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카테고리
daramjwi
- 작성일
- 2018.5.7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
- 글쓴이
- 류승연 저
푸른숲
2012년 어느 날.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정시에 땡~ 퇴근을 하곤 아이들을 데리러 잽싸게 발걸음을 놀렸다. 붐비는 가산디지털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 평소 비슷한 시각에 자주 만나던 너무나도 귀공자처럼 생긴 학생을 그날도 만났다. 눈에 띄게 뽀얀 피부와 귀공자처럼 잘 생긴 학생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잘 보이진 않았지만 언뜻 언뜻 차~~암 참한 학생이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아이였다.
사실 나는 그 당시 지방에서 갓 올라온지라 복잡한 지하철을 탈 때면 늘 긴장을 하곤 했다. 거미줄처럼 얽힌 서울의 지하철은 내겐 미로와 같았으므로 비슷한 시간에 거의 같은 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내렸다. 늘 나와 비슷한 시간에 지하철을 타던 그 학생은 처음엔 잘 몰랐지만 몇번 마주치다 보니 뭔가 부자연스러움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은 우연히 바로 옆에 서게 되었는데, 가만히 있던 학생이 말을 걸었다.
"누나, 예쁘다. 뽀뽀하고 싶다."
"누나, 예쁘다. 뽀뽀하고 싶다."
순간 당혹스러움에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그 학생은 명백히 내 눈을 마주보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모두 이 상황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듯 외면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학생은 경미한 발달장애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그 학생의 친근함의 표현방식은 '뽀뽀'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당시 장애인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내갠 정말 '당황스럽다'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다행히 '아무에게나 뽀뽀하면 안된다'는 나의 말에 '그래도 나는 뽀뽀하고 싶다'라는 아쉬움 섞인 말을 하긴 했지만, 내 의도를 이해하는 듯 했다. 아마도 그 학생이 내가 사회에 나와서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고 얘기를 해 본 최초의 장애인이 아니었나 싶다. 그날의 일이 내겐 당혹스럽고 몇날 몇일을 두고 두고 기억에 남는 일이었지만, 어느 새 잊혀져버린 일이 되었다. 그건 나의 일도, 내 주변의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몇일 전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전직 기자 출신 류승연씨가 한국에서 10년째 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몸소 체득하고 있는 현실의 고단함, 우리나라 장애아를 위한 교육의 답답한 현실에 대해 담담히 얘기해주는 책이다.
어느 누구도 내가 장애인이 될거라는 생각, 장애아를 둔 부모가 되리란 생각을 하진 않는다. 저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학구열에 불타는 부모를 둔 덕에 소위 말하는 '강남 8학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 졸업 후엔 기자가 되어 잡지사 시절엔 화려한 삶을, 사회부 기자 시절엔 가난하고 힘 없는 삶은, 정치부 기자 시절엔 현실의 삶을 배우고, 탄탄대로 인생을 그리며 40대 정치부장, 50대 편집국장을 꿈꾸는 삶을 살았지만, 결혼 후 쌍둥이를 임신, 2009년 9월 어느날 장애 아이를 낳고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내가 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가 되리란 걸.....
어느 누구도 아닌 내가 장애인이 될 수도 있으리란 걸 말이다.
사실 나 또한 '장애'라는 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여겨졌다.
그건 남의 일이고, 뉴스에서나 나올 법한 일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가졌던 못난 오해들을 한웅큼씩 내다버려야 했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불행할 거라는 오해.
당연히 '나의 삶'은 버리고 오롯이 아이의 엄마로서 살아야하지 않을까라는 오해.
당당히 드러내기보단 숨기기에만 급급할거라는 오해 등등등.
저자가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울분과, 현실에서의 힘듦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지 못하리라. 지금은 수많은 난관을 거치고 당당히 장애를 밝히고, 나아가 장애인을 위한 우리 사회와 교육과 현실에서의 부족한 부분들을 확인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많은 이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지만, 적어도 아이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저 일이 남의 일만은 아닐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다.
"장애 아이 육아보다 더 힘든 건 '세상의 시선'이다.
장애인을 향한 세상의 시선. 장애인 가족에 대한 편견과 오해.
그것들은 냉정했고 차가웠고 고통스러웠다.
나는 '장애인 가족'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러한 세상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저자의 이 한마디는 그 동안 십여년을 장애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겪어야 했던 모든 아픔들을 총망라한 말이 아닌가 싶다. 일반인인 내가 섣불리 위로의 말을 건네기는 쉽지 않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건네는 위로의 말이 되려 그들에겐 더 큰 아픔의 말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장애를 가지고 싶어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유없이 죄송해야 하고, 이유없이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 태어난 이상, 그들도 보통의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으므로.
저자가 가는 무지개모임 엄마들은 장애인을 "장(長), 애(愛), 인(人). 오랫동안 길게 사랑받는 사람"이라 한단다. 장애인. 저자의 말대로 조금은 무겁고 왠지 회피하고 싶어지는 단어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다만 그들 마음 속에 우리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어린왕자가 살고 있을 뿐이라 한번쯤은 달리 생각해보자. 거창하게 장애인을 위해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지금은 담담한 시선으로 지켜봐주는 것만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들이 스스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준비 시간을 갖도록!
더 이상 죄송하지 않을 권리와 행복할 의무를 가질 수 있도록!
#푸른숲 #사양합니다동네바보형이라는말 #류승연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크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좋아요
- 6
- 댓글
- 4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