않는다.
그런데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는 대학의 학생들은 시험기간이든 평상시든 밤을 지새우며 공부를 한다. 특히 하버드 대학은 밤새 도서관에 불이 꺼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뇌가 제대로 능력발휘를 못하는데도 이렇게 밤을 새워 공부를 하는 것일까? 의학적으로 보면 올바른 행동이 아닌데도 왜 그들은 잠을 줄여가면서 공부를 하고 그런 밤새워 공부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일까? 과연 뇌에 관한 상식이 있으면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자신에겐 해당이 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해 수면을 줄여가며 공부를 하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약은 기억력을 훔쳐가는 도둑’을 말한 부분이다. 의사들은 약을 처방해줄 때 약효는 설명해주면서 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아니 그동안 내가 병원을 다니고 수술까지 받는 과정에서 난 단 한 번도 처방전이 기억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저자가 밝힌 바에 의하면 감기약조차도 기억력을 앗아가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그동안 우리들이 무심코 복용했던 약들이 우리의 기억력을 좀먹고 있었다니 그 어느 누가 이 사실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치매에 마땅히 치료방법이 없는 마당에 소중한 뇌를 상하게 하는 행위를 방치하다니 의사나 약사들이 괘씸하게 느껴진다. 정부 당국자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수많은 이들이 건망증으로 고통 받고 있고 치매를 두려워하고 있는 마당에 방안은 내놓지 못할망정 뇌를 상하게 하고 있는 행위를 방치하고 있다니 정말이지 한심할 따름이다. 하루라도 빨리 이를 시정하고 조치를 취해주길 바란다.
뇌는 그 어떤 기관보다도 소중하다. 하지만 이에 관련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뇌를 안 쓰는 사람은 없다. 죽을 때까지 누구나 사용하는 것이 바로 두뇌다. 그만큼 오랫동안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닐까? 세상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하는 바이다.
인상적인 어구
“하루에 사과 한 알이면 의사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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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