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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kmucc
- 작성일
- 2022.11.18
멘탈 트래블러
- 글쓴이
- W. J. T. 미첼 저
에디스코
프로이트류의 글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평소 정신착란증이나 조현병을 앓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관심이 있었던 나에게 미첼의 '멘탈 트래블러'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책은 조현병과 투쟁하며 자신의 장애를 숨기기보단 장점으로서 변화를 시도하며 예술가로의 삶을 살아가려고 했던 아들 가브리엘 미첼을 지켜보던 아버지의 회고록이다.
조현병은 기본적으로 사고 장애이다. 근거 없는 믿음이나 의심이 흔히 나타나는데 이 책의 주인공 가브리엘의 경우에도 같은 케이스를 보이고 있다. 현실과 가장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며 노숙자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근거 없는 믿음과 20살이 된 아들이 산타 할아버지를 언급하며 CD 플레이어를 달라고 해야겠다는 망상은 그의 아들 가브리엘 미첼을 20년이나 괴롭히며 끝내 자살까지 하게 만든 조현병은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고통스러운 회복의 과정이 시작되었고 그리고 그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회복, 고립, 실패를 반복하며 살아가게 된다.
인간에게서 광기는 이성을 뛰어넘는 혜안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타인에게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이질적인 환영, 환청과 같은 이질적인 무언가를 끄집어내어
예술적작품으로서 승화시키려는 예술가들은 늘존재해왔다.
천재는 광기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로부터 천재와 광기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다. 흔히 괴짜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획기적 발명과 작품을 만들었는지 생각하면 조현병을 앓는 것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의 경우에도 동시대인들로부터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던 이 남자의 중요성은 이후 세대, 특히 빅토리아 시대의 지식인 사회에 미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그의 작품 '태고의 나날들'은 후대의 라파엘 전파와 미술공예 운동가들에게 "현대인이 상실한 영원과의 고대적 결합'과 "인간 이성을 넘어서는 창조성"의 상징으로 간주되었고 미술공예 운동은 중세적 장인 공동체를 복원해 산업 생산 시대의 미적 저열함을 극복하고자 애썼는데 모두 블레이크를 "새 시대를 예언한 선지자'로 숭앙했다.
가브리엘 미첼의 천재성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아버지 미첼조차 가브리엘의 격자 이론을 아들이 겪고 있는 자아과대증으로 간주해버렸지만 과학자 노먼 매클라우드는 가브리엘의 이론이 말이 된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그의 아버지조차 조현병 환자라는 편견이 아들의 천재성을 가려 놓았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 명제에 의하면 세계는 인위적으로 창조된 인공적 실체라는 것으로 곧 세계가 가짜 혹은 모조품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실제적 현실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으며 이것이 가브리엘의 사례에 적합한 명제일 수는 없는 것은 조현병을 가진 가브리엘의 세계는 논리적 공간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경우를 슈만의 곡에서도 찾을 수 있다.
1854년 2월 20일 슈만은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들을 들으며 곡을 써 내려갔다. 그가 듣는 목소리에는 언어가 담겨 있었고 슈만은 그것을 악보에 옮기며 상단에 '내면적'이라는 지시어를 붙이게 된다. '내면적', '내면을 가지고'라는 지시를 어떻게 말로 또한 피아노의 울림으로 해석해낼 것인가? 일반적인 상식, 논리를 벗어난 조현병을 가지고 있는 예술가들을 한 가지의 명제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조현병을 앓을 때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강한 의지로 조현병을 극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는 사실이다. 가브리엘도 자신의 영화가 광기를 부정적 연상에서부터 긍정적 연상으로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고 그래서 광기를 "정신적으로 아픈"이라고 분류해서 낙인찍고 고립시키는 이름표로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경험을 이해하는 비판적 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며 과도한 피해 망상에 둘러싸여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케이스로 자신에게 진단이 필요하고 자신의 의지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면 그는 지금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환자가 되도록 일찍 진단받고 체계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하며 그를 지켜보고 있는 주위 사람들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가브리엘은 '정상인'이 아니라는 차가운 시선과 편견으로부터의 영원한 도피를 생각했었는지, 아니면 가브리엘이 자주 인용한 영화 '바닐라 스카이'에서처럼 꿈에서 현실로 깨어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인지는 본인 말고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이 책을 통해서 조현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특별한 언어에 귀 기울이고 더 나아가 그들만의 특별한 창의성을 격려하며 사회에서 똑같은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봐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의 선입견을 바꾸기 위해 아버지 미첼은 적지 않은 후회와 반성이 담긴 이 회고록으로 슬픔을 펼치고 접으면서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것이 고통일지라도
조현병은 기본적으로 사고 장애이다. 근거 없는 믿음이나 의심이 흔히 나타나는데 이 책의 주인공 가브리엘의 경우에도 같은 케이스를 보이고 있다. 현실과 가장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며 노숙자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근거 없는 믿음과 20살이 된 아들이 산타 할아버지를 언급하며 CD 플레이어를 달라고 해야겠다는 망상은 그의 아들 가브리엘 미첼을 20년이나 괴롭히며 끝내 자살까지 하게 만든 조현병은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고통스러운 회복의 과정이 시작되었고 그리고 그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회복, 고립, 실패를 반복하며 살아가게 된다.
인간에게서 광기는 이성을 뛰어넘는 혜안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타인에게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이질적인 환영, 환청과 같은 이질적인 무언가를 끄집어내어
예술적작품으로서 승화시키려는 예술가들은 늘존재해왔다.
천재는 광기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로부터 천재와 광기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다. 흔히 괴짜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획기적 발명과 작품을 만들었는지 생각하면 조현병을 앓는 것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의 경우에도 동시대인들로부터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던 이 남자의 중요성은 이후 세대, 특히 빅토리아 시대의 지식인 사회에 미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그의 작품 '태고의 나날들'은 후대의 라파엘 전파와 미술공예 운동가들에게 "현대인이 상실한 영원과의 고대적 결합'과 "인간 이성을 넘어서는 창조성"의 상징으로 간주되었고 미술공예 운동은 중세적 장인 공동체를 복원해 산업 생산 시대의 미적 저열함을 극복하고자 애썼는데 모두 블레이크를 "새 시대를 예언한 선지자'로 숭앙했다.
가브리엘 미첼의 천재성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아버지 미첼조차 가브리엘의 격자 이론을 아들이 겪고 있는 자아과대증으로 간주해버렸지만 과학자 노먼 매클라우드는 가브리엘의 이론이 말이 된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그의 아버지조차 조현병 환자라는 편견이 아들의 천재성을 가려 놓았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 명제에 의하면 세계는 인위적으로 창조된 인공적 실체라는 것으로 곧 세계가 가짜 혹은 모조품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실제적 현실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으며 이것이 가브리엘의 사례에 적합한 명제일 수는 없는 것은 조현병을 가진 가브리엘의 세계는 논리적 공간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경우를 슈만의 곡에서도 찾을 수 있다.
1854년 2월 20일 슈만은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들을 들으며 곡을 써 내려갔다. 그가 듣는 목소리에는 언어가 담겨 있었고 슈만은 그것을 악보에 옮기며 상단에 '내면적'이라는 지시어를 붙이게 된다. '내면적', '내면을 가지고'라는 지시를 어떻게 말로 또한 피아노의 울림으로 해석해낼 것인가? 일반적인 상식, 논리를 벗어난 조현병을 가지고 있는 예술가들을 한 가지의 명제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조현병을 앓을 때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강한 의지로 조현병을 극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는 사실이다. 가브리엘도 자신의 영화가 광기를 부정적 연상에서부터 긍정적 연상으로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고 그래서 광기를 "정신적으로 아픈"이라고 분류해서 낙인찍고 고립시키는 이름표로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경험을 이해하는 비판적 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며 과도한 피해 망상에 둘러싸여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케이스로 자신에게 진단이 필요하고 자신의 의지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면 그는 지금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환자가 되도록 일찍 진단받고 체계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하며 그를 지켜보고 있는 주위 사람들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가브리엘은 '정상인'이 아니라는 차가운 시선과 편견으로부터의 영원한 도피를 생각했었는지, 아니면 가브리엘이 자주 인용한 영화 '바닐라 스카이'에서처럼 꿈에서 현실로 깨어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인지는 본인 말고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이 책을 통해서 조현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특별한 언어에 귀 기울이고 더 나아가 그들만의 특별한 창의성을 격려하며 사회에서 똑같은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봐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의 선입견을 바꾸기 위해 아버지 미첼은 적지 않은 후회와 반성이 담긴 이 회고록으로 슬픔을 펼치고 접으면서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것이 고통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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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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