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작가상 응모소설 "이안 킴" 연재

daedoo2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1.10.30
이안킴 5
제3 자
“뭐라고?”
남자가 전화기에 대고 이야기 했다.
일이 생각보다 커지고 있었다. 이미 석 달 전에 끝났어야 할 일이었다. 그 놈만 아니었어도...그가 화가 난 것은 일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계획에서 벗어난 일이 생겼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끊고 잠시 창가로 들어오는 달빛을 구경하던 남자는 무언가 결심을 내린 듯 했다. 그래 포기하지 말자. 막대한 보상을 놓칠 수는 없었다.
이안킴 6
잠입
샤워기의 물을 맞으며 계속 그 생각을 했다. 놈은 앤디를 어디로 데려 간 것일까?
그 순간 그는 문득 자신이 앤디의 걱정을 너무 하다 보니, 놈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찰칵」
신경이 예민해진 이안은 샤워기를 잠그고 귀를 기울여 보았다
「찰칵」
분명히 일층 정문의 잠긴 손잡이를 돌리는 소리였다. 그는 머리카락이 곤두 서는 것을 느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안은 타월을 집어 들었다.
‘문고리를 따는 데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 것이다.’
이안은 2층 샤워실의 불을 껐다.
‘생각을 하자. 생각을’ 이안은 계속 되뇌었다. 몸의 물기가 떨어지지 않게 수건으로 몸을 훔친 뒤, 몸을 숙인 채 샤워실을 빠져나와 침실로 향했다. 침실 문지방을 넘어가며 이안은 손으로 털어 머리카락의 물기를 입구에 살짝 떨어뜨렸다. 희미한 침실 등을 켠 뒤 베개를 침대 가운데에 놓고 이불을 덮었다. 침실을 빠져 나오며 방문을 살짝 열어 두었다. 그는 다시 샤워실로 와서 몸을 숙인 채 고개만 살짝 내밀어 보았다.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불빛에 비친 그림자가 이층 복도 바닥에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삐이그덕」
잠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삐이그덕」
아주 조심해서 계단을 올라오며 2층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보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이안은 재빨리 샤워실 문짝 뒤로 몸을 바짝 기대섰다. 혹시 일이 잘못돼서 그 놈이 침실을 지나쳐서 샤워실 문을 밀고 들어오면 문으로 힘껏 들이밀어 버릴 생각이었다. 이안은 마른 침을 삼켰다. 영원처럼 느껴지던 삐그덕 소리가 끝이 나고 침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발소리가 침실 안으로 들어섰다. 하나, 둘, 셋을 헤아린 뒤, 이안은 발뒤꿈치를 든 채 살짝 열린 침실 문을 잽싸게 지나서 일층으로 내려갔다. 곁눈길로 보니 놈은 등을 돌린 채 침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관자노리에서 맥박이 수십 번을 뛰는 것이 느껴졌다.
‘됐다’
소리를 죽인 채 날다 시피 계단을 달려 내려와 일층으로 내려선 이안은 부엌으로 갔다. 싱크대 앞의 문을 연 뒤 부엌칼을 움켜쥐며 이안은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다. 이안은 싱크대 뒤쪽에 몸을 낮춰 숨었다. 그는 칼날이 아래를 향하게 칼을 고쳐 쥔 뒤, 칼을 자신의 가슴 가까이로 당겼다. 다가오면 허벅지든 가슴이든 깊이 박아버릴 작정이었다. 위층에서 나던 쿵쾅거리던 발걸음이 다시 일층을 향했다.
「스걱, 스걱」
1층의 카펫 위를 느린 박자로 소리죽여 한 걸음씩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고통이었다.
세 걸음, 두 걸음, 한 걸음
쭈그려 앉은 이안은 자신의 눈높이 쯤 싱크대 뒤로 놈의 허벅지가 나오자 그대로 칼을 박아버렸다.
“젠장”
놈이 비명이 섞인 욕을 내뱉으며 주저앉았다. 이안의 얼굴과 벌거벗은 몸에 피가 튀었다.
이안은 넘어진 놈의 위에 올라타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나 놈은 역시 프로였다. 허벅지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나는 와중에도 이안의 내지르는 주먹을 피하며 응수를 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이안의 몸 위에 올라와 있었다. 놈은 이안의 목을 조르며 이안의 얼굴에 펀치를 날리기 시작했다. 이제 이렇게 엉킨 이상, 둘은 사람이 아니라 서로 죽이지 못하면 죽는 본능만 남은 두 마리의 야수였다. 서로가 엎치락뒤치락 거리기를 몇 분이나 했을까. 이안의 위에 올라탄 놈의 손아귀에서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허벅지에 아주 큰 동맥이 지나간다는 것 정도는 이안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이안은 놈의 다리에 난 상처를 손으로 힘껏 움켜쥐고 쥐어짜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놈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이안은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왼쪽으로 돌리면서 단번에 놈의 위에 올라타 버렸다. 이안의 팔을 잡은 놈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얼굴에 대고 있는 힘을 다해 한방을 날린 이안이 다시 한방을 먹이려는 순간 놈이 창백한 얼굴로 숨을 헐떡이며 이안에게 말했다.
"넌 이제 죽은 목숨이다."
“넌 대체 뭐하는 놈이냐?”
“넌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비웃는 미소를 띠더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이겼다는 쾌감과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잠시 찾아오는가 싶더니, 이내 머릿속이 멍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자신의 손가락에 묻은 피를 보자 이안의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안의 눈길은 자신의 손에서 출발해서 팔꿈치, 자신의 배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닥에 흥건한 피와 자신 앞에 누워있는 시체에 시선이 닿자 이안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경찰에 전화를 하기 위해서 일어섰다. 전화기를 찾으러 발걸음을 디딘 순간, 이안은 자신은 어떤 것도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앤디가 사라진 것이 이 사건과 관계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경찰에 증명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것을 증명한다고 한들 자신이 이 사람을 죽인 사실이 정당방위라는 것을 어떻게 입증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자에게 한 행동이 정당방위라는 사실로 풀려나도 이자가 무슨 갱단에 속해 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게다가 이놈은 아까 사람을 죽이고 지금 자기도 죽이러 온 자다. 프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하루에 두 명씩 죽이려는 마음을 먹기 힘들다. 만약 그렇다면 이안은 살아도 죽은 목숨이다. 그런데 경찰에 연락하면 만약 있을지도 모를 놈의 배후에게 나의 모든 것을 선전해대는 꼴이 된다.
이안은 놈의 옷을 뒤지기 시작했다. 놈의 지갑에서 한 개의 명함이 나왔다. 그것은 에스코트사 명함이었다. 이안은 그것을 대충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그 와중에도 이안은 웃음이 나왔다.
‘그렇겠지, 너 같은 놈들이 놀 때 여자가 빠질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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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는 여행용 가방에 넣어서 돌을 달아서 뉴욕 외곽지의 으슥한 강변에 돌을 달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이렇게 해도 발견 되는 시체가 많다는 것은 이안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몇 달만 발견되지 않는다면 괜찮았다. 어차피 자신은 여기에 없을 거니까. 자신이 이곳을 뜨고 나면, 시체가 발견된다 해도 별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이 크고 복잡한 도시에서 노숙자 시체가 가족을 찾지 못하고, 시에서 비용을 대서 화장하는 것은 너무 흔했다. 살인사건도 비교적 사회적 비중이 있는 인물이 개입되지 않으면 미결로 남는 것은 예사였다. 집은 아는 사람에게 세를 줘 버리든지 해야 했다. 오랫동안 비워 둔다면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이웃이 신고할 수 있으니까.
이안은 그 자의 오른손에서 권총을 빼낸 뒤 깨끗하게 닦았다. 바닥을 깨끗하게 치운 뒤, 깔려있던 판자 한 칸을 뜯어냈다. 권총을 수건에 둘둘 말아 조심스레 뜯어낸 곳에 집어넣은 뒤 다시 바닥을 덮었다. 2층으로 올라간 뒤, 쓰지 않는 물건들을 넣어 놓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리 저리 들쑤시자 언제 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커다란 여행용 가방이 나왔다. 평소에는 죽은 쥐도 손으로 건드리지 못하는 그였지만 자신의 생존과 직결되자, 사람의 시체를 이리 접어보고, 저리 펴기도 하는데도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시체가 든 가방을 한쪽 구석에 세운 이안은 잠시 이런저런 생각에 몰두 하다가 이내 잠속으로 빠져 들었다.
달걀크기만한 사람처럼 생긴 작은 로봇 하나가 잠든 이안 쪽으로 기어왔다. 그것은 이안이 잠이 들어 있는 소파 아래쪽으로 와서 한 바퀴 돌며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계할 만한 대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이내 침대 위를 기어 올라왔다. 이안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이안의 목 부근까지 다가간 로봇은 자신의 배를 열며 날카로운 금속 침을 내밀었다. 그러더니 이안의 목 깊숙이 침을 박아 넣었다.
“으악”
침이 박힌 목을 움켜쥐며 이안은 벌떡 일어났다. 온 몸은 땀범벅이었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이안은 몇 번이나 목을 문질렀다.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이 꿈을 꾸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잠시 멍하니 있던 이안은 침대 맡에 놓인 시계를 보았다. 새벽 4시였다. 고개를 돌려서 보니 큰 가방은 잘 놓여 있었다.
어쨌든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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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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