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리뷰

dagrae
- 작성일
- 2024.8.26
글자들의 수프
- 글쓴이
- 정상원 저
사계절
정성껏 끓여 낸 따뜻한 문장들!
언제나 책을 읽으라고 하면 '소설','자기 계발서'라는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나에게
'에세이'라는 장르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뭐랄까... 에세이는 작가들이 편하게 쓰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어려울 거라는 편견이 있었다.
그러다 이 책의 띠지에 있던 '정성껏 끓여 낸 따뜻한 문장들'이라는 문구가 마음에 와닿았다.
그리고 저자가 셰프라니!
먹복이에게는 내적 친밀감이 드는 요리사가 쓰는 에세이라니!
고민 없이 바로 『글자들의 수프』를 집어 들었다.
누군가 먹복이에게 '왜 책을 읽어야 해?'라고 물어본다면 앞으로 이렇게 대답해야지ㅎㅎ
'책은 마음의 양식이다'라는 문장을 셰프님만의 언어로 멋지게 풀이한 거 같다!
정상원 셰프님은 15년 동안 식당을 운영했으며, 2018년 오너 셰프로 있던 '르꼬숑' 레스토랑이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되었다.
이미 레스토랑 운영 시 소설의 문장을 맛으로 표현한 <기억의 도서관>이라는 코스를 내신 적이 있다고 한다.
소설의 문장을 맛으로 표현하다니...??
어떤 문장을 선별했는지 그 맛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운 좋게 작가의 친필 사인이 담긴 책을 받았다.
"맛있게 읽으세요."
셰프인 작가만이 할 수 있는 멋진 인사말이다??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
당나라 시성 두보는 '좋은 비는 제가 내려야 할 시절은 안다'라고 노래했다.
좋은 음식도 단비와 같아서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때가 따로 있다.
-p.50
책에서 이 구절을 읽으면서 '좋은 음식=좋은 글', '우리 몸=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울 때, 정성이 들어간 따뜻한 음식으로 위장을 위로하듯이 좋은 글을 읽으면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글자들의 수프』에서 저자가 선별해놓은 좋은 문장들을 읽으면서 몸과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팬에 묻은 오일을 닦아내고 베이컨을 곱게 다져서 바삭하게 덖는다.
연분홍의 부드러운 베이컨이 밤색으로 변하면
갈아놓은 감자를 잘 펴서 같이 지진다.
베이컨에서 배어 나온 달큼하고 짭짜름한 기름이감자전 사이사이로 스며든다.
부침개가 팬 중앙에 잘 착지한다.
불 온도와 시간 계산이 들어맞아 노릇하게 잘 익은 뒷면을 마주하는 순간은
닐 암스트롱이 달 뒷면을 처음 본 순간과도 같은 감격이다.
-p.52
『글자들의 수프』를 읽고 나서 배가 더 고파졌다.
그냥 '감자전'을 미쉐린 요리로 둔갑시키는 셰프님의 글 솜씨도 한몫하지만,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된 셰프가 만든 거니 미쉐린 요리라고 할 수 있나?)
재료를 고르듯이 하나하나 소개해 주는 글들이 '먹고' 싶어졌다.
교과서에서 읽은 황순원 『소나기』부터 세르반테스의 고전까지 누구나 아는 책도 있지만
정상원 셰프의 소개로 처음 알게 된 책들도 많았다.
가수 양희은 씨가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책을 낸 것도 처음 알았다.
탄탄한 담백한 냉면 같은 사람이 분명 있다.
자기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솔직한 사람,
어떤 경우에도 음색을 변조하지 않는 사람,
그런 심지 깊은 아름다운 사람.
-p.98 가수 양희은 책 <그러라 그래>
맛있는 셰프가 만든 음식은 먹어도 또 먹고 싶고 자꾸 생각나지 않나?
그런 면에서 정상원 셰프가 끓여준 『글자들의 수프』는 신지영 교수님 추천사처럼
탐독 본능을 일깨우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글자들의 수프』에는 셰프가 고른 맛있는 글들을 음식과 지역에 맞춰서 소개해 주는데
그 글들을 보고 있으면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고 싶다.
『글자들의 수프』에 나오는 모든 지역은 셰프님이 직접 갔다 온 곳이다.
그래서 한국은 지역 어르신들의 사투리, 외국은 한국과 다른 풍경이 책에 나온다.
몇몇 편은 여행 에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묘사가 리얼해서 책을 읽는 동안 방구석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글자들의 수프』는 나의 첫 에세이 도전이었는데 셰프님의 글 덕분에 만족스러운 도전이었다.
먹복이처럼 혹시 '에세이' 장르를 어려워하고 주저하시던 분들에게
에세이 입문용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글자들의 수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